<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여행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

이쯤이면 ‘산 넘어 산’입니다. 신년 초부터 여행업계에 전 지구적인 악재가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집단 폐렴의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이 그 정점에 있습니다. 자고 나면 감염환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중국 당국이 자국민의 ‘단체여행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조치까지 내렸을 정도니, 사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병의 공포는 이미 일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올 들어 지구촌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봐도 이렇습니다. 신년 벽두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폭격 제거 사실을 발표했고, 뒤이어 이란이 보복조치로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기지를 미사일 공격하면서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항공사와 여행업계의 목줄을 감고 있는 유가와 환율도 크게 출렁였지요. 다행히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위기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이 와중에 오인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민항기가 격추됐습니다.

지난 12일에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해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관광객과 주민 6000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설 연휴 중이던 26일 화산경보 수준이 4단계에서 3단계로 하향 조정됐지만, 화산 재폭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산불로 인한 호주의 관광산업 피해 액수는 자그마치 1조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화재가 나지 않은 지역마저도 관광객의 숙박 취소율이 60%를 넘어서면서 호주의 관광산업은 붕괴 상태입니다. 7개월 넘게 계속돼 여행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돌아간 홍콩의 민주화 시위도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의 일환인 일본 여행 보이콧 여파로 일본 여행 수요가 급감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여행업계는 국제사회 정치·외교 이슈와 더불어 자연재해, 질병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입니다. 감염병, 전쟁, 갈등, 반목, 고립, 폐쇄…. 아무리 여행업이 외부 리스크가 많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강조하는 여행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입니다.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앞세워 공포감을 자극하는 무책임한 ‘카더라’식 정보도 문제지만, 사고가 터지면 위험이 채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부리나케 ‘관광지는 안전하다’는 식의 편향된 정보만을 발신하는 일부 외국관광청 한국사무소의 무책임한 행태 역시 지탄받아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