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대북 유화책, 北엔 이롭고 南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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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지구 운명’ 시계도 북핵 우려
북 지원해 비핵화 유도 발상은
마차가 말 견인하는 억지 논리

2032 남북 공동올림픽 추진은
한국과 IOC 모두에 재난 위험
韓美훈련·워킹그룹 강화할 때

지난주 ‘2020 지구 운명의 날 시계’ 제막 행사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새로 공개된 시각은 밤 11시 58분 20초. 핵과학자회(BAS)는 그 이유로 핵전쟁 가능성과 기후변화를 거론했는데, 구체적으로 북한 비핵화의 교착이 큰 요인을 차지했다.

북핵 상황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지난 2년여 동안 북한은 비핵화할 의지가 없음이 여지없이 밝혀졌다는 데 있고, 그런데도 정부는 대응책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다는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 구축에만 온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데 비극이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 관리만 잘되면 핵이고 동맹이고 당분간 접어둘 수 있다는 인식인 듯하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미·북 관계 개선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기 때문에 남북관계 진전의 수단으로서 금강산 관광과 남북 경협 추진이 대북 제재의 예외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은 마차가 말을 견인하겠다는 억지 논리로, 동맹과 우방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정부 부처 간의 조율은 실종되고, 외교부와 주요 공관의 역할은 증발됐다. 정부가 비굴할 정도로 북한의 선의만을 갈구할수록 스스로의 외교 안보 입지는 사방에서 황폐화해 간다.

그러는 중에도 북한은 오불관언,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에 여념이 없다. 따라서 안보 외교의 체질 약화와 전략 결여에 대해 한시바삐 냉정히 자체 점검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은 △기존 핵무기 견지를 통한 핵 지위 인정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를 통한 외화 획득과 경제적 숨통 트기 △그 바탕 위에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체제 보장을 노리는 전략을 추구한다. 제재의 고삐가 이완되는 순간 북한의 비핵화는 더욱더 멀어지고 저들에게는 전략적 성공의 승기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에 핵 보유 집착의 대가로 체제에 대한 부담을 견딜 수 없도록 압박과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지혜로운 전략에 정면으로 반한다. 현금 유입은 차치하더라도, 박왕자 씨 피살 후 12년이 되도록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도 없으니 향후 관광객의 신변 안전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더욱이 최근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북한은 국경을 폐쇄했다.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 국경을 폐쇄하고 해외 출장 후 돌아온 최고위 외교관들을 장기간 격리 수용하는 등의 기록이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번에도 국경 폐쇄 조치를 장기화할 것이며, 대미 접촉도 앞으로 경색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무모한 금강산 관광은 계획 단계에서 빨리 접는 게 상책이다.

2032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도 우리가 먼저 제기함으로써 미래 상황의 인질을 자초하는 셈이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무관중·무중계 속에 개최된 남북한 축구 경기를 접하고 북한의 불가측과 비상식적 태도에 대해 크게 우려한 바 있다. 정세가 복잡한 한반도에서 12년 후의 올림픽을 남북 공동으로 치르겠다는 구상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이다. 설령 공동 개최가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대회 개최 막판에 어깃장을 놓는다면 속수무책이고 IOC로서도 손쓸 도리가 없어진다. 올림픽 경기를 남북관계의 허황된 시각 속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자칫 한국과 IOC가 공멸할 위험을 안겨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대북 제재 완화와 유화적 제의들은 비핵화 추진에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 내부 전열을 흐트러뜨리고 안보를 약화시키는 짓이다. 지난 2년의 경험칙상,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 교섭의 장으로 끌어내 오기에는, 3대째 김씨 왕조의 핵보유 야욕이 너무 나간 형국이 돼 버렸다. 따라서 제재의 압박을 계속 강화하면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제기하고 북한 주민의 자유화 의식 고취를 위한 심리전을 폭넓게 전개해야 한다. 한·미 간에는 워킹 그룹을 통한 정책 조율을 더욱 긴밀히 하고 군사동맹 강화의 가시적 조치로 연합 군사훈련 재개에 조속히 착수해야 하며 사문화한 9·19 남북 군사합의에 더는 구애돼선 안 된다.

이제야말로 핵·미사일의 포기를 유도하는 방법이라면 북의 통치력 균열과 자원 고갈을 야기할 수 있는 조치들을 꼼꼼히 검토, 중장기적으로 견실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