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처갓집 아이언 휘둘러보다 ‘와장창’… 장인 “배워볼텐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정묵 김정묵내과의원장

거실에 있던 클럽 무심코 스윙
천장 샹들리에 깨는 사고 쳐
이를 본 골프광 장인 입문 권유
한달만에 90대 쳐 재미에 푹~
베스트 72타… 공식 핸디캡 10

나이 들면서 ‘골프 부상’ 잦아
필드서 ‘한손 똑딱이’만 치기도
“안 아프고 코스 나가는 게 행복”

김정묵(74·사진) 김정묵내과의원장은 서울 영등포 한자리에서 37년째 병원을 지키고 있다. 김 원장을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 사거리 이면도로 안쪽에 자리한 김정묵내과의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김 원장은 지금도 주 6일 진료하며 ‘지역민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의 중장년층은 물론 단골환자의 2, 3세들도 이곳을 찾는다. 부원장이 있지만, 유독 김 원장을 찾는 환자가 많아 진료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공군 군의관 시절 주영복 공군참모총장 주치의와 국방부 장관 주치의를 지내고 전역했다. 1980년 제대 후 근무하기로 예정됐던 병원(고대 구로병원) 개원이 늦어져 한동안 선배가 있던 병원에서 근무했고, 고민 끝에 영등포에서 내과의원을 개원했다. 김 원장은 3년 후 살던 집을 헐고 지금의 병원을 직접 지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김 원장은 1983년 골프를 배웠다. 장인은 집 마당의 절반을 골프연습장으로 만들었을 만큼 골프광이었다. 김 원장은 처가에 갔다가 거실에 있던 7번 아이언을 무심코 휘두르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깨트리는 ‘사고’를 쳤다. 이 모습을 본 장인이 김 원장에게 골프를 배우라고 권했고, 1주일 만에 경기 용인의 관악CC(현 리베라)로 나갔다. 장인, 사위 둘의 라운드. 김 원장이 헤맨 탓에 뒤 팀이 계속 따라붙자 장인은 패스를 해줬다. 김 원장은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연습장에 꾸준히 다녔고 한 달여 만에 90대 타수를 치며 골프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면서 “이후 선배와 함께 다니려고 서울CC 회원권을 샀고, 몇 년 후 인근 뉴코리아CC 회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1990년대가 지나서 서울CC에서 공식 핸디캡 10까지 놓기도 했다. 50대가 넘어가자 골프로 인한 부상이 잦았다. 한 번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내려오다 스프링클러를 밟고 미끄러졌고, 계단에서 굴러 오른손이 골절됐다. 김 원장은 “한 달쯤 지나 친구들이 인원수를 채우라고 채근하는 바람에 깁스를 한 채 골프장에 나갔다”면서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얼마나 골프에 미쳤으면…’이라며 혀를 찼다”고 말했다. 한 손으로 7번 아이언을 잡고 말 그대로 ‘똑딱이 볼’만 쳤다. 정확히 맞혀도 피칭웨지 거리도 못 보냈다. 이렇게 깁스를 한 채 서너 번 더 나가자 골프채를 든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김 원장은 석 달 후 깁스를 풀자 스윙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김 원장은 “왼팔 리드로 스윙 리듬도 좋아졌고 정확도가 높아졌다”며 “하지만 220m를 넘던 드라이버 비거리가 200m로 줄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5년 전 오전 진료를 마치고 급하게 골프장에 가 스트레칭을 건너뛰고 스윙하다 회전근개가 파열됐다. 이후 오른손을 위주로 쓰니 훅이 나면서 스윙이 바뀌었다. 김 원장은 “어느새 나 자신도 모르게 ‘또바기 골퍼’가 되면서 그린 주변 어프로치를 붙여 파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원장의 베스트스코어는 이븐파 72타. 1992년 서울CC에서 회원의 날 라운드에서 작성했다. 홀인원은 골프 시작 3년 차이던 1985년 인천국제CC에서 뽑아냈다.

김 원장에겐 골프 스승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유태전 선배다. 대한병원협회장을 지낸 유 선배는 의사로서도 명망이 높고, 골프를 할 땐 ‘노 터치’ 플레이로 엄격한 룰을 적용하던 신사. 그 선배와 인천국제CC에서 라운드를 나갔을 때였다. 김 원장이 티샷한 공이 나무 밑 둥지로 굴러갔지만 선배는 “벌타를 받고 나오든지, 그냥 치든지!”라고 말하곤 매정하게 돌아섰다. 잘만 치면 탈출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쳤다가 나무뿌리를 후려치는 바람에 아이언이 두 동강 났다. ‘벌타를 먹고 나올 것’이라고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 원장은 그 이후로 골프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는다.

김 원장에겐 20년째 풀지 못한 ‘골프 버킷 리스트’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뉴코리아CC 2번 홀(파4)에서의 이글이다. 김 원장은 이 홀에서 샷이글을 두 번이나 만들어냈다. 김 원장은 당시 “동반자들에게 내가 여기에서 이글을 한 번 더 하면 ‘돌의자’를 기념으로 갖다 놓겠다”고 약속했던 것. 이 홀은 티샷을 잘 보내면 짧은 아이언으로도 그린에 올릴 수 있는 곳으로 김 원장은 두 차례 이글 모두 9번 아이언을 잡고 행운을 만들어 냈다. 김 원장은 그러나 “이제는 짧아진 비거리 탓에 긴 클럽으로 치다 보니 좀체 이글을 만들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김 원장은 “예전엔 민폐 안 끼치고 편안하게 칠 수 있는 상대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이제는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코스에 나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난해 서울CC 정기총회에서 부이사장에 선출돼 이심 이사장 등과 집행부 일원이 됐고, 골프장 내 ‘골프 박물관’ 건립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김 원장은 “이곳에 오면 여전히 많은 골프 친구가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특히 회원의 날에는 대부분 친분이 있는 회원들과 조인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김 원장은 “건강 비결은 원칙과 절제로 즐기는 술”이라며 “지인을 만나면 늘 ‘각 1병’씩 마시고 헤어진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내과 의사는 건강한 몸과 정신이 있으면 죽는 날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서 “은퇴를 떠올린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