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軍헬기 개량 사업과 국산 구매의 利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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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항공공학

서방 세계 3대 헬기 강국 하면 미국·프랑스·이탈리아를 말한다. 우리나라가 처음 들여온 헬기인 ‘OH-23 레이븐’과 육군의 주력 기종인 UH-1H, 500MD, UH-60, CH-47, 아파치, 코브라 헬기들은 모두 미국산이다. 1945년 실용적으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헬기를 개발, 사용하기 시작한 미국은 내수는 물론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헬기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탈리아는 국산 헬기의 연구·개발(R&D)을 독려한 정부 정책에 힘입어 헬기산업이 발전했다. 1971년, 칠전팔기 도전으로 미국산 엔진을 탑재한 소형 헬기의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시제기 비행 사고도 있었다. 판매 부진도 겪었다. 그런데도 당시 이탈리아 육군은 5대를 시범 구매해 전력화했다. 운용 결과에 만족한 이탈리아 군은 추가 구매를 결정했다. 그렇게 쌓인 실전 운용 실적을 바탕으로 이탈리아는 1988년 벨기에 육군에 30대를 처음 수출할 수 있었다. 군수용 헬기 양산은 민수용 헬기 판매로 점차 확대됐다. 이때 개발한 헬기가 동급 기종보다 기동성이 뛰어나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 중인 AW109 기종이다.

우리나라도 2006년에 국산 헬기 개발을 시작했고 2013년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이 전력화됐다. 프랑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세계 11번째로 국산 헬기를 갖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현재 국군은 700여 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국산 헬기의 수출 물꼬를 트려면 우리부터 많이 사용해야 한다. 특히, 국군의 실전 운용은 국산 무기체계의 살아 있는 마케팅이다. 지난주 계룡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국산 무기의 해외 수출에 힘을 실었다. 첨단무기 국산화 차원을 넘어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도약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 성과로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내수 진작, 즉 국내 운용 확대가 기본이다. 현대자동차의 성공에서 보듯이 어떠한 제품도 자국의 내수 기반 없이는 세계적 제품이 될 수 없다.

육군에서 현재 주력 기동 헬기 기종이 오래돼 성능 개량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임무를 보면 국산 수리온도 대체기종 후보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보인다. 항공 전투체계상 통상 대체할 신제품이 없는 경우 성능 개량을 통한 수명 연장으로 전력 공백을 방지하고 있지만, 총 수명주기(LCC)가 신제품보다 길 수는 없다. 또한, 수리온 1대를 제작하려면 250여 협력업체의 일손이 필요하다. 설령 성능 개량 비용보다 국산 헬기로 교체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내수 진작, 산업 파급, 고용 유지, 수출 촉진 등 부수적인 이점(利點)까지 고려해야 마땅하다.

F-35 전투기 도입 당시 일본이 우리보다 대당 가격을 더 비싸게 사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군은 전투기만 획득했지만, 일본은 자국 내 면허 생산, 부품 국산화와 최종 조립 권한까지 얻었다. 눈앞의 이익만 계산하면 늘 가격이 우선시된다. 때로는 멀리 내다보고 무형자산에 투자해야 우리 후손들의 먹거리를 보장할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었다. 방위산업 규모도 세계 10위권이다. 늘어난 예산만큼 국내 업체들이 살 만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국방비 증액이 외국산 무기 구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텔스 전투기, 고고도 무인기 등 국내에서 대체할 제품이 없는 첨단 전략 기종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기왕에 세금을 들여 만든 제품은 국내에서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방위산업은 안보·경제 양면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가 경제성 논리에 막혀 있는 형국은 아닌지 짚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