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선(線)의 사회학

“선은 니(네)가 넘었어!”

야구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야구 드라마인 SBS ‘스토브리그’ 속 명대사입니다. 연봉협상 과정에서 도발하는 선수의 술잔을 뺏어 던진 운영팀장에게 이 선수가 “선 넘었어, 지금!”이라고 소리치자 이 운영팀장은 “선은 니가 넘었어”라고 맞서죠. ‘선(線)’,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한 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로 ‘그어 놓은 금이나 줄’, 혹은 ‘기차나 전화 따위의 선로’를 이르죠. 영어로는 의미에 따라 line, level, wire 등으로 씁니다.

이 단어는 영화 ‘기생충’의 세계적인 흥행에 발맞춰 유명해졌는데요. 극 중 부잣집 박 사장(이선균 분)은 항상 선을 지키는 것을 중시하죠. “(기택은) 매사에 선을 딱 지켜. 내가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라며 기택(송강호 분)을 칭찬하다가도, 코를 찌르는 그의 몸 냄새 앞에서는 “냄새가 선을 넘지”라고 질색을 합니다. 결국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근세(박명훈 분)에게서 나는 냄새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 모습에 모멸감을 느낀 기택의 칼을 맞고 죽게 되죠.

누군가 내 앞에서 코를 잡고 표정을 일그러뜨린다고 상상해보셨나요?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칼을 휘두르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또다시 선을 넘고 말죠.

찬찬히 짚어보면, 사회면을 채우는 대다수의 뉴스도 선을 넘어 발생합니다. 내 주행차선을 넘어오는 차를 향해 보복운전을 하고, 도가 지나친 층간소음 때문에 칼부림이 나죠. 술집에서는 옆자리 손님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시비가 붙기도 합니다. 연예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튜브 등 SNS라는 매개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공론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적정선이 깨지는 일이 빈번해졌죠. 특히 가수 김건모를 비롯해 몇몇 연예인을 향한 특정 유튜버들의 폭로는 선을 한참 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을 개인 방송을 통해 사실인 양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과정에서 해당 연예인들은 이미 여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모양새죠. “이 선 넘지 말라”며 책상 가운데 줄을 긋는 초등학생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데요.

어린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침범받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맥락으로 범람하는 SNS를 통해 수시로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요즘 시대에,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