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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06일(木)
춘향, 정절의 상징? 자의식 강한 사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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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의 연인은 이몽룡이 아니라 방자였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방자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춘향’(조여정 분). ‘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은 ‘춘향전’을 정치적인 텍스트가 아닌 문학작품으로 분석하며 당대 사람들의 삶을 돌아본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 / 오수창 지음 / 그물

이몽룡과 신분 탈피한 사랑
삶의 진정성 형상화한 작품

변사또 수청요구 저항한 것
정치적으로 읽다보니 오독

민중주의·허무주의 모두 배제
잘알고있던 고전 새롭게 해석


고전소설의 대명사이자 영화·드라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춘향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미천한 신분인 기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서사에 당대 신분 질서에 저항하는 새로운 시대의 논리가 담겨 있다는 시각이다. 두 번째는 춘향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 등이 구태의연한 봉건 논리의 되풀이라는 시각이다.

조선 시대 정치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존 시각이 ‘춘향전’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춘향전’을 문학작품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문처럼 분석했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춘향전’의 역사적 성격은 새로운 질서나 이념을 제시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당대 삶의 현장과 현실의 부조리를 향한 저항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를 바탕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는 ‘춘향전’의 핵심 문제들에 관한 선행 연구를 한자리에 모아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우선 저자는 춘향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행위를 둘러싼 당대의 법적 관계를 살핀다. 고을 수령의 수청 요구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조선이 전국적으로 성노예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였어야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고을 수령의 수청 요구는 법전에 규정된 불법행위였다. 따라서 변 사또는 수청 거부를 죄명으로 삼아 춘향에게 형벌을 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선 후기 고을 수령이 일상적으로 기생의 수청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춘향이 변 사또의 수청 요구에 격렬하게 맞선 행위 또한 이례적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앞서 살핀 법적 관계를 전제로 두고, 춘향의 저항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규명한다. 저자는 춘향과 이몽룡의 성애 장면에 주목한다. 초기 ‘춘향전’에 등장하는 춘향의 모습은 마음에 드는 남성을 만나 앞날을 도모하는 기생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몽룡 또한 춘향을 그저 기생으로 대할 뿐이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춘향은 주체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이몽룡 또한 춘향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춘향이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거는 태도는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개연성을 얻는다.

이어 저자는 춘향의 저항을 정절이나 열녀, 또는 신분 상승의 문제로 본 기존 해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한문본은 춘향과 변 사또의 대결 장면을 보여주지 않거나 부드럽게 묘사한다. 반면, 한글 이본에선 춘향이 변 사또에게 격렬하게 저항하고, 변 사또는 춘향의 인격과 사랑을 무자비하게 모독한다. 춘향의 저항은 정절이나 충렬과 같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발전한 자의식의 강렬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저항의 핵심은 자신의 인격을 짓밟아 모독하는 권력자에게 최하층의 나이 어린 여성이 사납고 거칠게 저항하는 현장 그 자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 보편성과 조선 후기의 시대성이 만나는 장면이 남원 고을 관아마당에서 펼쳐지는 춘향의 저항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춘향의 저항이 현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풀어야 할 과제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근대 지식인 이광수가 개작한 ‘일설 춘향전’이 근대적 서술형식에 겉으로는 남녀평등과 신분평등을 표방하면서도, 그 내용은 조선 시대보다 훨씬 차별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사회의식을 퇴보시켰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춘향과 이몽룡의 언행에서 직접 새 시대의 이념과 논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 속류 민중주의 함정에도, 그와 반대로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품의 성과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의 함정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춘향전’의 역사적 성취는 조선 후기 사람들의 삶, 그 사랑과 실천의 진정성을 형상화한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춘향전’은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 사상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므로 앞으로 활발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전에서 새로운 시각을 끌어내는 서술이 흥미롭다. 430쪽, 2만4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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