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기생충’ 원래 제목은 ‘데칼코마니’… 부자·빈자 대칭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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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0-02-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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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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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기생충’ 장면 스케치. 문광(이정은)이 지하실 문을 열기 위해 커다란 장을 미는 장면(왼쪽)과 지하에서 생활하는 근세(박명훈)의 책상 모습. CJ ENM 제공


- 영화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2013년‘설국열차’만들다 구상
2015년 제작자 곽신애와 만남
“저장고 와인처럼 서서히 숙성”


“저장고 속 와인처럼 서서히 숙성됐다.”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쓴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가벼운 구상에서 시작됐다. 봉 감독은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을 하며 ‘기생충’ 이야기를 처음 구상했다”며 “스태프에게 부자 네 식구, 가난한 네 식구가 얽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시작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일상에, 현실에 가까우면서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 15페이지짜리 ‘기생충’ 시놉시스를 썼고, 그가 ‘옥자’(2017)를 찍는 동안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한진원 작가가 드래프트(초고)를 완성했다. 봉 감독은 “2004년 초 ‘괴물’을 찍으며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찾아뵌 후 2009년에 ‘마더’를 개봉했고, ‘기생충’도 ‘옥자’를 준비하며 천천히 숙성됐다”며 “노트북을 열고 시나리오를 쓴 기간은 2017년 9월부터 4개월 정도다. 쓰기 전 숙성 과정에서 내가 살아오며 본 잔상의 느낌이 침전돼 있다가 서서히 나온다”고 말했다.

시놉시스 단계에서 제작사가 정해졌다. 봉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트로피를 거머쥔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2015년 4월에 봉 감독님이 시놉시스를 들고 왔다. 기존에 없던 이야기였고, 엄청 재밌었다”며 “복이 넝쿨째 들어와 나는 거저먹었다”고 소개했다.

‘기생충’의 첫 제목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대칭을 이룬다는 의미의 ‘데칼코마니’였다. 곽 대표는 “초기에 ‘데칼코마니’와 ‘기생충’ 두 제목을 섞어 쓰다가 점차 ‘기생충’으로 굳혀졌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대개 시나리오 초기 단계에서 결말을 정해놓지만 ‘기생충’은 마지막 시나리오 작성 과정에서 기택(송강호)네와 지하실 문광(이정은) 부부가 비극적으로 부딪히는 엔딩 부분이 완성됐다. 봉 감독은 “폭포처럼 써나갔다”고 떠올렸다. 곽 대표는 “최종 완성본을 보고 지하 이야기를 알게 됐다. 기택네가 문광이 비 오는 날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에서 놀라듯 나도 깜짝 놀랐다”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결말 부분을 보며 ‘역시 봉준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기생충’의 중요한 키워드인 ‘냄새’는 한 작가의 초고에 등장했다. 봉 감독은 “초고 속 한 장면에 부잣집 꼬마가 가난한 가족 아버지의 냄새를 맡고, 아줌마한테도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었다”며 “그 부분이 너무 좋았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스파크였고, 그 스파크 덕분에 이 작품을 지배하는 냄새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잡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송강호의 대사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동행이다”와 기우 역을 맡은 최우식의 대사 “실전은 기세야 기세”도 한 작가의 아이디어다.

봉 감독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500여 개의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영화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또 지난해 8월 영화진흥위원회가 ‘기생충’을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선정하며 본격적으로 펼쳐진 아카데미 캠페인 기간 동안 100여 차례의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맛을 높였다. 아카데미상은 투표권을 지닌 약 8400명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회원들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봉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그저 로컬일 뿐” 등 촌철살인의 언어를 구사하며 미국 언론을 건드렸고, 대중의 호감도를 상승시키며 철학적 담론을 촉발했다. 이를 통해 아카데미가 ‘로컬 행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것이고,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방향을 돌려놨을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의 말대로 세계 영화사의 기념비적 사건은 저장고 속 와인처럼 서서히 숙성됐다. 수상을 기념해 ‘기생충’ 흑백판이 이달 말 국내에서 개봉한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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