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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글로벌 포커스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12일(水)
‘라벤더 천장’ 깨고…동성애 정치인들 나라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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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트 부티지지 후보
■ 부티지지 ‘돌풍’ 계기로 본 ‘동성애 정치인들’

2015년 ‘커밍아웃’ 부티지지
‘성숙한 인간미’ 강조 큰 인기

부시땐 동성결혼 금지법 찬성
10년만에 美 정가 분위기 급변

핀란드 최연소 총리오른 마린
동성부부 아래 유년시절 보내

동성결혼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부부동반으로 정상회의도 참석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미국 정치권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미국 중앙 정치에서 남성 배우자를 둔 동성애자인 그가 보수 성향의 중장년층에서 ‘제2의 오바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대선 때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레즈비언 딸을 두고 전전긍긍하던 미국 정가 풍속도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0년 동안 확 달라진 미국 = 동성 결혼은 특히 2000년 미국 대선의 뜨거운 감자였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동성 결혼 금지를 명시하는 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그해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체니 전 부통령의 둘째 딸 메리 체니는 종종 공화당 정적들의 먹잇감이 되곤 했다. CNN은 부시-체니 선거운동본부가 체니 부부 큰딸의 결혼과 자녀에 대해선 자주 소개하면서도 둘째 딸 메리에 대해선 유독 침묵했다고 보도했다. 메리는 당시 자신의 지인에게 “저는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딸의 사생활에 침묵하면서도 그의 선거운동 참여를 막지는 않았다. 2004년 재선을 앞두고 부시 행정부가 동성결혼 금지 헌법 개정안을 지지했을 때에도 그는 침묵했다. 2006년 출판한 자서전에서야 ‘이 수정안에 반대했지만 부시의 재선을 지지하기 때문에 입장을 내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변에서는 대선 출마를 권유받았던 그가 확답하지 않고 뭉갰던 배경에 둘째 딸에 대한 프라이버시 존중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미국 정가. 아버지의 정치 인생을 위해 전전긍긍하던 메리와 달리 부티지지 전 시장은 2015년 모험이라고 할 만한 ‘커밍아웃’ 결단을 내렸다. 부티지지 전 시장은 커밍아웃 당시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나의 사업, 군대, 또는 시장으로서의 현재 역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그는 성장기 고민 사실을 토로하면서 성숙한 인간미를 강조하는 식의 공세적 돌파 전략을 택했다.

▲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2015년 6월 15일 사우스벤드 트리뷴에 ‘사우스벤드 시장:왜 커밍아웃은 중요한가’라는 기고문을 올려 “내가 동성애자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되기 전에 성년이 됐다. (동성애 성향이) 갈색 머리를 가진 것처럼 삶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기까지 몇 년 동안 괴로워하며 성장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실이)소총이나 채용 정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 나를 더 낫거나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며 “오늘날 57%의 미국인들이 동성 결혼을 지지하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그 반대였다”고 강조했다. 그해 11월 부티지지 전 시장은 80% 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공화당 캘리 존스 후보를 꺾고 재선됐다. 그는 3년 뒤인 2018년 중학교 교사인 남성과 결혼해 현재까지 같이 살고 있고 올해 대선에서도 ‘게이’라는 수식어에 거리낌이 없다. 지난 9일 NBC와의 인터뷰에선 “‘게이 대통령’이 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일이 매우 의미 있고 강력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티지지 전 시장은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성 정체성을 표적 삼아 “편견은 아직 존재한다”고 했던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을 꺾고 1위를 차지했다.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금기 깨져 = 유럽 정치권에서는 자신이나 가족의 동성애 성향을 숨기거나 비주류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라벤더 천장’을 깨는 정치인이 점점 늘고 있다. 서른넷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 정상이 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부모의 이혼 뒤 엄마가 동성과 결혼하며 어머니가 둘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동성애 커플에게서 양육된 여성이 이 사실을 밝히고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됐는데도 어느 정당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에선 그자비에 베텔 현직 총리가 2015년 벨기에 출신 남성 건축가인 고티에르 데스테네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룩셈부르크 시청에서 열린 공식 결혼식에서 이들은 손을 흔들며 기쁨을 만끽했다. 2010년부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 온 이들은 룩셈부르크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지 1년 만에 결혼을 발표했다. 베텔 총리는 동성 배우자와 정상 회의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동성애자가 정부 수장이 된 사례는 아이슬란드의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총리, 벨기에의 엘리오 디뤼포 전 총리 이후 세 번째다. 정치권 전반적으로는 수가 더 많다. 현직 총리로는 아일랜드의 리오 버라드커 총리와 세르비아의 아나 브르나비치 총리 등이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세르비아의 첫 여성 총리기도 한 브르나비치 총리는 지난해 동성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유럽 중앙 발칸반도에 위치한 세르비아는 국민 대다수가 보수적인 동방정교회 신자로, 헌법상 동성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세르비아 정부는 유럽연합(EU)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 소수자 인권 보호를 가입국 전제조건 중 하나로 본다는 점에서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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