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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골프와 나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14일(金)
그린스피드 훤해 ‘스리 퍼팅’ 안하는 국내 첫 여성 ‘잔디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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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현숙 소장이 12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집 근처 연습장에서 스윙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 골프엔지니어링 제공
태현숙 유골프잔디연구소 소장

25년 구력 비거리 150m 그쳐도
그린 한번만 밟아도 스피드 맞혀
퍼팅·쇼트게임만큼은 챔피언급
베스트 85타 홀인원·이글 못해봐

페어웨이 디벗 보면 가슴 아파
라운드하며 빈 스윙 거의 안 해
골프룰도 해박 대학 강의하기도
스코어 나빠도 규칙준수는 철저


태현숙(51) 유골프잔디연구소 소장은 국내 여성 1호 ‘잔디 박사’다. 지난 11일 경기 안양시 두산벤처다임 내 ㈜유골프엔지니어링의 부설 잔디연구소에서 태 소장을 만났다.

경북대 농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태 소장은 1995년 삼성 중앙개발(현 에버랜드) 입사 후 잔디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잔디에 눈을 떴다. 당시 이건희 회장 지시로 잔디연구소가 만들어졌다. 태 소장을 포함해 박사와 석사 등 10명의 전문연구원이 선발됐다. 태 소장은 국내 여성으로는 처음 2002년 잔디 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몇 해 전에야 태 소장의 뒤를 이어 여성 2호 잔디 박사가 나올 정도로 잔디 연구 분야는 여전히 여성이 진입하기 어렵다. 태 소장을 박사로 만들어 준 것은 잡초인 ‘세포아풀’에 관한 연구였다. 태 소장은 번식력이 강한 골칫거리 잡초를 없애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잔디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태 소장은 “실제 잡초 한 줄기에 최소 200개 씨가 만들어지기에 1년에 두 번 발아를 거치면 4만 개의 잡초 씨로 늘어난다”며 잡초의 무서운 번식력을 설명했다.

태 소장은 골프장 잔디를 연구하면서 골프를 자연스레 배웠다. 골프를 잘 쳐야 잔디를 잘 살필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연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을 못 쳐 산으로만 가면, 잔디를 제대로 살필 수 없기에 입사 후 곧바로 골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겐 골프보다 잔디가 우선이다. 그래서 25년이 넘는 구력에 비해 골프 실력은 늘지 않았단다. 10년 전 강원 원주의 센추리 21 골프장에서 85타를 쳤던 게 베스트 스코어. 그는 “예나 지금이나 비거리가 짧아 골프가 어렵다”고 말했다. 170m까지 드라이버 샷을 날렸지만, 지금은 150m 넘기기도 빠듯하다. 하지만 그린에서의 퍼팅은 ‘챔피언급’이다. 비거리가 짧아 파 온이 어렵다 보니 그린 주변에서 자주 쳐야 했던 덕에 쇼트게임이 좋아졌다. 특히 잔디 박사답게 그린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남들보다 그린을 잘 읽다 보니 일단 그린에만 올리면 좀처럼 ‘스리 퍼트’는 나오지 않는다. 대개 여성들이 퍼팅감이 떨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태 소장은 라운드 때 그린 한 번만 밟아봐도 그린 스피드를 단박에 알아맞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골프장 측이 게시해 놓은 그린 스피드는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감을 믿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린에 올라가 퍼팅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린 스피드를 혼자 측정한다. 직업상 골프장 컨설팅을 할 때 항상 ‘스팀프미터’나 ‘펠츠미터’로 그린 스피드를 조사하는데 계속 측정하다 보니 자신이 읽은 그린 스피드와 실제 장비로 측정한 스피드가 비슷하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남들이 파 놓은 잔디 디벗만 봐도 마음이 아플 정도”라는 태 소장은 라운드 때 빈 스윙 한 번 안 하는 편. 때론 동반자에게 미안함이 든다. 상대와 대화하기보다 잔디를 살피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골프장에 가면 자료 확보 차원에서 잔디를 카메라에 담느라 라운드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리기 일쑤. 하지만 매트가 깔린 연습장에서는 힘껏 골프채를 휘두른다.

잔디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라운드에서도 자신이 늘 ‘홍일점’일 때가 많다. 태 소장은 “처음엔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고 행여 실수할까 봐 긴장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은 잘 못 치더라도 골프 규칙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같이 라운드하는 남성들이 자신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룰대로 쳐야죠”라며 규칙을 내세웠고, 그의 해박한 룰 지식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태 소장은 골프 룰 지식도 ‘박사급’이다. 에버랜드 근무 시절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한 지방 대학의 골프학과 겸임교수를 맡은 적이 있다. 이때 골프 규칙을 강의했고, 골프 룰과 제정집을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태 소장은 2018년 에버랜드에서 퇴사한 뒤 남편인 류창현 ㈜유골프엔지니어링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태 소장과 남편은 입사 동기로 1999년 결혼했다. 남편은 2002년 독립, 코스 설계가로 변신했고 지금은 골프장 위탁관리, 골프 장비 유통 등을 맡고 있다. 태 소장은 전국 11개 골프장 잔디 위탁 관리, 잔디 컨설팅을 맡고 있다. 태 소장은 특히 코스 품질을 숫자로 계량화한 잔디관리 매뉴얼과 잔디 예보제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기상전문기업으로부터 받은 날씨 정보를 분석해 토양의 습도, 강우량, 온도 등 데이터를 통해 ‘잔디관리 예고시스템’을 만들어 환경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태 소장은 지금도 골프장에 가면 눈에 거슬리는 잡초는 반드시 뽑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잔디에 관한 애정이 넘쳐난다. 천직이다. 거친 남성들 틈바구니에서도 25년 넘게 필드에서 잔디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 태 소장에게 잔디는 가장 가까운 친구, 이웃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운 장미는 한정된 곳에서만 볼 수 있지만, 잔디는 우리가 늘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 소장은 지금까지 동반자의 홀인원이나 이글 광경은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정작 자신은 한 번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시즌이면 더 바쁜 탓에 라운드는 월 2차례 정도. 대부분 잔디 관련 학회 모임, 골프장 현장 직원과의 라운드다. 남편과 함께 필드에 나가는 것도 일 때문이다.

태 소장은 “골프에서 아직 변변한 기록이 없기에 올해부터는 트로피 욕심을 내보겠다”면서 “올해부터는 라운드를 자주 즐길 작정”이라고 귀띔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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