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가장 존경한 할아버지… 왜 살갑게 대하지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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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규(1928∼2009)

이사를 한 달 앞둔 얼마 전,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던 중 낡아 버린 앨범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버릴 결심을 하고 앨범 속 사진을 하나씩 꺼내다 우연히 발견한 것은 제 초등학교 졸업식에 오신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장손(長孫)의 졸업식에 휴가를 쓰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오신 할아버지를 저는 그때 왜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을까요? 지금 남은 건 후회뿐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흔히 위인을 말하거나 은사(恩師)를 떠올리지만 저에게 존경하는 분은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는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을 맨몸으로 이겨내신 분입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항상 그을리고 앙상한 팔다리를 드러낸 채 모내기를 하거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리어카에 싣고 둑길로 걸어오시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성실히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강인하시던 할아버지도 몇 번 약해지시는 순간이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때가 그랬습니다. 할아버지는 홀로 시골에 계시기 힘들다며 부모님, 여동생 등이 방 2칸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이 처음에는 영 마땅치 않았습니다. 더욱이 담배를 한시도 떼어 놓지 못하실 정도로 골초셨기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밭까지 빌려 기어이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농기구를 달그락거리며 흙먼지 잔뜩 묻혀서 들어오시는 할아버지를 가족 모두 애써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수확 철이 되면 할아버지는 부족한 일손 때문에 손자인 저를 밭에서 일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7년 정도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렇게 철없던 손자가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회사에 입사한 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할아버지의 깊은 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대학 시절, 아버지의 실직으로 혹시나 손자 대학 입학금이 없을까 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며 모아두신 쌈짓돈을 꺼내시고 그것도 모자라 더운 여름날에도 밭에서 일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 사정을 듣고 남몰래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으셨지만 일평생 배움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매일같이 새벽 4∼5시에 일어나시어 고서(古書)부터 대하소설, 신문까지 다양한 읽을거리를 항상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나태해질 때마다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튼튼한 나무 같았던 할아버지가 폐렴으로 병원을 오가실 때가 마지막인 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혹시 당신께서 떠나더라도 “곧 태어날 증손자 잘 보살피고 잘살아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가오는 5월에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던 아들 녀석과 찾아뵙겠습니다.

손자 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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