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五感물리학>‘양자센싱’으로 확장된 ‘오감’… 자연·우주·생명의 근원을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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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양자 통신과 함께
21세기 양자과학기술의 한 축
자기장·전기장·중력·빛 등
다양한 ‘물리량 연구’ 활발

양자역학, 그러니까 인류가 아는 한 가장 깊은 층위에서 자연을 기술하는 일련의 법칙들은, 상식을 벗어난다. 예를 들면, 원자나 전자처럼 크기가 아주 작은 입자들은 공간적으로 여러 다른 위치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손오공 분신술 같은 이야기를 누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주 작은 세상, 아주 추운 세상, 아주 단순한 세상 등에서는, 양자역학이 만물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다.

상식 밖의 자연법칙이 때로 경이로울지라도,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상식은 경험의 수준에 머무르기 마련이고, 인간의 경험이란 여러모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 볼 수 없고, 묵직한 저음의 고래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 태양 빛의 드넓은 스펙트럼 대부분을 보지 못하고, 발아래 땅속 움직임도 좀처럼 듣지 못한다. 인간은 결국 유한한 크기의 존재일 뿐이고, 감각기관은 자연의 무한한 다채로움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말하자면, 상식은 인간이 편파적으로 재단한 세상일 뿐이다. 따라서 상식이 경험 너머에서도 옳을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는 건 요행을 바라는 일이다.

물론 인간은 인지능력을 바탕으로 신체적 한계 너머로 오감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흔한 예로, 망원경과 현미경이 보는 눈을, 초음파 기술이 듣는 귀를 넓힌 것처럼 말이다. 또 저울, 가스 센서, 물성 분석 장치 등은 각각 촉각, 후각, 미각의 범위를 넓힌 예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들에게 없는 감각 기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구 자기장에 반응하는 나침반이 가까운 예다. 몇몇 포유류, 새, 초파리, 박테리아 등 지구상 여러 생물체가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에겐 자기장을 감지하는 기관이 없다. 그 대신에 인류는 나침반을 만들어 지구를 탐험하고, 땅과 바다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문명을 따라 오감의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인류가 바라보는 자연과 우주는 조금씩이나마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져 갔다. 최근 몇 년 사이만 해도, 시공간의 특이점(singularity)인 블랙홀을 관찰하고, 두 블랙홀의 충돌로 생겨난 시공간의 출렁거림을 듣는 등의 눈부신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근본적으로 양자역학적이라면, 더 깊숙이 숨겨진 자연의 모습을 꺼내 보이는 데 역시 양자역학이 쓸모가 있지는 않을까? 예를 들자면, 양자역학적 나침반을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실은 모든 물질 속에는 아주 작은, 그래서 양자역학 법칙을 잘 따르는, 나침반 비슷한 게 들어 있다. 앞서 말한 원자의 핵이나 전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자석이자 나침반이다. 다만 대부분의 물질 속에서 이 무수한 자석은 서로 반대 방향 짝을 이뤄가며 그 효과가 상쇄돼 있다. 외부 자극을 통해 이러한 균형을 조금이라도 깨트리게 되면, 바로 자기장을 감지하는 센서가 된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자기공명영상(MRI)이 그런 방식이다. 지구 대신에 몸속 미세한 자기장의 분포를 탐지하는 MRI는 양자역학적 나침반이자 자기장 센서다.

또 다른 예로, 초전도 양자간섭장치(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 SQUID)라는 어려운 이름의 센서를 만들면, 지구 자기장의 1조 분의 1 크기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미약한 자기장을 측정해서 뭐할까 싶겠지만, 이를 통해 인간의 뇌 활동을 밝혀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MRI와 초전도 간섭장치 둘 다 무수히 많은 원자와 전자가 함께 만들어낸 집단적 성질을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 하나의 개별적 성질을 사용하는 소형 정밀 자기장 센서가 개발되고 있다. 모두 양자역학 법칙에 바탕을 둔 센서들이다.

이렇게 양자약학적 특성을 사용해 오감을 넓히거나 오감 너머의 물리량을 감지하는 것을 양자 센싱(quantum sensing)이라고 부른다. 양자 컴퓨터 및 양자 통신과 함께 21세기 양자과학기술의 한 축을 이룬다.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자기장뿐만 아니라, 전기장, 중력, 빛, 무게와 힘 등 다양한 물리량 등을 보다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양자 센싱을 통해 확장된 인간의 감각은 지금껏 인류에게 감춰져 있던 자연과 우주, 생명의 어떤 모습에 새로운 빛을 비추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