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구감소, 전화위복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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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케인스는 인구 감소 영향으로
기업 투자부진과 실업률 우려
일본 경제 상황과는 맞지 않아

생산감소 주장도 단선적 시각
AI·로봇 등이 인력 대체 가능
국가의 생산성이 문제의 핵심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출생률이 떨어진다고 했지만 그래도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총인구수는 증가해왔는데, 마침내 지난해 11월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왔다. 한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가 말하듯 국가에 재앙이 닥칠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 인구 한 명당 생산능력이 고정돼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재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성에 변화가 있다면 단선적으로 예측하기가 힘들게 된다.

“풍력 제분기는 봉건 영주가 있는 사회를 낳았고, 증기 제분기는 산업자본가가 존재하는 사회를 탄생시켰다”고 했듯이 생산력이 변하면 그 위에 구축된 사회구조도 변하게 마련이다. 인구 감소와 경제 구조 변화 측면에서 경제전문가들이 제기해온 대표적 가설들을 하나씩 따져보기로 하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대에 이미 인구 감소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1937년에 발표한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논문에서 한 국가의 인구가 줄어들 경우 전반적인 소비 부진을 초래해 기업의 투자 축소로 이어지며, 이것이 높은 실업률을 동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연령(15∼64세)인구가 감소하는 일본 사회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일본은 지금 인력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중소기업들이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1.57배였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가 1.57개나 널려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인구 감소가 생산 감소를 초래하며 이로 인해 성장률은 낮아지고 이것이 다시금 생산 감소의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생산 = 인구수 × 1인당 노동’ 방정식을 기초로 한다. 이 역시 최근의 생산력 변화 추세에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현대자동차는 얼마 전 의왕연구소를 언론에 개방했다. 이 미래형 공장에서는 사람의 손길 없이 거의 대부분 공정을 인공지능(AI)과 로봇을 중심으로 진행해 완성차를 조립한다. 사실상 노동의 종말을 보여주는 곳이다. 독일 아디다스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공장을 돌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무인공장 덕분에 자국 내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추고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는데 상주 인력이 1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인구 감소가 신사고 발견이나 발명의 위축을 가져온다는 논리. 신사고는 연구·개발(R&D) 종사 인구의 숫자에 의존하는데 인구 감소는 이들 숫자의 감소로 연결된다는 것. 한마디로 R&D 종사자를 총인구에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그리고 유럽을 주름잡았던 첨단 금융업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이토록 쟁쟁한 위인들을 배출했던 피렌체는 당시 인구가 7만∼8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인구수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생산가능인구의 고령자 부양 부담이 급증하리라는 게 네 번째 주장이다. 이 역시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1889년에 세계에서 최초로 국민연금 제도를 창안, 시행했다. 그 후 1920년대 이래 전문가들 사이에 경제활동인구가 퇴직자들의 연금을 감당해내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더군다나 지난 한 세기 독일인의 평균 수명은 30년이나 연장되는 반면 청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4%에서 20%로 줄었다. 그러나 여태껏 별문제가 없다. 비결은 꾸준한 경제성장 덕분이었다. 19세기 말 독일과 현재의 1인당 노동생산성에는 천문학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인구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노베이션(혁신)과 생산성에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AI를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할 경우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생산성 향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회와 국민이 이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느냐가 국가의 생존 여부를 가를 것이다. 조선의 1800년대 말 인구가 1500만∼1600만 명이었다. 조선은 인구가 적거나 인재가 모자라서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다. 지도층의 시대정신이 타락하고 병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