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들 반대에도… 탄핵 건넌 트럼프 ‘무차별 특권행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선거자금 모금행사 가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선거자금 모금 행사장으로 떠나기 전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법무부에 노골적인 개입 이어
매관매직 혐의 前주지사 감형
화이트칼라 범죄자 특별사면
민주 “힘있는 사람 면책” 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미 연방 상원의원 매관매직 혐의로 수감 중이던 로드 블라고예비치(민주) 일리노이주 전 주지사에 대해 특별 감형 조치를 내렸다. 블라고예비치 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TV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의 진행자였을 때 출연자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안 부결 이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측근 로저 스톤 재판에 개입, 사법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무차별적인 대통령특권 행사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 사기와 위증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던 버나드 케릭 전 뉴욕시 경찰국장 등 7명에 대한 특별 사면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고예비치 전 주지사를 포함한 4명에겐 특별 감형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면·감형 대상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블라고예비치 전 주지사다. 그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의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 후임자 지명권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시도한 혐의로 징역 14년 형을 선고받고 2012년부터 수감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블라고예비치 전 주지사에 대해 사면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면·감형 발표 전 취재진에게 “블라고예비치는 감옥에서 8년 동안 복역했다”며 “그것은 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그가 잠시 ‘어프렌티스’에 출연한 적이 있다”며 “그는 매우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번 사면대상에 포함된 케릭 전 국장은 트럼프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측근이다.

민주당이 이번 사면권 행사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공화당 일각에서도 반대를 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사면 권한은 부당한 것을 바로잡거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지 힘 있는 사람들에게 면책권을 주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빌 패스크렐(민주·뉴저지) 하원의원은 “이 불명예스러운 인물들을 사면한 것은 법을 지키지 않는 행정부의 또 다른 국가적 스캔들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과 팻 시펄론 백악관 법률고문 등에게 전화를 걸어 블라고예비치의 특별 감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안 부결 이후 불충스럽다고 생각되는 참모들을 쫓아내고 법무부 문제에 개입하는 등 일련의 대통령 특권을 휘몰아 행사하는 가운데 나온 조치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하원의 탄핵조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을 백악관에서 내보냈고, 고든 손들런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도 미국으로 소환한 바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2016년 대선 당시 자신을 도왔던 스톤이 위증 및 증인 매수 등 7개의 혐의로 7~9년형을 구형받자 “매우 끔찍하고 불공정하다”고 공격했다. 법무부는 트럼프 대통령 불만 표시에 “스톤에 대한 구형량을 낮추겠다”고 발표했고 해당 검사 4명은 항의표시로 사직서를 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전직 법무부 관리들의 공개 서명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 연방법관협회도 트럼프 대통령의 스톤 사건 개입 논란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국 연방 판사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바 법무장관의 사법개입 논란과 관련해 19일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시아 루페 연방법관협회 회장은 “판사들은 개별 재판에 대한 공격을 염려하고 있다”며 “주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 김석 특파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