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정갈하고 정 넘쳤던…‘102년 10개월’ 할머니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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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숙(1916∼2019)

상수(上壽)를 누렸지만 외로웠던 삶, 가슴이 아립니다. “혼자 살아온 세월에 길들어 외롭지는 않은데 지엽다(지겹다). 저승서 날로(나를) 어떡(얼른) 데꼬가뿌야(데려가야) 너거(너희)가 편할 낀데(건데)….” 100세 시대를 이미 살다 가신 할머니, “오래 살아서 구차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러던 할머니께서 2019년 1월 1일 103번째 생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서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 “그르렁” 가래 끓는 소리로 병원에 모신 것이 이 세상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1916년 3월생이니 102년 10개월을 사셨습니다. 주소지인 울주군 범서읍의 주민 중 100세 이상이 6명뿐이었으니 흔치 않은 삶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경주 김씨의 1남 4녀 중 셋째로 20세에 울산 시내 부잣집 외아들과 혼인하셨습니다. 농사가 많았던 탓에 머슴을 두고서도 낮에는 논밭 관리, 밤에는 길쌈질, 삼시 세끼 준비로 하루 2시간 수면이 일상이었습니다. 참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6·25전쟁 때는 피란민과 군인들이 널찍한 집에 자리 잡는 바람에 한동안 이들 끼니까지 챙겨야 했습니다. 오일장이면 식사 해결을 위해 몰려드는 시골 친·인척들로 장날이 무서울 지경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정미소까지 운영할 정도의 재력으로 기부 씀씀이가 커 할머니는 마음고생도 많았습니다. 결국 마을 교량 등 시설물 건설 기부, 친·인척 지원, 사업 투자로 가산을 탕진하고서 문중 재실(齋室)을 관리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화병 때문이었는지 재실로 들어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1961년 48세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할머니는 1969년 친정과 가까운 범서읍 망성리, 배산임수(背山臨水)의 자연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여기서 막내딸을 출가시킨 이후 줄곧 혼자였습니다. 남편 없이 60년을 홀로 사셨습니다. 슬하에 2남 4녀, 외손을 포함해 손주 7남 17녀, 증손주 17남 17녀 해서 모두 64명의 자손을 두었습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닌 게 삶의 이치. “수명이 길면 욕된 일도 많다”고 한 요임금의 말처럼, 자식을 앞세우는 슬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할머니를 돌보던 맏아들이 2010년 11월 77세로 곁을 떠났습니다. 석 달 전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고쳐준 것이 맏아들의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작은아들과 큰딸도 먼저 떠났습니다.

외로움을 홀로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경(佛經)을 표지와 속지가 해어질 정도로 가까이하셨습니다. 열반의 경지를 깨우치는 ‘반야심경’, 참회와 함께 소원 성취를 염원하는 ‘천수경’을 늘 소리 내어 읽으셨습니다. 6남매 중 3남매를 먼저 보낸 어미로서의 마음도 담았을 것입니다.

한평생 표현은 명증하고 합리적이었습니다. 생활은 정갈했고 정(情)은 넘쳐서 집을 찾는 사람마다 “맨입에 보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1년, 살아생전 “지엽다” 하시던 말씀이 가슴을 쿵쿵 때립니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더 많이 함께하지 못했음에 가슴이 아립니다. 한 세기를 넘는 삶을 살면서도 꿋꿋하고 넉넉하셨던 할머니! 이 세상을 살다 간 우리 모두의 부모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헤어진 아픔보다 엷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손자 박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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