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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nterview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1일(金)
“낙하산 편견 극복하려… 디지털 농업혁신 더 과감히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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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규 농촌진흥청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하는 농업과 그렇지 못한 농업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시장 발굴과 구조 변화 등을 통해 우리 농촌이 보다 풍성하고 윤택해지도록 모두가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낙중 기자
■ ‘관료출신 연구기관 수장’ 김경규 농촌진흥청장

‘R&D 기관 이끌 수 있나’ 한계 지적 많아
‘실패 해보자’ 도발적 자극…연구조직에 활력

물댈 걱정없이 쌀농사… 농업구조 완전 쇄신
농업·농촌이 더 풍족해지는 방향으로 유도

좋아하는 책이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도전이 혁신 만든다는 것 의심치 않습니다


김경규 농촌진흥청장의 집무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있다. 우리나라 위도상에선 좀처럼 키우기 힘들어 보이는 ‘국내산’ 커피나무부터, 특이한 무늬의 호접란은 물론, 미세먼지를 없애주는 기능성 덩굴까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국내 농업 연구·개발(R&D) 기관의 수장 집무실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통 농업 관료 출신인 김 청장은 R&D 자체에 대해선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농진청장으로 재직하며 민간과 함께 추진한 국산 ‘고온극복형 스마트 쿨링하우스(냉실)’가 올해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에 시범 설치된다. 뜨거운 열사의 땅에 농업 혁명을 시도하는 획기적인 사례다. 여름철 고온을 막고 신선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재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시설을 보기 위해 지난해 12월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전주혁신도시의 농진청을 방문하기도 했다. 평범한 농업 관료가 어떻게 R&D 기관을 이끌며 1년 만에 혁신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지난 10일 농진청 집무실에서 김 청장을 만났다.

‘관료 출신이 연구조직을 이끄는 데 어려움이 없을까’부터 궁금했다.

“외부에서 오면 다들 낙하산이라고 그러지 않나?(웃음) 사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연구조직이라는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활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적인 태도로 연구에 나서 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때로는 ‘이제 우리도 실패 좀 해봐야 한다’고 내가 먼저 도발적으로 자극하곤 한다. 실패는 도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결과인데, 과거 기관의 R&D는 ‘연구를 위한 연구’에 머문 사례가 많았다. 특히 공공부문 R&D는 예산을 따기 위해 결과를 억지로 만든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 청장은 시간 날 때마다 산책 겸해서 드넓은 농진청 연구동을 돌아다니며 직접 온실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을 만난다. 농작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청장이 개별 연구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연구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물론, 연구원들의 업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인터뷰 도중 집무실에 놓인 풍성한 호접란을 가리켰다. “특이하게 꽃잎에 무늬가 들어 있는데,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수출하고 있는 품종”이라며 “민간에서 이 같은 품종개량이 잘되지 않아 농진청 연구진이 시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분야에 농진청이 뛰어들어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쿨링하우스도 민간에서 먼저 시도했지만 농진청이 민간의 도전적 시도를 지원하며 실증한 끝에 열매를 맺었다. 이 쿨링하우스가 UAE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한국 농업기술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와 같은 선진 농업국도 못한 것을 한국이 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요즘 김 청장은 반드시 이를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감에 밤잠도 설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보여주는 ‘혁신적 사고’의 연원이 궁금했다. 농식품부에 줄곧 재직했고, 조직 내에서 영어를 잘해 쌀시장 개방 협상 등에 나서며 국내 쌀시장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능력 있는 행정관료’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R&D 기관의 수장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농진청장 취임 직전까지도 미지수였다.

“나도 연구자는 아니다. R&D 기관의 수장으로 연구를 잘하기보다는 연구를 잘하도록 뒷받침하고 이끌어 주는 게 중요하다. 관료 시절의 해외 경험을 통해 우리 연구기관이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 선진 농업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은 자극을 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도 파견을 갔고, 국장 시절에는 미국 농무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비옥하고 넓은 국토를 보유한 이들 나라의 기계화·과학화된 농업을 보니 우리 농촌의 현실이 그대로 떠오르더라.”

김 청장의 왼쪽 손가락 위에는 큰 흉터가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일을 돕다가 낫을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손을 크게 베었다고 한다.

그가 농림 분야에 애착을 가진 것은 이런 성장 배경,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해외 근무 당시 우리 농촌은 자신의 어린 시절, 즉 구식 농기계로 소먹이 풀을 베고, 논에 모를 직접 심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영농기술이 고도화되고, 기계가 농사를 짓는 시대지만 아직도 해외 우수 농업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영세하고 부족한 게 많다”고 했다. 최근 참외로 유명한 경북 성주에 들렀던 일을 예로 들었다. 성주 참외의 우수한 품질은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고 내수의 75%를 차지하지만 이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란다. 참외농사 짓고 나면 연로한 농민들이 병원 가는 게 그야말로 일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일을 통해 돈과 보람을 얻어야 하지만 우리 농업·농촌은 일하면 병을 얻는 구조라고 걱정했다. 미국, 유럽 등이 선진 농업국이 된 것은 넓은 토지 등 천혜 환경도 일조했지만 농업 종사자들도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구조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창조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농촌이 잘살기 위해서라도 농업의 혁신은 필수라며 다른 나라의 농업 혁신 사례를 일일이 열거했다. 세계 최대 농업국인 미국은 고품질 안전식품이나 국제농업무역 강화, 농업 일자리 창출에 투자한다고 했다. 일본은 데이터를 토대로 한 스마트 농업과 기후변화, 네덜란드는 자국산 고급 농업기술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농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며 혁신의 고삐를 죄고 있다.

“분명 혁신의 어두운 면도 있다. 혁신적인 농가와 그렇지 못한 농가 간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 있다.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수급불균형도 불가피하다. 시장 개방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인구는 줄어 내수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두렵다고 혁신을 피해서는 안 된다. 농업 구조를 완전히 쇄신해 국산 농산물의 고급화와 수출 등 새로운 수요 발굴 등을 통해 농업·농촌이 보다 풍족해지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그는 디지털 농업을 추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ICBM’(IoT, Cloud, Bigdata, Mobile)을 농업에 적용해 투입을 최소화하고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혁신이 제대로 착근하면 매년 가뭄과 수해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는 “디지털 농업으로 물 댈 걱정 없이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이라며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 현실이 된다’는 말은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도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농식품부 재직 당시 부처 내에서 다독가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고도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기관장을 맡고 있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또 관료로 30년을 살아왔지만 성취감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다고 솔직히 속내를 털어놨다. 그래도 ‘다시 태어나도 관료를 할 거냐’고 물었더니 “다시 할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관료를) 선택할 것 같다”고 했다. 시장 개방의 시대에 관료로 살며 국내 농업 피해를 최소화했다거나, 농·축협 통합의 산파 역할 등을 한 것은 만족스럽지만 격변기에 본인의 역할이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는 후회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매우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도전이 혁신을 만든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운 게 많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가 쓴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No Room for Small Dreams)’다.” 인터뷰를 마치는데 김 청장은 여전히 더 큰 꿈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곧 도전이고, 그 도전이 성공하면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너무도 강했다.

전주=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mail 박정민 기자 / 경제산업부 / 차장 박정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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