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맨 김 위 매콤 명태살 ‘소박하지만 깊은 맛’… 백제 王都의 음식내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매콤한 간장양념으로 조리된 개성집 명태조림은 고슬고슬한 솥밥과 잘 어울린다.

■ 공주서 만난 밥도둑

- ‘개성집’
간장에 조린 명태와 솥밥 한상
양념에 비빈 밥 겉절이와 궁합

- ‘유가네칼국수’
바지락·미더덕 육수에 바다향
쫄깃한 면발 넣어 시원한 한입

- ‘명성불고기’
불판에 생고기 넣고 지글지글
삼삼하고 달콤한 육수 맛 일품

- ‘간식집’ 잡채만두
노릇노릇 구워 초장에 ‘찍먹’
어르신들 “추억의 맛” 감탄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충남 공주시는 금강유역의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화유적이 다양한 도시다. 석장리박물관을 둘러보면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등에 가보면 이 도시가 찬란했던 백제의 왕도였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지만 음식 문화는 전통을 발판삼아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날 공주의 음식을 확인해보기 위해 눈 내리던 지난 주말, 공주에서 당일 미식여행을 즐기고 왔다.

공주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칼국수’라고 답한다. 개인마다 공주에 대해 다른 경험, 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겠지만 음식에 대한 경험은 공통된 것이 많은 것 같다. 6·25전쟁 당시 구호물품의 총 집결지였던 대전과 인근 충청지역에는 칼국수뿐만 아니라 세월이 녹아 있는 국수 공장과 유명한 국수 전문집이 많다. 공주에서 최고의 칼국수로 손꼽히며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유가네칼국수’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라 그런지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밀복과 가다랑어로 우려낸 육수에 바지락, 미더덕, 홍합, 굴 등과 채소를 넣어 만든 시원한 국물 맛의 해물 칼국수로 유명하다. ‘복해물칼국수’를 주문했다.

메뉴 이름만 봐서는 맑은 복국에 국수 면이 함께 그릇째 나오는 칼국수를 예상했다. 그러나 기본 육수가 냄비 채로 제공되고 여기에 해산물과 채소, 칼국수 면을 넣어 테이블에서 끓여 먹는 즉석 칼국수였다. 기본 육수에 바지락과 미더덕을 넣고 한소끔 끓였다. 이후 홍합을 넣고 다시 한소끔 끓여냈다가 칼국수 면과 호박채, 팽이버섯 등을 넣고 또 한소끔 끓여낸 후 마지막에 굴을 넣으며 불을 껐다. 육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진하고 부드러운 복 육수의 감칠맛과 풍미가 훌륭했다. 시원한 바다향이 가득한 국물 맛을 보며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공주에 내려와 이 맛을 즐기니 더없이 좋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가치를 발휘할 것 같은 그런 육수였다. 한참을 육수 즐기기에 빠졌다. 더 이상 면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면도 즐기기 시작했는데 면발도 밀가루 풋내가 전혀 없이 쫄깃하게 잘 익었다. 개인적으로 면은 조금 오래 끓인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가격대비 훌륭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의 칼국수를 먹었다면 공주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1인분도 판매하니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도 맘 편하고 푸짐하게 즉석에서 끓여내는 해물 칼국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공주에 다시 오면 이곳에 또 방문해 얼큰한 칼국수와 다른 메뉴들도 맛보고 싶어졌다. 손맛이 있는 국숫집을 방문하는 것은 공주를 방문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주는 칼국수야.” 이 말은 사실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유가네칼국수의 복해물칼국수, 명성불고기의 생불고기, 간식집의 잡채만두.

공주에서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음식은 국내산 한우를 이용해 만든 ‘명성불고기’의 생불고기다. 양념에 재운 고기를 구워 먹는 불고기가 아닌 양념하지 않은 생불고기를 팽이버섯과 대파, 부추, 당면 등 풍성한 재료와 함께 양념 국물을 넉넉히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반원 모양 불판에 생불고기와 채소, 당면 등을 올리고, 육수를 부으면 국물이 아래로 모인다. 고기와 다른 재료가 엉키지 않도록 계속 풀어내면서 지글지글 끓여야 한다. 고기와 국물을 오래 끓이면 아미노산 특유의 거친 맛과 향이 올라오지만 신선한 생고기의 위력인지 오래 끓여도 거친 맛과 향 없이 삼삼하고 달콤한 불고기 국물 맛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 함께 제공되는 찬들도 다양하고 훌륭했다. 봄동으로 만든 겉절이, 배추김치, 물김치 등의 김치 종류와 느타리버섯 볶음, 시금치나물, 연꽃대 무침, 도라지 무침 등의 나물류, 젓갈, 마늘대와 건새우 볶음, 잡채 등 찬이 생불고기와 잘 어울렸다. 특히 연꽃의 대로 만든 무침은 오독오독 씹히는 질감이 독특했다. 적당한 불 조절과 불판의 효과로 국물은 빨리 졸지 않았다. 달콤한 불고기 국물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몸은 녹고 얼굴에 미소가 돈다. 유독 어르신 손님이 많은 이 식당은 50년 가까이 지역에서 사랑받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공주 산성시장 내에 있는 ‘간식집’으로 향했다. 작은 분식집으로 주메뉴는 잡채만두다.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부부가 잡채만두에 대해 설명해줬다. “1970년대부터 공주뿐 아니라 인근 도시 부여까지 길거리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군만두가 지금 이 집에서 파는 잡채만두와 모양도 맛도 만드는 방식도 비슷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이 음식을 먹으면 학창시절도 생각나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나지요. 이제는 공주에서만 팔아요. 다른 곳에서는 이제 안 파는 것 같아요.” 맛은 내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팬에서 지지다 보니 튀김처럼 바삭하지 않고 기름졌다. 노란 무와 초장이 함께 나왔다. 생소하지만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초장의 매콤함과 새콤함이 기름진 만두의 느끼함을 잡아줬다. 이 집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먹다 남긴 만두를 포장해 나오면서부터다. 주말이라 시장 내에 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잠시 멈춰 “하나만 싸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더니 가족 단위 방문자들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만두 3개요”라고 했고, 포장 주문이 이어졌다.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포장해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오랫동안 이곳 음식을 즐겨온 단골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정겨웠다. 만두를 포장하며 기다리던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 그 맛은 아니야, 근데도 자꾸 오게 되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명태조림이 유명해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개성집’을 방문했다. 명태조림은 대·중·소 크기별로 주문이 가능했는데 솥밥과 김, 콩나물 무침, 양배추 샐러드, 단호박전, 배추 겉절이 등이 함께 제공됐다. 매콤한 간장양념으로 조리된 명태조림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솥밥과 잘 어울렸다. 직원이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맨 김에 밥 한 숟가락을 얹고, 명태살을 크게 발라내 양념을 고루 묻힌 후 청양고추 하나를 얹어 드세요.” 양념이 꽤 매콤한 편이라 청양고추는 뺐다. 남은 명태찜 양념에 밥이나 국수사리, 찬으로 제공된 콩나물 무침 등을 버무려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쯤 인천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명태조림을 먹고 실망했던 경험이 있다. 개성집 명태조림을 먹으며 50년 내공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국내에서는 멸종 수준이라는 명태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에 흔하게 즐겼던 명태의 맛과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미국산 명태를 사용했다는 원산지 표시에 아쉬움이 생겼다. 동해안 지역의 명태 양식이 성업해 이곳에서도 국산 명태를 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 미식가이드

시원한 해물 육수가 유명한 ‘유가네칼국수’(041-856-1053)는 공주시 원댕이길 8(금학동)에 있다. 복해물칼국수 8000원, 김치전골칼국수 8000원, 수육 2만 원, 오삼불고기와 낙삼불고기 1만1000원, 평양냉면 9000원, 왕만두 6000원. 식당 주변에 주차공간이 넉넉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영업한다. 47년 역사의 ‘명성불고기’(041-857-8853)는 웅진로 200(산성동 133-4)에 있다. 국내산 한우등심 3만5000원, 생불고기 2만 원, 국내산 생삽겹살 1만3000원, 돼지갈비 1만2000원. 오전 11시 30분에 문을 열며 오후 3∼5시에는 저녁 준비시간이라 영업하지 않는다.

매콤한 명태조림이 유명한 ‘개성집’(041-856-0066)은 금성동 192-3에 있다. 명태조림 (대)4만4000원·(중)3만3000원·(소)2만2000원, 명태와 문어의 조합 명문갈비조림 6만9000원, 명태갈비조림 (대)5만 원·(중)4만 원·(소)3만 원, 명태문어조림 (대)5만9000원·(중)4만9000원, 명태주꾸미조림 (대)5만 원·(중)4만 원·(소)3만 원, 코다리냉면 8000원.

잡채만두가 유명한 ‘간식집’(041-852-4812)은 산성시장 1길 46, 산성시장 내에 있다. 잡채만두(7개), 떡볶이, 김밥 모두 1인분 3000원, 카드는 받지 않는다. 장날(1·6일)을 제외한 화요일 휴무. 본문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방문하면 좋은 곳을 소개한다. 석갈비가 유명한 ‘예가’(041-854-7900)는 신관동 금벽로 535에 있다. 18년 내공의 석갈비는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 먹는 것이 아닌 주방에서 모두 구워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소고기 석갈비 정식 2만4000원, 돼지고기 석갈비 정식 1만4000원. 오후 9시 영업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