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제라도 질본에 實質 결정권 줘야 팬데믹 막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이 하루가 다르게 더 심각해지는데도, 방역을 총괄하는 질병관리본부는 옥상옥에 치여 들러리로 전락한 형국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각 부처 차관들이 참여한 중앙사고수습본부는 20일 “제한된 범위에서 지역사회 감염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단계”라며 본부장이 차관급인 질본과 다르게 규정했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전파가 확인되는 상황”이라며 심각성을 일깨운 질본의 현실 진단부터 사실상 ‘과잉’으로 치부한 것으로 비친다. 감염병 예방·관리 정책의 전문가 집단인 질본의 판단을 방역 비(非)전문 관료들이 깔아뭉개는 식으로는 재앙을 키울 뿐이다.

입국 금지 대상 지역의 중국 전역 확대 필요성을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부정하는 배경도 마찬가지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지난 19일 “방역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고(高)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부분들을 고려해 정부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일엔 “위험 지역 입국자 규모를 줄이면 안전하다는 방역의 기본 원칙이 있다”고도 했다. ‘중국 눈치 보기’ 등으로 질본 판단이 무시됐다는 취지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도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등이 외교적 파장과 경제적 충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입국 제한 등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확인했다.

추가 확진자는 국내 첫 사망자까지 나온 20일 53명에 이어 21일도 오전 기준 52명이다. 일본 크루즈선에 탑승했던 확진자들을 제외하면, 한국 확진자 156명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속출하며 전국화하고도 있다. 이제라도 질본에 감염 확산 차단책의 실질(實質) 결정권을 줘야 팬데믹(대유행)을 막을 수 있다. 정부 일각에서도 “질본이 아이디어가 많은데 결정 권한이 없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을 더 방관·방조할 때가 아니다. ‘질본의 전문성·독립성 보장’은 문 대통령이 제2 메르스 사태를 막겠다며 내세운 선거공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