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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경제] Science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4일(月)
기획·투자부터 제작·평가까지… 영화와 과학의 길 매우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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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시나리오 - 연구계획서
제작·투자자 - 정부·기업 설득
촬영·편집 - 연구·정리 거쳐
평가 받아 오스카·노벨상 영예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던 시절, 한동안 영화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어서 원하는 영화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자막도 없는 해적판을 구해서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전함 포템킨’이나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감독의 ‘동경 이야기’와 같은 영화를 심각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엊그제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쿠엔틴 형님’이라 불렀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초기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도 미국에서 개봉되자마자 친구가 보내준 VTR로 즐겼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 평론 공부를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까지도 들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후에는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부터 들었던 생각이, 어찌 보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현대에서 과학이 진행되는 순서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점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단계다. 과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단계가 있다. 바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다. 이후 영화 제작과 과학 연구는 유사한 난관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돈 문제 해결이다. 감독은 제작자를 찾고 투자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계획서를 정부나 기업에 제출해서 왜 연구가 필요한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이 잘 풀려서 돈이 확보되면,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의 경우에는 배우를 섭외하고 연기와 촬영이라고 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고가의 촬영 장비와 영화세트나 야외 촬영지도 확보해야 하고, 여러 사람이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을 구해야 하고, 실험이나 관찰이라는 과정이 진행된다. 실험실에서 고가의 분석 장비로 측정이 진행되기도 하고, 연구 분야에 따라서 야외의 오지를 다니며 관찰과 모니터링이 진행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이 영화나 과학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이후에도 큰일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서는 촬영이 끝나면 편집이라고 하는 중요한 과정이 존재한다. 긴 촬영 장면들을 잘라내고 엮어 가면서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내게 된다. 또 분위기를 고조하기 위한 음향효과로 음악이 들어간다. 과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된다. 과학자들이 연구해 얻은 숫자를 그냥 모두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자료들은 아깝지만 버려야 하기도 하고, 결과물을 여러 가지 통계나 수학적인 방법으로 변환해 계산하기도 한다. 또 최종 결과물은 그래프나 표로 보기 좋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 감독은 완성된 영화로 평가를 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과학자는 논문으로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영화는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기고, 그중에 극히 일부는 칸영화제나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기도 한다. 훌륭한 논문은 다른 과학자에게 널리 읽히고 인용되며 운이 좋으면 노벨상을 필두로 한 여러 분야의 상을 받기도 한다.

영화든 과학이든 큰돈이 결부된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역사상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든 영화 ‘아바타’의 경우는 40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었다고 알려졌고, 요즘 유행하는 마블 시리즈 영화 대부분 2000억∼3000억 원이 기본 예산이다. 그러나 이런 대작은 극소수의 감독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이고 대부분의 감독 지망생은 영화 한 편 만들 기회를 갖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디 영화’ 감독이라 불리며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 자기 이름을 낼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과학자들도 어찌 보면 비슷한 운명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평균 액수가 6억 원 정도 되고, 우리나라 대표 연구 중심대학 교수들의 연평균 연구비 액수가 5억 원에 달하고, 전국 평균치도 1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과학 연구도 큰 액수의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이런 연구비 풍요의 시대에도, 내가 준비한 연구제안서는 얼마 전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앞으로는 나 스스로를 ‘인디 과학자’라 부르며, 저예산이지만 좋은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봉 감독도 ‘지리멸렬’이라는 저예산 인디 영화로 출발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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