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방역대책 뒤트는 ‘시진핑 訪韓’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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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회정책학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정부광화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전염병 위기경보를 ‘경계’단계에서 ‘심각’단계로 격상했다.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다가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전파되면서 국내 확진자가 550여 명을 넘어서자 위기경보를 올린 것이다. 이는 2009년 신종플루 전파를 막기 위해 내려진 후 11년 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감염대책을 추진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 대응에 중요한 허점들이 노출됐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전문기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행정 부처는 이들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조치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지난해 말 발생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할 만큼 국제적으로 전파된 근본 원인도 전문가의 의견이 전혀 존중되지 않았던 데 있다. 현재 이스라엘·바레인·요르단 등 중동 국가와 영국 등 전 세계 14개국이 한국발 외국인의 자국 입국을 금지 또는 제한했다. 미국과 대만은 한국에 대한 여행 권고 수위를 1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또,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가 국제적으로 확산되자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자국 입국을 과감하게 금지했다. 중국을 방문한 자국민 가운데 감염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증상이 없는 사람은 14일 동안 증상 여부를 추적하도록 했다. 이것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19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조치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하곤 이 같은 조치를 한 국가는 많지 않다. 입국금지 조치를 한 국가 중 호주를 제외한 대다수는 전염병에 대처할 방역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다. 대다수 유럽 국가는 중국을 여행한 사람들을 철저히 검역하고 증상이 있는 사람은 강제로 격리치료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여행한 사람에게 부분적 입국제한 조치를 하고 있는데, 관련해 많은 정치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3번째 확진자 발생 직후 정부에 “최악의 경우 중국으로부터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조치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위한 행정적 준비를 당부”한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마지막 기회”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한 결정은 전문가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게 옳다. 중국을 여행한 외국인의 전면적 입국금지가 옳은지 그른지는 정치적 편향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해 코로나19 방역에 시 주석 방한(訪韓) 같은 정치적 고려가 있음을 시사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그 대책은 오직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역학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지난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정부가 제대로 정책에 반영, 시행하지 못했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권역별로 감염병 전문 치료병원을 지정하고, 시·도별 임시 격리시설을 마련하도록 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채 위기에 부닥쳤다. 과거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도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