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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Leadership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5일(火)
춤 연기 먼저 선보이고 스태프 이름 다 외워 감동주는 봉준호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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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으로 오스카 4관왕 봉준호

‘마더’촬영 위해 4년넘게 김혜자에 러브콜… 항상 정성 다해
‘밥때’ 잘 챙기고 노고 꼭 치하 … 군림하지 않는 스타일

기생충 현장 정리 안되자 딱 한번 정색… 쉽게 화내지 않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때 스코세이지에 경의… 늘 자신 낮춰


리더(leader)와 보스(boss)를 어떻게 구분할까? 보스는 뒤에서 “힘내라”고 소리치고, 리더는 앞에서 “힘내자”며 솔선수범한다. 또한 보스는 ‘나’의 치적에 집중하는 반면, 리더는 ‘우리’의 공을 널리 알린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호령한 봉준호 감독은 확실히 리더에 가깝다.

일례 하나.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수상 퍼레이드를 벌인 봉준호 감독이 가장 크게 기뻐한 수상 순간은 언제였을까. ‘기생충’의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미국배우조합상(SAG)이 준 앙상블상을 받았을 때를 꼽는다. 대다수 상이 작품이나 감독, 스태프에게 쏠린 반면 앙상블상은 배우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찬사였다. 곽 대표는 “20년간 알고 지낸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이 그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봤다’고 한다”고 전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온기로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봉 감독의 리더십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봉준호의 자세

봉 감독은 지난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뒷정리를 하고 가겠다”며 미국에 남았다. 그를 수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귀국 비행기에도 혼자 올랐다.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 ENM 관계자는 “원체 혼자 해결하는 스타일”이라며 “격식을 차리거나 의전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엉덩이가 가볍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뛴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통해 이미 ‘거장’이라 칭송받던 그가 영화 ‘마더’의 촬영을 앞두고 김혜자를 설득하기 위해 삼고초려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무려 4년 넘게 봉 감독이 직접 러브콜을 보낸 끝에 김혜자를 10년 만에 충무로로 데려올 수 있었다.

‘마더’의 촬영 때도 기막힌 순간이 있었다. 이 영화는 들판을 걸어오던 김혜자가 뜻 모를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춤추는 것이 어색하다는 김혜자를 위해 봉 감독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함께 몸을 흔들었다. 이 모습을 보던 스태프들도 함께 덩실덩실 춤을 췄고, 민망함을 벗어던진 김혜자의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가 탄생될 수 있었다.

송강호와 함께 ‘봉준호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변희봉 역시 최근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봉 감독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차례 ‘플란다스의 개’ 출연을 고사하던 변희봉이 봉 감독과 처음 만난 곳은 서울 마포 가든호텔. 가든호텔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위치한 여의도로 가는 마포대로 초입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희봉은 “여의도 갈 길 있으면 그때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니 어찌 거절하겠나”라며 “그 자리에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일일이 말하며 간청하는 봉 감독에게 설득당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변희봉은 촬영 현장에서 강하게 각인된 봉 감독의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봉 감독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해도 충분히 들릴 거리에서 연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굳이 가까이 걸어오더군요. 그러고는 ‘선생님, 이렇게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라고 정중히 묻고는 돌아갔어요.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허∼’하고 감탄했죠. 봉 감독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어요.”

◇봉준호의 예의

봉 감독은 지난 16일 귀국했다. 금의환향한 그를 보기 위해 ‘기생충’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간단한 소감 발표를 마친 봉 감독이 공항을 빠져나간 뒤 홍보사 대표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먼 길까지 나와 고생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모두에게 전해달라”고 봉 감독이 직접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주 작은 일화일 수 있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 군림하는 몇몇 감독의 이야기에 익숙한 충무로에서 “현장의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외며 일일이 챙긴다”는 봉 감독의 소문은 충분히 훈훈하다.

같은 맥락으로 봉 감독은 ‘밥때’를 잘 챙긴다. 콘티를 꼼꼼히 짜기로 정평이 난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촬영장에서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스태프들이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일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이는 봉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견지하던 모습이다. 20년의 세월을 함께한 송강호가 봉준호와 처음 만난 건 지난 1997년이다. 당시 봉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겸 조감독이었던 영화 ‘모텔 선인장’의 오디션에 지원했으나 불합격한 송강호에게 봉 감독은 “다음에 꼭 같이 일하고 싶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송강호 역시 무명일 때 자신을 잊지 않고 챙기던 봉 감독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한 송강호였지만, 그때의 약속을 가슴 깊이 새겨뒀다가 봉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살인의 추억’의 출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런 봉준호식 예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시 한 번 빛났다.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그는 함께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향해 “내가 학교에서 마틴의 영화를 보고 공부했다. 같이 후보가 된 것도 영광인데 상을 받아 더 큰 영광”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오스카소화이트’(oscarsowhite)라고 비판받던 아카데미가 봉 감독에게 예의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봉준호의 소통

‘기생충’의 수상 행렬 속에 봉 감독의 촌철살인 수상 소감은 매번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말을 아끼는 것으로 그의 의견을 피력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한국 취재진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작품상 때는 네 번째 무대에 오르게 되니 민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한마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스는 겁을 주는 반면 리더는 희망을 주고, 보스는 복종을 요구하지만 리더는 존경을 받는다고 했다. 여기에 유머까지 겸비한 봉 감독은 올바른 리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곽 대표는 “봉 감독을 다 좋아한다. 그의 작품에 참여해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봉 감독과 소통하는 것 자체를 기쁘게 생각한다”며 “게다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말하는 편이라 모두가 편하게 일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봉 감독도 사람이다. 일을 위해 만난 관계인 만큼, 일처리가 원활치 않아 화가 날 때도 있을 법하다. 곽 대표도 “‘기생충’을 촬영하며 딱 한 번 정색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때 봉 감독이 내뱉은 한마디는 이거였다. “그러니까 무슨 상황인 거야?”

곽 대표는 “순간적으로 모두가 상황 판단이 안 돼서 현장 정리를 못 하고 있었다. 배우들에게 ‘쉬라’고 얘기해주거나 결정을 못 하고 있으니 봉 감독이 ‘무슨 상황인 거야? 빨리 말씀드려야지’라고 말했다”며 “다른 사람이라면 평상시 말하는 톤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그런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봉 감독이 그렇게 말하니 모두가 움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런 일화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봉 감독의 리더십을 정리하자면, 그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단, 말할 때는 상대방이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상식적이고 정확하게 건넨다. 현장에 있는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름을 부른다. 밥때를 놓치지 않고, 노고를 치하한다. 필요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인다. 또한 쉽게 화내지 않는다.

결국 봉 감독은 우쭐하지도 않고, 스스로 리더가 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충실한 동시에 예의를 지키며 상대방과 소통하는 사이,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를 최고의 리더로 치켜세우는 셈이다.


■ 봉준호 감독의 인맥

봉준호 감독은 어린 시절 외톨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기간 자신의 영화에 지하 공간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친구가 없다 보니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했고, 쓸데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화도 그렸다”며 “시간과 힘이 남아돌아 아파트 지하에도 자주 갔다. 그곳에는 주민들이 버린 가구, 전자제품, 침대, 헬스기구 등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경비아저씨가 비공식적으로 만들어놓은 휴식 공간인 아파트 지하를 본 기억이 단편 ‘지리멸렬’과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한다”며 “‘괴물’에도 하수구가 많이 나오고, ‘기생충’에선 본격적으로 수직적 구조로 등장한다”고 밝혔다.

영화 현장에서 존중과 배려, 신뢰로 다져진 사람들과 반복해서 일하며 그의 인맥이 구축됐다.

박찬욱 영화감독

봉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지리멸렬’을 보고 그를 충무로로 이끌었다. 이후 작품에 대한 영감을 나누는 사이가 됐고, 박 감독이 ‘설국열차’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박 감독은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후 “봉준호 같은 재능의 소유자와 동시대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친구로 지내는 일은 크나큰 축복이지만 사실 적잖이 귀찮다”며 “‘기생충’이 공개된 후 내가 아는 외국 영화인들이 자꾸 전화해서 ‘도대체 한국영화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등의 말을 건넨다”고 말했다.

틸다 스윈턴 배우

‘설국열차’ ‘옥자’ 등 두 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스윈턴은 201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봉 감독을 처음 만나 “당신의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고, 봉 감독은 남자 캐릭터를 여자로 수정해 ‘설국열차’에 캐스팅했다. 이 인연이 ‘옥자’로 이어졌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설국열차’ 때 친해져서 다음 작품을 이야기하다 4년 전 ‘옥자’의 큰 그림을 보여줬고, 틸다가 재미있겠다고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스윈턴은 ‘기생충’ 미국 드라마 판에도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다.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기생충’ 제작자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잡지 기자를 거쳐 영화제작자가 된 곽 대표는 ‘기생충’을 제작하게 된 것에 대해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고 표현했다. 봉 감독이 ‘마더’ 제작사인 바른손에 ‘기생충’ 시놉시스를 들고 오며 인연이 시작됐다. 함께 아카데미 캠페인을 펼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졌다. 곽 대표는 봉 감독의 차기작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지만, 다른 제작사를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변희봉 배우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한 후 봉 감독과 2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봉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TV 사극에 나온 변희봉을 보고 존경해왔다고 고백했다. 봉 감독은 첫 출연 제안에 “역할이 경비원이야? 개를 잡는 이야기라고? 이게 영화감이야?”라며 거절한 변희봉을 설득했고, 두 사람의 인연은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로 이어졌다. 봉 감독은 변희봉을 “캐도 캐도 뭔가 있을 것 같아 더 궁금하게 하는 배우”라며 ‘광맥’으로 표현했다.

홍경표 촬영감독

봉 감독의 예술적 상상을 화면으로 구현해내는 최고의 파트너다. 그는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등 3편을 함께 만들었다. ‘섭외 1순위’로 꼽히는 홍 감독은 빛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잡아내 캐릭터를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봉 감독은 ‘기생충’에 녹아 있는 사회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홍 감독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정성스럽게 콘트라스트를 조정해 ‘기생충:흑백판’을 완성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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