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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6일(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대중독재 우려… 대한민국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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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농업박물관 앞 정자에 앉아 “대한민국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왜 지켜야 하는지 치열하게 인식하지 않는 위기에 빠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도약이냐 쇠망이냐 갈림길서
위기인식 못하는 위기에 처해
국가 정체성 무너지는 상황에
논변 사라지고 비아냥만 난무

文정부 ‘脫원전·소주성’ 정책
전략도 국민합의도 없이 추진
오히려 소란의 기폭제로 작용

자신만의 언어로 思考 못하고
思惟세계 갖추지 못한 통치자는
국가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려


노(老)교수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걱정부터 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기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새로운 도약으로 나아가느냐, 쇠망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데, 위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진짜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지만 무엇을 지키고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천착하는 치열한 논변은 사라지고, 복에 겨운 재잘거림과 비아냥거림만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과 지성계에는 그악스러운 권력욕과 범속한 출세주의와 더불어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이 판을 치고, 위기 극복 시도 그 자체를 기피하는 반(反)지성주의적 피로감이 만연해 있다고 질타했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사고의 힘을 잃어가는 대신 허구와 위선, ‘좋은 게 좋다’ 식의 나태함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걱정이다.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편집증 수준의 아집과 종교적 광기 수준의 편협이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며 “자유로운 소통과 진지한 토론을 통해 보편적인 진실과 가치를 추구한다는 민주주의 본래의 이상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보수와 진보 간 싸움이 내란이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진정성 없는 범속한 권력투쟁에 불과하다”면서 “선동정치에 오랫동안 휩싸여 있다 보니, 광신도 비슷한 집단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여러 정책으로 인해 사회적 소란과 국민적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며 “정파 갈등은 천박한 패거리 싸움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현 정부는 그럴듯한 이념적 언어를 내세우고 있어 외면적으로는 이념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념적으로 빈곤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갖지 못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이 통치자가 될 경우 국가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져든다”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민주화 시대 30여 년이 지나면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고 행위 자체를 기피하는 대중적 무사고성이 지배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이젠 대중영합주의를 넘어 대중에게 아첨하고 복종하는 반(反)민주주의나 사이비 민주주의 혹은 대중독재로 나아가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양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문화일보에서 진행됐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대한민국은 근본적으로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부터 갈등을 겪고 있다. ‘5000만 인구와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외면적인 국가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황폐화, 이념 대립, 대중영합주의, 정책 혼란 등 수많은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국가 발전이 정체된 상태에 있다. 이것은 국가가 새로운 도약이나 자기 발전을 이루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위기란 어느 때나 존재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부터 문재인 정부 탄생과 ‘조국 사태’와 같은 일련의 정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위기가 국가 존재론적 상황으로 악화됐다. 한국 정치에서 논변이 사라졌다. 그러한 현상은 정치적 행위라는 이름의 반(反)정치 행위가 일상적이 되고, 정치에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윤리가 사라지고, 비이성과 광기가 지배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적 위기의 존재 여부에 대해 합리적으로 논의하는 기능성마저 배제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국가정체성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이란 국가의 존재 이유 또는 국가 생활의 근본 목표이자, 그것에 대한 국민적 이해나 자의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국가 정체성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특정 국가체제의 성립 과정의 정당성 문제, 국가체제 운영의 목표 및 방법과 관련해 정파들 사이의 기본적인 합의가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당이나 정파들 각각이 표방하는 역사관이나 이념이 국가의 존재성 자체와 관련해 분열된 상태를 의미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불편한 진실들’을 ‘편하게’ 볼 줄 알고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양 교수는 논쟁적인 화두를 던졌다. 바로 대한민국 기원설이다. 양 교수는 ‘상하이임시정부 기원설’과 ‘대한제국 기원설’은 대한민국 건국을 밝히고 설명하는 데 근거가 불충분하고, 연구가 안 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틀을 벗어나 문명사적 시각에서 한국 근대사를 바라봐야 한다며 ‘문명사적 및 정신사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조선-일제 식민통치-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국제정치의 변동을 포함한 세계문명사의 총체적인 흐름과 한국인 내부의 정신사적 흐름 속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분명히 부일 세력과 친일 세력의 합작’이라는 선까지 나갔다.

―현재 역사학의 주류인 민족학계가 발끈할 수 있다.

“한국사를 한국사의 틀을 벗어나 문명사적 및 정신사의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해하면 발끈할 이유가 없다. 상하이임시정부 등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지만, 해방은 결코 우리 스스로의 결집된 민족적 역량과 독자적인 투쟁에 의해 획득된 것이 아니다. 해방 후의 현대사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위선적 진보 · 나태한 보수… 생산적 경쟁 없이 세속적 권력싸움뿐”

이념적 언어만 남발하는 진보
결국 이념적 빈곤 인정하는꼴
사회현실 이해 노력조차 안해

위기의 심각성 각성못한 보수
비전 제시할 이념도 정립못해
국가발전 위한 변화 추구해야

사회 갈등 중재해야할 학자들
위기에도 사고 무력증에 빠져
권력 향한 집단투쟁에만 몰두



우익 독립운동 세력의 일부, 부일(附日) 세력, 친일 세력의 합작으로 건국해 공산화를 저지했으며, 이승만 정권 및 자유당의 몰락과 함께 부일 세력은 한국의 정치무대에서 사라졌고, 식민통치의 시기에 나름대로 일본을 통한 서구 문명을 수용하면서 독립을 준비한 집단인 친일 세력이 5·16 군사정변 이후 그러한 문명적 식견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추구한 결과가 바로 산업화의 성공이고, 이에 따른 민주화의 병행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다시 국가 위기 문제로 돌아가 보자.

“국가적 위기란 위기의 속성상 기존의 사고 틀이나 방법론으로는 그 해결책은 물론 그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문제들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사고 틀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거 뭐 있어’ ‘잘되는데 왜 그래’라는 반지성주의적 피로감이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정신적 적폐로 쌓인 결과가 국가 정체성의 위기다. 여기서 피로감이란 사물을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를 기피하는 사고의 무력증과 창조적 상상력의 소진 상태를 말한다. 정말 심각한 상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위기론이 더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기 출현은 일차적으로 국민이 국가 통치의 궁극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 잘못된 결정으로 자질이 부족하거나 없는 국가원수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행위를 통해 발생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여러 정책으로 인해 사회적 소란과 국민적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등 논란이 많은 경제정책 추진이 소란의 기폭제로 작동했다. 국가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교 전략도 치밀한 검토나 국민적 합의 과정이 생략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조국 사태가 불을 붙였다.”

―현 정부는 ‘적폐청산’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이 정부가 오랜 정신적 적폐의 산물이다. 일단 이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 이 정부 들어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행사를 대통령이 부정하려 했다. 건국 100주년이라고 했다. 문제는 건국 100주년을 내세우면서도 비판이 나오면 반박할 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얼버무려 버렸다. 건국 100주년에 대한 비판이 학계에서 나오자, ‘대한민국 영광’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임시정부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주장의 억지를 증언하지 않느냐. 임시정부를 만든 분들이 왜 ‘임시’ 자를 붙여 놨겠느냐. 건국을 제대로 하기 전에 임시로 만들어 놓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건국을 준비하자는 것 아닌가.”

―탈원전 정책도 비슷한 경우인가.

“대통령이나 공직자에게 모순된 말이나 일관성 없는 언행은 절대적 금제(禁制)다. 그것은 국가를 흐리멍덩하고 혼란스러운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탈원전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언행이다. 국내에선 위험하다고 하고 해외에선 ‘최고로 안전하다’고 했다. 현 정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러한 모순된 언행에다 일관된 입장이 없으며, 진실성과 진정성을 갖고 남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논변이 결핍돼 있다. 국체를 바꾸는 개헌안을 제안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를 발표하고 대통령이 전자결재하는 정권에 어떻게 공적 권위 및 진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보나.

“현 정권의 인사를 포함한 소위 진보적이라는 정치인들은 그럴듯한 이념적 언어들은 쉽게 내세우지만 정작 그 개념적 실체에 대해 천착하는 노력은 물론 막중하고 심오한 의미를 갖는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조차 갖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가 바로 그들이 외면적으로는 이념적 인간으로 보이게 하지만 실상은 이념적으로 빈곤하다는 사실의 증언이다. 그러한 인간형의 극단적인 형태가 해나 아렌트가 카를 아이히만을 두고 언급한 ‘무사고성’의 인간이다. 현 집권 세력은 국가정책의 기획 및 시행에 경외심이 없는 것 같고 치밀하게 검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권력투쟁에는 능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권력의 행사에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집단으로 보인다.”

―‘조국(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전후로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통치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은 사람을 보는 눈, ‘지인지감(知人之鑑)’인데,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은 그 덕목의 부족을 결정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임명하며 표명한 “의혹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장관 임명을 보류하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언명은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다. 공직자도 범법 행위의 의혹만으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공익의 수행, 특히 사법 업무를 책임지는 공직의 경우에는 특히 범죄 의혹이 있을 경우 그것이 완벽히 해소되기 전까지 임명을 보류함이 절대적 당위이다. 조국 사태는 임명 취소나 해임 혹은 검찰 수사 등 의례적인 인사권 행사나 사법처리로 끝날 수 있었던 사안을 대통령이 나서 거대한 대중적 소요 사태로 키운 국가적 희비극,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로 ‘웃픈(웃기고 슬픈)’ 일이 됐다.”

양 교수는 ‘정치는 전문적인 지식과 깊은 식견이 없어도 가능한 직능’이라는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인간의 소업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교육’과 함께 ‘정치’라고 꼽았는데도 말이다. 정치가 출세욕을 채우고 공직을 탐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모든 이의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양 교수는 “정치인이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길은 정치가 진정 어렵다는 걸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은 어때야 하나.

“내란이나 그에 버금가는 극도의 정치적 혼란 상태에서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국가와 그렇지 못해 쇠망에 이른 국가 사이에는 지도자 및 지도층의 리더십에서 차이가 있었다. 토인비가 말하는 창조적 소수와 지배적 소수의 차이다. 통치권자를 비롯한 지도층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통치 이념을 도입하거나 혹은 적어도 새로운 사고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얼마나 진지하고 절박하게 느끼는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럼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가.

“본인도 고백하지 않았는가. 자기는 정치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맞지도 않는다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길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려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다. 모든 게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예의 바르고 착한 행동은 잘해도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갖지 못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이 통치자가 될 경우 국가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양 교수는 “‘착하고 번듯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대해 심리적으로 강박상태에 빠진 사람의 경우 외양의 친근한 모습과 달리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사람은 대화 상대가 자신과 지내기 편한 사람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패거리 정치를 조장해 정당정치를 퇴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영합주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정치체제에서 정파들의 목표는 권력 획득의 원천인 다수의 지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대중영합주의 혹은 더 나아가 대중독재는 민주주의와 전혀 별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위험 요소가 현실화되는 상태로 이해해야 한다. 아테네 민주정이 전형적인 경우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대중영합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대중영합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차이는 결국 국가 생활을 통해 실현할 이상이나 목표가 무엇이고, 그것에 비춰 특정 시점에서 ‘더 좋은 삶’이라는 국가 전체적으로 추구해야 할 구체적이고 합당한 정책이 무엇이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정치적 지도층이나 사회적 지배층이 그러한 문제에 대한 경륜과 식견이 부족하고, 도덕적 및 지적 권위가 확고하지 못하며, 일반 대중이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약할 때, 그리고 정치인들이 정책 시행을 국가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대중의 단기적이거나 충동적인 욕구에 편승하고 일시적인 여론에 부화뇌동하는 경향이 강할 경우, 대중영합주의는 언제든 민주주의의 외양으로 출현할 수 있다. 특히 한 사회에서 다수의 의사에 무조건 따르거나 다수가 원하는 것을 시행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의견이 득세할 때 민주주의는 쉽게 대중영합주의로 변질되며, 그것이 더욱 악화될 때 국가권력이 개인이나 시민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대중독재나 전체주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수는 있지만 보수주의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수 야당이 비판을 받고 있다.

“보수 야당이 위기 운운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위기 자체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정치적 나태함과 이념적 무력감, 권력 경쟁을 ‘생업’으로 하면서도 권력의지는 물론 정치적 생존 본능마저 퇴화하고 있다. 이게 보수 야당 위기의 실체다. 보수정당이 ‘보수층’이라는 특정의 사회적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가의 진정한 보수를 위해 실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보일 때 보수의 위기 극복이 시작된다.”

―진보의 모습은 어떤가.

“보수가 기득권에 집착해 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정치적 무관심이나 반공동체적인 향락주의적 행태로 나타난다면, 진보는 역사의 실상을 왜곡·호도하거나 체계적이고 면밀한 성찰과 기획 없이 특정한 미래상에 대해 교조적 혹은 광신적으로 집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오도된 관념과 정서의 원천에는 진보가 있다. 국가가 처한 역사적이고 총체적인 상황의 실체나 사회 현실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민 세금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짜 돈’인 것처럼 국가 재정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치밀한 검토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착한’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양 교수는 한국 지성계를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 위기에 대해 상투적인 처방이나 대증요법 식 해결책을 제시해 놓고 마치 과학적 객관성 혹은 학문적 중립을 지켰다며 만족하는 지적 허구와 위선의 풍토가 지성계에 자리 잡고 있다”며 “지식인들마저 반지성주의 피로감에 빠져 ‘창조적 소수’가 되지 못할 때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생 정치철학을 연구한 그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국가 생활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해석하면서 정책적으로 대처하거나 새로운 입법 또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통해 국가 생활의 새로운 미래를 추구하는 소업”이란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 유병권 정치부장 ybk@munhwa.com
e-mail 유병권 기자 / 정치부 / 부장 유병권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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