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구도 국민도 정부 탓에 모욕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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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사회부장

세계 각국서 국민이 온갖 수모
文 대구행은 사후약방문 불과
방역 무능으로 이미 최대 피해

민심 분노 폭발에 뒤늦은 대응
정권 안팎에‘권력 장사치’설쳐
이제라도 전문가 조언 들어야

세계 각국에서, 심지어 중국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격리되고 억류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고, 지금도 BTS 새 앨범이 전 세계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데, 한국민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치욕과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되풀이된 호소에도 중국인 및 중국 경유자들의 입국을 ‘봉쇄’하지 않고, 곧 진정될 것이라는 엉터리 예측을 내놓고, 그런 와중에 ‘기생충’ 제작·출연진을 불러 김정숙 여사와 함께 파안대소하는 모습까지 보도됐다. 그 직후 코로나 사태가 급속히 심각해지자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올렸다. 태풍이 덮쳐 이미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때야 태풍 경보를 발령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25일 오후 대구를 방문했지만, 문자 그대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었다. ‘대구 코로나’라는 정부 보도자료 제목이 대구 시민들 속을 긁어놓더니, 이번엔 여당 대변인 입에서 ‘대구·경북 봉쇄’ 표현까지 나와 민심을 뒤집었다.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마친 뒤 오전 9시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구·경북은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통상의 차단 조치를 넘는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시행해 확산을 차단하기로 했다”면서 “이동 등에 일정 정도 행정력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대구시민이 무슨 죄가 있는가. 정부는 은근히 신천지교회 탓이라고 미루지만, 정부 방역 실패에 따른 최대 피해 지역일 뿐이다. 뒤늦게 범국가적 지원과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구 상주 등의 카드를 내놨다. 대구에 비정상적 창궐 조짐이 나타난 시점은 지난 19일이다. 그로부터 거의 1주일 지나 문 대통령이 대구를 찾았다. 일을 그르치고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불과 며칠 전 “일부 언론을 통해 지나치게 공포나 불안이 부풀려졌다(17일)”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13일)”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경제 활동이나 소비 활동은 위축됨 없이 평소대로 해달라(12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러니 보여주기식 이벤트란 비판을 자초한다. 문 대통령은 대구시청 2층 상황실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대동하고 권영진 대구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지역 특별대책회의를 열었다. 방역의 ABC는 봉쇄와 통제다. 바이러스는 현장지휘로 통제되지도 않고,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지도 않는다.

워싱턴포스트에 최근 실린 캐나다의 달라 라나보건대학 데이비드 피스먼 교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코로나19는 2월 말 피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바이러스 발생 7일째에 누적 숫자로 감염자가 2명이고 회복자가 1명으로 나타났다. 기초감염 재생산지수(Ro·감염자 1명이 발생시키는 2차 감염자 숫자)는 2.3으로 설정했다. 63일째에 감염자가 943명까지 치솟고, 84일째에는 감염자 0명, 회복자가 3410명, 사망자 67명에 이른다. 이 모델을 한국 상황에 대입하면, 첫 확진자 발생 날짜는 1월 20일이므로 피크는 3월 중순, 종식은 5월 초·중순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방역 전문가들에게 전권을 주고, 정부는 후방에서 총력 지원을 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전문가 집단을 불러 수시로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외환위기 같은 중대 현안에 소신을 피력했다. 지금처럼 보여주기 쇼가 아닌 허심탄회한 비공개 석상의 대화였다. 방역 전문가들에게 바이러스 증식은 ‘S자’ 곡선을 형성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초기에 주춤한 것처럼 보여도 어느 시점에 솟구치게 된다는 것인데, 그대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했다면 이런 대재앙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교도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감염학회의 ‘중국 전역 중국인 입국금지’ 조언 등을 번번이 무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 안위보다 권력만 탐하는 운동권 인사들이 자신의 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벌거숭이 임금에게 ‘바보나 나쁜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옷’을 파는 장사치가 권력 안팎에 여전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