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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7일(木)
애정표현도 집안살림도… 적극적이었던 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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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축년(1841) 6월 21일 유배 중인 추사가 아내 예안이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추사 언간 24). 추사는 아내의 건강은 물론 넷째 누님의 회갑잔치에 의복은 마련해서 보냈는지, 서울에서 보낸 간장 맛에 대한 평가 등 세세하게 집안일을 묻고 있다. 왼쪽 그림은 제자 허련이 그린 추사의 초상 ‘완당선생해천일립상’(1847)의 일부. 돌베개 제공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 정창권 지음 / 돌베개

김정희 가문 5代걸친 편지로
18~19세기 가정생활 등 엿봐
친정 왕래·가족내 주도권 등
가부장제 고정관념과 ‘차이’

“답장이 없어 섭섭하옵니다”
“메밀국수 만드는 법 기별을”
아내에게 존칭 쓰는것도 눈길


“저번 가는 길에 보낸 편지는 보아 계시옵니까? 그 사이에 인편이 있었으나 편지를 못 보오니 부끄러워 답장을 아니하여 계시옵니까? 나는 마음이 매우 섭섭하옵니다.(……) 아무래도 집안일이 말이 아니어서 이리 답답합니다마는 얼마 동안이오리까? 올해는 집안일을 모두 당신께 맡기고 나는 걱정을 말자 하였더니 다 뜻대로 아니 되오니 도리어 우습고 심난하고 난처한 일이 많으니 답답할 뿐이옵니다.”(‘추사 언간 1’ 중 부분)

‘무인년(1818) 2월 11일, 남편이 올립니다’로 끝맺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한글 편지(언간·諺簡) 중 일부다. 추사는 아내 예안이씨보다 두 살 연상이었지만, 꼬박꼬박 ‘계시옵니까’ ‘하옵니다’의 존칭어를 썼다.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답신이 없는 데 대해 ‘섭섭하옵니다’로 토로한다. 추사가 33세 때 대구 감영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면서 서울집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다. 그해 추사는 바쁜 일이 많아 집안일을 가급적 아내에게 맡기려고 했던 듯하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미안하고 답답한 심사가 담겨 있다. 추사가 평소 아내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집안일에 부부공동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추사 집안의 한글편지는 모두 85통이 전해진다. 추사의 증조모 화순옹주(영조의 장녀)가 혜경궁 홍씨(사도세자의 부인)로부터 받은 1통을 시작으로 조모 해평윤씨, 외조모 한산이씨, 어머니 기계유씨, 아버지 김노경, 동생, 서종손(庶從孫)에 이르기까지 ‘추사가(秋史家) 언간’이 45통, 추사가 쓴 ‘추사 언간’이 40통이다. 5대에 걸쳐 가족 간에 주고받은 이런 편지들은 추사 집안이 거의 유일해 18∼19세기 생활과 문화, 언어, 의식 등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가족사 자료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가 완고한 가부장제 시대로 남성들은 오로지 바깥일에만 전념하고 여성들은 시댁에 유폐된 채 의복과 음식 수발 등 남성의 뒷바라지만 하며 평생 희생적인 삶을 살았을 거라는 관념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추사가와 추사의 한글 편지를 보면, 여성들은 남편이나 자식의 부임지에 수시로 다녔고, 출가외인이란 말이 무색하게 친정과 왕래했으며, 집안 경영에 주도권을 행사하는 등 자유롭고 당당한 여가장이었다. 추사의 조모 해평윤씨는 살림을 주관할뿐더러 집안 형제간의 갈등 등 위기에서 남편 김이주를 제쳐놓고 직접 나서서 원만히 처리하곤 했다.

또한 남성들은 어느 면에서는 여성들보다 집안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집안일이 일상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처가 어른과 며느리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도 있어 평소 처가와 밀접하게 지냈고 시아버지로서도 다정다감했음을 볼 수 있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감기에 걸린 아내 기계유씨에게 보낸 편지는 “다른 시골 의원 같은 것은 혹 온다고 해도 부디부디 보지 마시옵소서. 더구나 감기에는 잘못하면 큰일이 날 것이니 부디부디 조심하시옵소서”라고 ‘부디부디’를 연발하며 애정을 과시한다. 그 또한 아내에게 극존칭을 쓴다. 아내를 잃은 뒤 그가 둘째 며느리 경주최씨에게 보낸 편지는 “그 사이 여러 번 보낸 글씨는 든든하며, 그동안 모두 아무 탈 없이, 홍역의 남은 증세는 다 쾌히 회복하며 태평히 지내느냐”고 적어, 평소 며느리하고 편지를 자주 왕래했고 안주인이 없는 집안을 단속하며 걱정했음을 드러낸다.

“일전에 창녕(둘째아들)의 생일에 만두를 하여 먹으니, 메밀은 먹물을 드려 놓은 것 같고 김치가 없어 변변히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인편에 메밀가루를 얻어 보내고 메밀국수 만드는 법을 기별하면 다시 만들어 보겠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추사가 언간’ 중)

“서울에서 보낸 침채(김치)는 워낙 소금을 과하게 한 것이라 비록 맛은 변했으나 그래도 김치에 주린 입이라 견디어 먹었사옵니다. 새우젓은 맛이 변했고, 조기젓과 장볶이(볶은고추장)가 맛이 그리 변하지 않았으니 이상하옵니다.”(‘추사 어간’ 중)

아버지 김노경과 추사는 의복은 물론 음식에서도 전문가라 할 만큼 많이 알고 일일이 평가하거나 관여했다. 당시 주요했던 제사뿐 아니라 의식주의 일상도 남성들이 관여하고 참여했다는 걸 말해준다. 추사 집안의 여성들의 당당함과 남성들의 살림참여 양상은 영의정과 부마를 배출한 벌열(閥閱) 가문의 전통으로 한정해 볼 수도 있겠으나, 이들 편지는 당대 가족사뿐 아니라 여성사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역사연구자 정창권은 이 책을 통해 전문 및 배경·해설과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가미해 처음 추사 5대 가족사의 파노라마를 완성했다.

책의 제목은 유배 중인 추사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도망시(悼亡詩) 중에서 따온 것이다. “누가 월하노인께 호소하여/내세에는 부부가 서로 바꿔 태어나/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나의 이 슬픈 마음을 그대로 알게 했으면.” 304쪽, 1만7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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