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식품산업은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 더 많은 당분, 지방, 나트륨이 든 자극적인 음식을 구입하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결과 우리 몸에는 과거에는 없던 ‘쓰레기에 가까운’ 음식이 들어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식사에 대한 생각 /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현대들어 먹거리 구입 쉬워진탓
먹방 유행…먹는것에 되레 쫓겨
점심시간 ‘근무 방해시간’ 인식
패스트·정크푸드로 혼밥 늘어
외식 늘고 배달앱 ‘만능 서비스’
집서 요리한 ‘일상식사’ 사라져
무엇이든 먹는 습관에 경고장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TV ‘먹방’ 혹은 ‘쿡방’도 오래 못 갈 거라고 생각했다. ‘먹방 다음은 뭐지’라고 지인들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섣부른 예측은 빗나갔다. 먹방은 여행, 토크쇼, 다큐멘터리, 신상 출시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하며 여전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먹방 유튜브 역시 과시형 먹방에서 일상형 먹방으로 트렌드를 바꿔가며 구독자 수를 늘리고 있다. 누군가는 ‘푸드 포르노’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먹방이 대세가 된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의 저자 비 윌슨은 역사상 먹을 것을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기는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먹방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 외에 여분은 없었다. 달콤한 것을 먹으려면 “용감한 동지들이 팀을 꾸려 길고도 위험한 원정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한 포도를, 그것도 싼값에 먹을 수 있다.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먹방 등이 유행했고, “우리는 먹는 것에 쫓기게 된 첫 번째 세대”가 됐다.
인류 식탁은 천변만화했지만, 그중 가장 극명한 변화는 ‘식사시간’일 것이다. 샐러리맨들의 점심시간을 보자. 12시면 곧바로 뛰쳐나가 설렁탕이든 파스타든 한 그릇 먹고 후딱 나온다. 곧바로 카페에서 커피 한잔 주문하면 자리에 앉을 사이도 없이 곧 1시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바빠졌다. 아니 바빠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1900년대 미국인들은 1년에 평균 2700시간을 일했다. 반면 2015년에는 평균 1790시간만 일했다. 각종 기술이 발달하고 제도가 뒷받침된 덕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식사시간을 “하루의 패턴과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 아니라 근무를 방해하는 시간”으로 여기게 됐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경쟁은 심화됐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었지만, 이메일과 스마트폰은 점심시간은 물론 24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점심은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그나마 밥 먹을 짬이 있다면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건강을 위한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시대에도 패스트 푸드와 정크 푸드가 범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전문가들이나 홈쇼핑에서 좋다고 광고하는 식재료와 음식에 집착하는 동안 “오히려 품절되는 것은 집에서 요리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사”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주변만 살짝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우리가 많은 외식을 하고 있으며, 난립하고 있는 배달 앱에는 없는 음식이 없다. 젊은 세대에게 외식은 “단지 선호하는 식사 방식이 아니라 선호하는 오락의 형태”다. 그런가 하면 “마치 끝없는 룸서비스”와도 같은 배달 서비스는, 누군가와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때 매우 공적이고 사회적인 행위였던 식재료 쇼핑은 점점 더 몰개성적이고 사적인 일이 돼가고 있다.”
한 끼 식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함께 저자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점검한다. 실제로 음식은 “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단일 요인”이면서 “생물 다양성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 맛있는 음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거대 자본은 그런 욕망을 최대한 이용해 “세계화된 식품 체계”를 만들고 있다. 비 윌슨은 이런 세태에 역행할 것을 우리 모두에게 촉구한다. “우리는 전 세계 농부들이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몇 가지 농산물을 재배하길 바라는 대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땅이 어떤 식품을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저자도 그것이 힘든 경주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식생활에 다다르려면 건강한 식사에 대한 더 폭넓고 친근한 개념, 사람들의 입맛을 차단하는 대신 반갑게 맞아들이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음식을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 간식보다 식사에 집중하자, 다양하게 먹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자’ 등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경험상 쉽지 않은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지적은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당신의 감각을 일깨워라.” ‘식사에 대한 생각’은 한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었던 것에 대한, 그러나 지금은 거리낌 없이 먹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장과도 같은 책이다. 먹방과 쿡방에 여전히 시선을 주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516쪽, 1만7800원.
장동석·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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