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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terview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28일(金)
“원래 내 이름은 ‘磊진’…돌 만질 팔자라 지금도 매일 3시간씩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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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작업실에서 정과 망치를 들고 돌을 쪼고 있는 전뢰진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 구순(九旬)을 넘긴 고령임에도 여전히 하루 3시간 가까이 작업을 한다. 김낙중 기자

■ ‘92세 현역조각가’ 전뢰진

자살 많던 태종대에 ‘모자상’
작품 속에 ‘가족의 사랑’ 담아

절두산 ‘김대건 동상’세운뒤
40년 가까이 해마다 술 올려

‘미대 학장’ 제의 받았었지만
작업 시간 줄어들까봐 거절

아흔살 넘겨도 ‘현역 애주가’
무심한듯 “술이 나를 좋아해”


“지금도 매일 3시간 정도는 작업을 해. 하루에 두 번 집이랑 작업장을 왔다 갔다 하지. 안 그러면 뭐 할 게 있나.”

인터뷰를 위해 신림동에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의 어두침침한 반지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요즘도 여전히 작업을 하시냐”고 묻자 들려준 이야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각계의 원로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전뢰진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는 후학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아마 ‘전설’이라는 단어에는 요즘에도 여전히 망치와 정을 잡는 ‘현역 조각가’라는 사실 외에 술잔도 놓지 않는 ‘현역 애주가’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전 명예교수는 조각계에서 소문난 ‘술꾼’이다. 한참 어린 제자들이 “가끔 얼굴이 불콰한 노인이 인사동 거리를 휘휘 걷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자세히 보니 전뢰진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는 이제 더이상 얘깃거리도 아니다.

1929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아흔둘.

그러한 고령에 ‘애주가’라는 사실 자체가 화단의 많은 이가 경탄을 자아내는 이유다. 그렇다고 평생 술잔만 마주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부산 태종대의 ‘모자상’, 서울 삼성역 무역센터 앞 ‘가족’, 한양대 본관 앞 ‘사자상’, 테헤란로 개통 기념탑, 남산 3호 터널 개통 ‘독수리 기념탑’ 등 그의 작품들은 현지에서 모두 ‘장소’를 상징하는 일종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반지하 작업실에는 흩어진 돌조각들과 정과 망치, 그라인더 등의 장비에 무쇠 난로 등이 산만하게 펼쳐져 있고 돌가루가 뿌옇게 떠다녔다. 인터뷰 자리인 만큼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20세부터 조각을 했다고 치면 무려 70년. 엄청난 ‘내공’이 느껴질 답변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가 됐다. 인터뷰에 앞서 원로조각가인 고정수 선생이 들려준 일화도 있었다.

“선생님께 언젠가 소장자들로부터 작품을 임차해 회고전을 크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죠. 그러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잘들 있는데 왜 귀찮게 해.’ 노르웨이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을 떠올리게 하는 대답이었죠. 현지 대학교수가 비겔란에게 ‘로댕처럼 유명해지려면 해외전시가 필요하고 그래서 유럽 순회전시를 해야 한다’고 하자 비겔란이 이랬다고 합니다. ‘옛날 희랍 신전이 굴러다니는 것 봤냐’고. 참 대단들 하시죠.”

돌가루 냄새에 차츰 익숙해질 무렵 선생님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  부산 태종대의 ‘모자상’

―미술에 여러 장르가 있는데 왜 조각, 그것도 힘든 돌조각을 하셨나요.

“내 이름의 가운데 자인 뢰자가 ‘뢰(뢰)’가 아니라 원래 돌이 세 개인 ‘磊’야. 이름부터 돌 만질 팔자였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래도 어떤 계기가 있진 않으셨는지요.

“하고 싶어서 했어.”

―돌 중에도 왜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을 하셨나요.

“화강암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

―술은 왜 그렇게 좋아하시죠?

“술이 나를 좋아해.”

무심한 듯한 대답이지만 새겨들으면 그 안에서 “돌은 내 운명”이라는 큰 울림이 들려오는 듯하다.

1980년대 홍익대 미대 조소과 교수로 재직할 때 ‘미대 학장’ 제의를 거절한 얘기는 아직도 후학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대학 총장이 불러 ‘미대 학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과대 학장 자리는 교수에게 영예로운 자리다. 하지만 그때 이렇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학생 가르치는 것도 간신히 하는데, 교수들을 어떻게 가르쳐요.” 사실 화가나 조각가가 ‘학장’이란 중책을 대학에서 맡으면 ‘행정 업무’에 쫓겨 작업할 시간을 뺏길 우려가 있다.

‘돌 만질 팔자’에서 나온 그의 ‘돌 사랑’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도 한몫했다.

부산 태종대 전망대 아래 넓적한 바위는 한때 ‘자살바위’로 불렸다. 매해 30명 이상이 이곳에서 바다로 목숨을 버렸다. 그러나 1976년 높이 2m, 너비 1m에 이르는 그의 작품 ‘모자상’을 설치한 후 자살률이 큰 폭으로 줄었다. 많은 이가 자살을 생각했다가도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이 석조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발길을 돌렸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일화도 있다.

당시 작업실 겸 자택은 서울 상도동의 장승배기 일대에 있었다.

부산시로부터 자살바위 옆 모자상 조각 의뢰를 받자 그는 돌에 ‘사랑’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작심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가족의 사랑’을 작품에 새겨넣기 위해 집 안 거실로 무려 5t에 이르는 대리석 조각을 들여놓는 것이었다. 대리석 조각을 집 안으로 옮기려고 정문 공사를 다시 하고, 거실 일부를 헐어내기도 했다. 가족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전 명예교수를 지켜본 이들은 항상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허허∼’ 웃음만 날리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술회한다.

모자상에 대한 그의 생각과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작품은 1년여 만에 완성돼 태종대로 옮겨져 설치됐다.

전 명예교수는 주로 모자(母子)·가족·여인·동물 등을 주제로 작업했다. 작품은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보는 순간 소박함과 따뜻함, 사랑과 동심(童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손바닥만 한 켄트지 수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언제나 주머니 속 켄트지를 꺼내 드로잉을 한다.

켄트지에는 인물 초상도 종종 그린다. 그래서 즐겨 찾는 식당의 주인 중에는 ‘술이 어느 정도 돼’ 흥에 겨워 그려준 초상화를 지닌 사람이 많다.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 때 대학 제자들이나 조각계 후배들도 많이 찾지만 전 명예교수와 ‘돌 다루는 법’을 함께 얘기했던 이름 모를 석공도 많이 인사를 온다.

전 명예교수의 삶을 일별하면 돌과 조각 그리고 술, 이 정도가 연상된다. 그러나 나이 90에 이르기까지 70년 가까이 돌과 씨름하는 것은 웬만한 결단이 아니면 안 된다.

7년간 곁에서 조수로 함께 작업했던 김성복 성신여대 조소과 교수는 “선생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정과 망치를 들고 돌 앞에 앉으셨습니다. 희미한 미명이라도 들어올 때면 그 모습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2년 전 선화랑에서 열렸던 전뢰진 조각 인생을 회고하는 전시 ‘조각일로 사제동행’(彫刻一路 師弟同行)전에 참여했던 후배들은 “머리와 목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작은 체구로 무거운 돌과 싸우며 차가운 돌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조각가로 65년간 한길을 걸어온 선생님의 모습이 바로 예술”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전시에는 강관욱, 고경숙, 고정수, 권치규, 김경옥, 김성복, 김수현, 김영원, 김창곤, 노용래, 박옥순, 박헌열, 이일호, 이종애, 전덕제, 전소희, 전용환, 정 현, 한진섭, 황순례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후배 조각가들도 함께했다. 이즈음 전뢰진 기념사업회도 발족했다. 회장은 김수현(82) 충북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70년 가까이 줄기차게 조각가로 살았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건 일단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증거다.

그는 매년 김대건 신부 순교일이면 절두산의 ‘김대건 신부 동상’을 찾아 술을 올린다.

―왜 매년 순교일에 찾아 술을 올리나요.

“내가 만들었으니까 숭배해줘야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야.”

―딱히 종교가 없으시다고 들었는데 어떤 경로로 김대건 신부 동상을 만드셨나요. 그것도 돌로 아닌 동상으로.

“김대건 신부 동상은 내게 배당이 왔어. 그리고 내게도 종교가 있어. 할아버지가 절에 다녔으니까. 나도 초파일에는 절에 가.”

절두산 성지의 동상은 1972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 의뢰해 만들어졌다. 젊은이들이 들으면 싱겁고 재미없는 대답이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매년 김대건 신부 동상을 찾아 술을 올리는 일은 ‘재미는 없을 수 있지만’ ‘싱거운 일’은 아니다. 90이 넘은 지금도 정과 망치를 잡을 수 있는 것도 그런 고집이 있어서인지 모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mail 이경택 기자 / 문화부 / 부장 이경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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