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성공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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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지난해 12월 독일 출장 중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화제는, 1990년대 독일의 극심한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볼프스부르크에서 추진된 ‘AUTO 5000’ 프로젝트였다. 주요 내용은, 폭스바겐과 독일 금속노조 간 적정임금, 생산성 혁신 등에 관한 합의를 통해 신규 법인을 설립하고 지역 실업자들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이후 볼프스부르크는 미니밴 투란, SUV 티구안 등 성공적인 차량 모델의 생산기지로 거듭나게 됐다. 슈뢰더 전 총리는 당시 노사 간 입장 차이로 좌초 위기를 맞은 프로젝트를 적극 중재해 회생시킨 주인공이다.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며,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상생형 일자리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지난해 1월 광주시와 현대차 간 투자협약이 체결되며 20여 년 만의 국내 완성차 공장 설립을 위한 광주형 일자리 추진이 본격화했다. 이를 시작으로 지역 노·사·민·정의 양보와 타협에 기반한 상생형 일자리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친환경 설비투자,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을 조건으로 기업의 입지 문제를 해결한 지역, 안정적 노사관계 구축과 적극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투자를 유치한 지역도 있다. 각지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을 합산할 경우, 3조 원 이상의 신규 투자와 약 1만 명의 직접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 역시 상생형 일자리의 확산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조직을 마련하고 법적 근거를 준비해 왔다. 지난해 2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 방안이 발표됐으며, 9월에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지원센터가 일자리위원회에 신설됐다. 올해 1월에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선정·지원 근거를 담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법이 시행되는 4월부터는 상생형 일자리에 대한 선정과 지원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상생형 일자리의 개념조차 모호했던 지난해 이맘때를 생각해 보면 그간 많은 진전이 있었다. 특히, 지역 노·사·민·정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양보하는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이 곳곳에서 체결된 것은 상생의 정신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그간의 성과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사업에 참여하는 각 주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은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타당성 있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근로자는 생산성 향상으로 화답해야 한다. 지역 산업 발전을 위한 주민의 동참과 지방자치단체의 적절한 지원 역시 필요하다. 지역 노·사·민·정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을 때 상생형 일자리가 지역의 토양에 깊게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 한편, 무역 갈등 및 지정학적 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손자병법’ 구지편을 보면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뜻이다. 거센 풍랑 속에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협력하며 함께 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인건비와 생산설비 등 눈에 보이는 요소만이 아닌 사람 중심의 창의와 혁신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가자’는 상생형 일자리의 정신이 우리 경제에 새 희망이 되는 이유다. 그간 각 지역에서 발아한 상생형 일자리가 건강하게 자라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과실을 풍성하게 맺을 수 있도록, 정부 역시 지역과 함께, 국민과 함께 상생형 일자리를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