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감자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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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숙맥이라도 감자와 고구마는 구별할 수 있을 듯하다. ‘숙맥’이라는 말이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왔다지만 감자와 고구마는 콩과 보리만큼이나 다르다. 그런데 방언 조사를 하다 보면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들조차도 숙맥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농사를 짓지 않거나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농사꾼이 이렇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렇다.

두 작물 모두 이 땅에 꽤 늦은 시기에 전해지다 보니 ‘감자’는 문헌에 19세기 이후에나 나타난다. 한글로는 ‘감져’로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한자어 ‘甘藷(감저)’에 뿌리를 두고 있다. ‘藷’는 사탕수수나 마를 뜻하는데 이때는 단맛이 나는 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감자는 단맛이 그리 강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본래 ‘감저’는 표준어의 고구마를 일컫는 말이다. 방언에서도 감자가 ‘하지감자’나 ‘북감자’로 나타나니 본래 감자는 고구마를 가리킨다.

고구마는 감자보다 조금 일찍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본다. 1763년에 일본 통신사로 간 조엄이 대마도에서 들여와 ‘감저(甘藷)’ ‘효자마(孝子麻)’ ‘고귀위마(古貴爲麻)’ 등으로 기록해 놓았다. ‘고귀위마’는 고구마를 뜻하는 대마도 방언 ‘고코이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감저’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어를 차용한 고구마로도 불렀었는데 어느 순간 ‘감저’는 감자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작물이 감저라 불리고 있었으니 중국에서 들어온 작물은 ‘북감저’ ‘호감저’ ‘되감저’ 등으로 불리다가 어느 순간 본래 감저는 ‘고구마’로 밀려나 버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보니 농부들도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동인이 1925년에 발표한 ‘감자’도 마찬가지다. 김동인의 감자 또한 고구마를 가리키는 것인데 소설집 초판본 표지에도 감자꽃이 그려져 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