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美 가이버거, 사상 첫 ‘꿈의 스코어’ 59타 기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알 가이버거(왼쪽)가 59타가 적힌 스코어 카드 모형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77년 PGA 멤피스 클래식 2R
이글1·버디 11개… 결국 정상올라
TV중계 없던 대회라 주목 못받아
車·전화 번호를 MR 59·5959로

골프에서 언젠가부터 18홀을 60타 이하로 치면 ‘꿈의 스코어’로 인정했다. 1977년 6월 10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니 토머스 멤피스 클래식 2라운드가 열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알 가이버거(미국)였다. 그는 11년 전이던 1966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메이저대회 챔피언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첫날 이븐파 72타를 쳤던 가이버거는 2라운드에서는 펄펄 날았다. 10번 홀 버디로 출발해 14번 홀에서 두 번째 버디를 추가한 가이버거는 18번 홀까지 버디 4개를 더해 전반에만 6언더파로 마쳤다. 하지만 그의 대기록은 후반부터 시작됐다. 10번째인 1번 홀(파5)에서 이글까지 잡아내더니 남은 8개 홀에서 버디 5개를 더 추가했다. 후반 9홀에서 7언더파 29타를 쳤던 것.

대회장에 있던 갤러리와 선수, 대회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한 라운드에서 무려 13언더파 59타를 기록했다. 한 라운드 59타는 골프대회 사상 누구도 깨 본 적 없는 대기록이었다. 가이버거는 3라운드에서 이븐파 72타로 주춤한 바람에 선두 게리 플레이어(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2타 뒤진 채 마지막 4라운드에 들어갔다. 가이버거는 4라운드 전반 9홀에서 2오버파로 부진했지만, 후반 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쳤다. 가이버거는 플레이어와 제리 매키(미국)를 2타 차로 따돌리고 힘겨운 우승을 차지했다. 그 날 이후로 가이버거는 ‘미스터 59’로 불렸다.

가이버거의 59타는 골프 역사에 남을 이정표였다. 이후 14년 동안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높은 ‘벽’이었다. 그러나 가이버거 이후 ‘꿈의 59타’는 1990년대에 들어선 뒤 줄줄이 나왔다.

1992년 칩 벡(미국)이 사상 두 번째로 59타를 챙겼고 데이비드 듀발, 폴 고이도스(이상 미국), 스튜어트 애플비(호주) 등이 잇따라 기록했다. 그리고 짐 퓨릭(미국)이 2016년 코네티컷주 리버하일랜드CC(파70)에서 열린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12언더파 58타를 수립했다. 가이버거의 기록은 더는 최저타가 아니다.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2001년 59타를 기록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하지만 가이버거는 대기록을 작성하고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59타를 칠 당시엔 경기를 TV로 중계하지 않아 대중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다.

59타가 작성되고 1주일 뒤 열린 US오픈부터 메이저대회에 한해 18홀을 중계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던 것. 8년 뒤인 1985년 멤피스 클래식을 중계하던 CBS에서 1977년 가이버거 활약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가이버거는 당시 대회에도 출전했지만, 컷탈락한 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모아 함께 TV를 보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가이버거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려는 순간 갑자기 TV에서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들의 석방 소식이었다. 그 바람에 그의 모습은 다시는 TV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간간이 가이버거의 활약을 뒤늦게 접한 친구들이 연락해오곤 했다. 친구가 캐나다에 캠핑을 갔다가 대형 쓰레기통 주변에 버려진 신문을 통해 59타를 쳤다는 기사를 봤다고 알려온 적도 있다며 허탈해했다. 그렇게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59타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책도 집필하려고 했다.

그의 캘리포니아주 자동차 번호판은 ‘MR 59’였고, 전화 끝 번호도 5959를 고집했다. 그의 아들 자동차 번호판 역시 ‘SON OF 59’였다. 그는 ‘59타 기념관’까지 지어 기록을 남기려 애썼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