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유연함으로 드라이버 180m 날리는 ‘83세 장타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기열 대표가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대림아파트 내 한 음식점에서 유연한 스윙을 연출하고 있다.

■ 이기열 ㈜임성개발 대표

“허리근력 강화” 의사 권해 입문
청테이프 붙인 거울보며 맹연습
2년뒤 “완벽 스윙” 프로도 감탄

50代 250m 70代엔 200m 펑펑
75세 때 74타 첫 ‘에이지 슈트’
70세 때 73타 ‘라이프 베스트’
요즘도 50代와 화이트 티 사용

이기열(83) ㈜임성개발 대표를 골프장에서 본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 유연한 스윙으로 180m를 보내는 장타력에, 정교한 쇼트 게임과 퍼팅으로 70대를 치는 실력에, 그리고 83세라는 나이에 놀란다.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대림아파트 내 한 음식점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오전에 회사로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대표는 80을 넘긴 나이에도 180m는 지금도 거뜬하게 날린다. 50대까지는 250m를, 60대엔 230m, 70대엔 200m를 보냈다. 세월과 비례해 거리는 갈수록 줄고는 있지만, 또래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골프채를 잡을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그래서 이 대표는 여전히 ‘화이트 티’를 고집하고, 50∼60대 ‘골프 친구’들이 많다.

경남 진주 출신인 이 대표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 국세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골프를 시작했다. 50여 년 전, 새벽에 옆집에서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곤 양동이를 들고 물을 퍼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 통증이 재발하는 등 고질병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세 아들 중 초등학생이던 막내가 학교에서 운동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쇼크로 아내가 몇 년째 몸져눕자 가족을 돌보기 위해 승진기회마저 포기하고 휴직했다. 자신의 몸도 아팠기에 처지를 알던 외과 의사 친구가 “힘든데 더는 병원에 다니지 말고 집에서 허리 근력을 키우라”면서 자신이 쓰던 3번 아이언을 건넸다. 처음엔 어드레스 자세도 힘들었고, 5분도 견디지 못했다. 힘을 주기 어려워 스윙을 최대한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윙을 할 때마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때 떠오른 게 거울. 백스윙과 폴로스루의 척추 각도를 알 수 있게 거울에 청테이프까지 붙여 연습, 일관된 스윙을 만들었다. 매일 거울을 보며 익힌 ‘섀도 스윙’. 한 달이 지나니 적응됐고 내친김에 연습장도 다녔다.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이때가 1983년이었다. 연습장에서 그의 스윙 폼을 보던 프로가 감탄하며 다른 골퍼에게 타석 뒤에서 지켜보게 하면서 “저분처럼 스윙하면 된다”고 했을 정도. 20여 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났던 김승학 프로로부터 “오버 스윙은 문제지만,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니 고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

이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73타. 놀라운 것은 그가 70세였던 해 기록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목표였던 ‘72세에 72타’를 애석하게 달성하지 못했지만, 75세에 경기 용인 골드CC에서 74타를 쳐 첫 ‘에이지 슈트’를 작성했다. 81세 때에도 골드CC에서 79타까지 쳐봤다. 공직자 신분이기에 드러내놓고, 자주 골프를 치러 나가지 못했다. 2년 동안 거울을 보면서 연습스윙만 했던 그는 2년 후 처음 80타를 쳤다. 꾸준히 골프에 관한 기록을 적어놨고 확인해보니 실제 필드에 나간 지 2년 만에, 51번째 라운드에서였다. 1998년 골드CC에서 79타를 쳤다. 1타를 줄이는 데 11년이 걸렸다. 그러나 공직에서 물러나 자주 라운드하다 보니 타수가 낮아졌다. ‘레전드’ 최상호 프로와의 일화도 있다. 그가 공직에서 은퇴한 뒤의 일이다. 모 기업의 부회장이던 동창이 모임을 주선했고, 그 동창의 ‘골프 스승’이던 최 프로와 경기 성남의 남서울CC에서 라운드했다. 최 프로는 그날따라 샷이 되질 않아 OB를 내며 전반에만 6오버파였지만 이 대표는 2오버파였다. 그늘집에 다다르자 동창이 다가와 “내 사부 체면 좀 세워줘”라며 “후반엔 살살 쳐라”고 부탁했다.

이 대표에겐 40년 지기 골프 친구가 있다. 공직자와 풋내기 기업인으로 만난 이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기업인 친구는 이 대표를 배려했다. 새 클럽을 주면 행여 부담을 느낄까 봐, 일부러 몇 번 사용해 중고로 만든 뒤 “내겐 안 맞는다”면서 건네주기 일쑤였다. 친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고, 이 대표가 공직에서 물러나자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20년 넘게 계열사 회사의 대표직을 맡기고 있다. 이 대표는 40년 지기 친구가 운영하는 경기 시흥의 9홀짜리 퍼블릭인 아세코밸리CC에서 요즘도 70대 타수를 유지하곤 한다. 정규 코스에 비해 코스 전장은 두 번을 돌아도 5500야드 정도로 짧은 편. 이 대표는 이 골프장의 ‘밴드 모임’에 월 1∼2회 정도 차를 몰고 가 라운드를 즐긴다. 이 모임에서는 ‘롤 모델 어르신’으로 정평 나 있기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 대표와 조인해 치고 싶어 한다. 독학으로 여러 골프 서적을 통해 스윙을 배웠다. “느낌이 없는 골프는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게 그의 지론. 싱글 핸디캐퍼인 40∼50대들도 스윙이 안 될 때면 그에게 자문한다. 스윙 멘토인 셈이다.

‘김효주 스윙’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 대표는 170㎝가 안 되는 키에도 180m를 보낸다. 이 대표는 “백스윙 첫 단계인 테이크어웨이를 길게 가져가고 오버스윙을 하면서 스윙아크가 큰 스윙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섀도 스윙을 매일 한 덕분에 40∼50대 뺨치는 유연성을 갖췄다. 이 대표는 “골프를 통해 까칠하고 급했던 성격까지 개조됐다”면서 “골프를 한 이후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골프는 그날그날 잘되기도 하고 결과가 나쁘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부침을 통해 생활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면서 “젊은 친구들과의 라운드에서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그들보다 먼저 지갑을 열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글·사진=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