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서른여덟에 하늘로 떠난 오빠… 뒤따라 가신 엄마는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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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1959∼1996)

어릴 적 엄마 젖무덤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밥상에 맛난 반찬을 더 먹겠다고, 수저 들고 다투는 것은 다반사였다. 하지만, 혹여 동네 아이들하고 싸움이라도 붙으면 의기투합해서 든든하게 날 지켜주던 오빠. 오빠는 학교나 읍내 마을 노래자랑에 참가해 집안 살림 장만에 보탬이 되곤 해서 늘 엄마의 자랑이었지.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세서, 엄마를 도와 농사일도 척척 어른만큼 잘하고, 막둥이인 나보다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얄미웠다. 중학생이 된 오빠를 ‘양구야’라고 부르면 안 된다며 동네 점방으로 데리고 가서 과자를 사주며 친구들 있을 때만이라도 제발 오빠라고 불러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십 원씩 받기로 새끼손가락 걸며 단단히 약속하고는 했다.

‘친구들이 버르장머리 없는 여동생이라고 놀려서 창피해서 못 살겠다. 엄마는 어째서 너를 낳아서 내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 쪼맨한 것이 고집도 세고 말도 징하게 안 듣고 오빠를 이겨 먹으려고 용쓰지 말어라 잉’ 하고 타이르곤 했었지.

오빠는 결혼하고 알콩달콩 살림살이도 차츰차츰 안정되고 전공을 살려 자기 분야에 매진하며 전기 회사 창업을 눈앞에 두고 꿈에 부풀어 있었던 찰나 젊디젊은 서른여덟 살에 뭐가 그리 급해 우리 곁을 빨리 떠나가버렸는가. 여섯 살 아들을 남겨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양구네 집에서 살다가 저세상 갈 때는 우리 양구 손잡고 눈감는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는 오빠가 저세상으로 간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새벽마다 몽유병에 걸린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며 ‘양구야 내 이쁜 양구야’ 울부짖는데 오빠 대신 차라리 날 데려가지 하고 원망하며 나도 울었다. 오빠를 쏙 빼닮은 어린 손자 몸을 절절하게 쓰다듬으며 하시던 엄마 말씀이 지금도 귀에서 징처럼 쟁쟁하게 울린다.

‘이 세상에 양구가 왔다 갔다는 표적 하나 만들려고 죄 많은 못난 애미 배 속을 빌려서 왔었구나.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목울음을 삼키던 엄마. 저세상으로 가시는 날까지 벌겋게 짓물러진 엄마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은 내내 짠하게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오죽하면 내 아이가 ‘외할머니 왜 맨날 울어요’라고, ‘경로당 할머니들이 시골 할머니라고 왕따시켰어’라고 물어보면 ‘오래 살면 눈도 고장이 나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맥없이 흐른단다. 얼른 저세상 가서 우리 양구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어느 누구 하나 미워할 줄도 모르고, 차별하지 않으며 어른이나 애나 똑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엄마. 천사처럼 사랑으로 살다 가신 엄마 자녀로 태어난 것이 우리의 자랑이어서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빠! 울 어매는 거기서 만났는가. 세상 어디에도 오빠가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오빠 닮은 사람을 보고 동대문 지하철에서 남대문시장까지 따라간 적도 있었지. 허망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오빠가 살던 집에 찾아가 보기도 했지. 그리고 시장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면 툭 나타날 것 같고, 이 길을 지나다녔을 오빠 발자국 따라 내 발자국도 겹쳐보며 온종일 걸어도 보았지. 이젠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저만큼 피해서 다니고 있어. 오빠 이름만 봐도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려와. 일부러 생각을 안 하고 살아보려 해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어.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 이양구. 내 오빠로 세상에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많이 보고 싶다. 울 작은오빠. 부디 잘 가소.

여동생 이수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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