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4·15 유권자 가치관·정책 입장 조사>중도층, 정치권 프레임 탓에 정책선 보수·진보 양쪽으로 갈라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념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가치관 설문 결과를 분석한 왼쪽 그래프에서 자신을 ‘약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가 ‘매우 진보’ 응답자보다 더 진보적이고, ‘약간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가 ‘매우 보수’ 응답자보다 더 보수적인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 네 개의 그래프는 진보·보수 유권자의 정책 입장 편차가 정치·행정, 경제·산업·민생, 사회·복지·문화, 외교·안보 순으로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下) 세대·지역갈등 넘어선 이념 갈등

진보-보수간 정책 찬성률
38퍼센타일 격차 벌어져
이념적 지향·가치관 설문
24퍼센타일 差의 1.5배

정치·행정 38퍼센타일 差
경제·산업 36퍼센타일 差
외교·안보는 29퍼센타일

文대통령 지지자는 진보로
非지지자는 보수로 기울어

17일 문화일보·서울대 폴랩(Pollab)의 유권자 가치관 및 정책 입장 조사 결과, 가치관 점수와 정책 입장 점수 사이에 상당한 괴리 현상이 나타났다.

자신을 ‘매우 보수’라고 응답한 유권자와 ‘매우 진보’라고 응답한 유권자가 이념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가치관 설문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구체적인 정책 이슈에 대한 설문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유권자들이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할 때 자신의 이념적 지향보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등 ‘정치적 요인’을 더 많이 고려한다는 뜻으로, 친문(친문재인)이냐 비문(비문재인)이냐로 대변되는 진영 논리가 유권자들의 정책 선택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영 논리에 왜곡되는 정책 선택 = 이번 조사에서는 유권자의 이념 성향과 정책 선호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3가지 차원에서 설문을 진행했다.

우선 유권자 스스로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지 진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이념 성향 파악을 위한 가치관 조사(10개 문항)를 한 뒤 주요 정책에 대한 찬·반 조사(4개 분야 40개 문항)를 실시했다. 그 결과 3가지 지표 간 불일치 현상이 두드러졌다. 가령 스스로를 ‘중도’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가치관 조사나 정책 입장 조사에서는 ‘진보’나 ‘보수’ 쪽으로 치우친 사례가 많았고, 심지어 가치관 조사에서는 ‘보수’에 기운 응답자가 정책 입장 조사에서는 ‘진보’ 성향을 보인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정확히 모르고 있거나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할 때 정치적 고려를 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념 성향에 상관 없이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반대로 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의 책임자인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정치권의 프레임에 의해 증폭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가치관 조사에서는 자신의 이념 성향을 ‘약간 보수’라고 한 응답자가 ‘매우 보수’라는 응답자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점수가 나오고, ‘약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가 ‘매우 진보’라는 응답자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점수가 나오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 ‘약간 보수’ 응답자는 62퍼센타일(percentile), ‘매우 보수’ 응답자는 57퍼센타일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 100명을 한 줄로 세워 제일 첫 번째 사람이 가장 진보적, 100번째 사람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때 ‘약간 보수’는 62번째, ‘매우 보수’는 57번째에 있다는 의미다. 자신을 ‘매우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약간 보수’라는 응답자보다는 덜 보수적인 이념 성향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역전 현상은 ‘약간 진보’(38퍼센타일)와 ‘매우 진보’(42퍼센타일) 사이에도 똑같이 나타났다. ‘중도’ 응답자는 49퍼센타일에 위치했다.

정책 입장 조사에서는 유권자 분포가 ‘매우 진보’(32퍼센타일), ‘약간 진보’(34퍼센타일), ‘중도’(51퍼센타일), ‘약간 보수’(64퍼센타일), ‘매우 보수’(70퍼센타일) 순으로 나타났다. ‘매우 보수’와 ‘매우 진보’ 간 격차가 38퍼센타일로, 가치관 조사에서 나타난 이념 성향별 최대 격차(24퍼센타일)에 비해 14퍼센타일 더 컸다. 이 역시 진영 논리에 따라 정책에 대한 찬·반이 나뉘고 있다는 근거로 풀이된다.

◇文 대통령 지지는 진보, 非지지는 보수 성향 = 가치관 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자는 36퍼센타일, 비지지자는 59퍼센타일에 각각 위치해 23퍼센타일의 격차를 보였다. 국정 운영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은 45퍼센타일로, 진보 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 정책 입장 조사에서는 국정 운영 지지자(30퍼센타일)와 비지지자(64퍼센타일)의 격차가 34퍼센타일로 더 커졌다.

◇외교·안보는 ‘균질’, 정치·경제는 ‘이질’ = 정책 입장 면에서 진보·보수 유권자의 편차는 정치·행정, 경제·산업·민생, 사회·복지·문화, 외교·안보 순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행정 분야에서 ‘매우 진보’(30퍼센타일)와 ‘매우 보수’(68퍼센타일) 간 차이가 38퍼센타일로 가장 컸다. 정치적 사안은 진보·보수 양 진영이 어느 영역에서보다 첨예하게 맞서는 영역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례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자신을 ‘진보’(매우 진보+약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68.3%가 찬성했지만, ‘보수’(매우 보수+약간 보수) 응답자는 34.8%만 찬성했다. 경제·산업·민생 분야에서는 36퍼센타일(‘매우 보수’ 68퍼센타일, ‘매우 진보’ 32퍼센타일), 사회·복지·문화 분야에서는 31퍼센타일(‘매우 보수’ 68퍼센타일, ‘매우 진보’ 37퍼센타일),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29퍼센타일(‘매우 보수’ 62퍼센타일, ‘매우 진보’ 33퍼센타일)의 격차가 나타났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 용어설명

- 문항반응이론
문항반응이론(IRT·Item Response Theory) : 문항마다 얼마나 많은 응답자가 ‘찬성’ 혹은 ‘반대’ 의견을 냈는지를 고려, 각 응답자의 고유한 성향을 계량화해 정책 입장 점수를 산출하는 방식. 다수의 응답자와 반대되는 선택을 한 경우, 가중치가 부여되는 식이다. 일부 국가 인증 시험에서 IRT를 적용, 각 문항의 정답률 등을 고려한 배점을 통해 수험생의 실제 실력에 가까운 점수를 계산해 내고 있다.

- 라쏘 기법
라쏘(LASSO·Least Absolute Shrinkage and Selection Operator) 기법 : 자신을 ‘진보’나 ‘보수’라고 한 유권자들을 실제 성향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설문 문항 중 성향을 분류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문항이 무엇인지 식별해 내는 회귀분석 기법.

- 퍼센타일
퍼센타일(Percentile) : 데이터나 연속적인 값을 100으로 등분했을 때 나오는 값의 하나. 1부터 100 사이의 위치를 보여주는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