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코로나 확산에 세계수요 하루 9만배럴 감소…‘마지노선’ 30달러 붕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新저유가’ 장기화 전망

산유국들 점유율 확대노린 ‘증산’… 이면엔 셰일社 압박·러 보복 ‘포석’

산유국 생산·소비국 성장속도
원유공급량 결정에 중요 요소

석유수요 3분기때 회복 경우
두바이유 배럴당 33.66달러
작년 평균 가격의 절반 수준

韓정부, 국제유가대응반 운영
단기·중장기 나눠 대책 마련
하락 지속땐 수출·수주 악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글로벌 석유시장에서는 ‘신(新) 저유가 시대’ 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제조업은 물론 항공·여행·유통 등 산업 전 분야에서 생산활동 제한으로 원유·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미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 간 증산 경쟁까지 가열된 탓이다. 국제유가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16일 배럴당 28.70달러를 기록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30.05달러를 나타냈다. 불과 1년 5개월 전인 2018년 10월 각각 배럴당 76달러, 86달러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저유가는 한때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호재로 여겨졌지만 최근 유가 하락은 코로나19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 저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오히려 해외 수주액 감소는 물론 부문별로 수출 등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1. 국제유가 급락 배경은

올 들어 국제유가가 뚝 떨어진 것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일 내놓은 중기 전망보고서에서 올해 국제 석유 수요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하루 평균 9만 배럴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보고서를 통해 항공 이용을 비롯한 경제활동 감소와 정유공장 폐쇄 등 생산활동 위축으로 원유 수요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공급은 주요 산유국을 중심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가입 산유국 간 감산 합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공격적 증산을 선언했다. 러시아 등도 증산 ‘치킨게임’에 가세할 예정이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 증가와 현재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리비아의 생산까지 회복될 경우 국제유가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유가, 원유공급량 어떻게 결정

국제유가는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좌우된다. 사우디·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생산능력 및 수출량 결정과 중국·인도 등 소비국의 경제성장 속도, 난방유 수요 등 계절적 요인 등을 기본 변수로 삼고 미·이란 갈등, 리비아 내전, 이란·베네수엘라에 대한 대미 제재 등과 같은 지정학적 갈등 요소가 간헐적 변수로 작용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 14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회원 산유국의 모임인 OPEC플러스(+)의 협상 결과에 따라 국제유가가 춤을 춘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석유산업에 대한 산유국 및 거대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투자 움직임, 친환경차 등 관련 산업 발전속도 등이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10년 전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역시 국제유가를 끌어내리는 핵심 요인이다. 미국은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2008년에는 석유 수출량 대비 수입량이 하루 평균 1200만 배럴 많았으나 2018년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산유국에 올랐다. 지난해 9월에는 석유 순수출국 지위에 올랐다.

3. 갈수록 커지는 OPEC 무용론

OPEC은 1960년 사우디·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이 결성한 기구로 올해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OPEC은 1970년대 세계 원유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생산량 조절을 통해 국제유가를 사실상 통제했다. 1973년 OPEC 회원국들이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수출금지정책을 취하며 전 세계를 ‘오일쇼크’로 몰아넣은 사건은 OPEC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OPEC의 패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비회원국인 미국·러시아의 산유량이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맞먹는 수준까지 급증하면서 가격 지배력이 약화했다. 현재 OPEC의 세계 석유시장 점유율은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OPEC은 유가가 바닥을 친 2016년 이후 러시아 등 비회원국을 설득해 OPEC+라는 형태로 가까스로 영향력을 유지해왔으나 과거와 같은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월 초 OPEC+가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한 것도 국제유가를 유지하려던 사우디 등 기존 OPEC 회원국들과 달리 러시아가 미국 셰일오일 업체에 타격을 주기 위해 감산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4. WTI·브렌트유·두바이유 차이는

원유는 생산 지역에 따라 화학물질 등 성분 함량이 달라진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200여 가지의 원유 중 WTI·브렌트유·두바이유는 생산량과 거래량을 기준으로 세계 3대 원유로 꼽힌다. WTI는 미국 텍사스 일대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전 세계 원유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

원유 품질은 불순물인 황 함유량으로 결정되는데 WTI는 황 함유량이 0.24%로 가장 적어 휘발유와 나프타 같은 가격이 높은 제품을 많이 추출할 수 있다. 영국 북해 등지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는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기준 가격이 된다. 바다에서 추출돼 유통에 강점을 가지면서 가장 광범위한 지역으로 수출된다.

두바이유는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 유종이다. 이는 황 함유량이 높은 중질유로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유종으로 평가된다. 즉 휘발유와 경유가 덜 나온다는 얘기다. 불순물 함량이 높아 별도로 탈황과 제염 등을 거쳐야 해 미국과 유럽산 원유에 견줘 배럴당 3∼4달러 싸다.

5. 올해 국제유가 전망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15일 ‘국제유가 동향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OPEC+의 공조체제 와해가 지속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가 3분기나 돼서야 회복할 경우 올해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33.6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평균 두바이유 가격인 배럴당 63.53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연구원은 이 경우, 두바이유 평균 가격이 1분기 배럴당 52.65달러에서 2분기 24달러까지 떨어지고, 3분기 27.5달러, 4분기 30.5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1월 배럴당 64달러에서 2월 54달러로 하락했고, 3월에는 12일 기준 33달러까지 내려갔다. WTI나 브렌트유도 가격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WTI가 2020년 기존 예상보다 31% 떨어진 38.19달러, 브렌트유가 29% 하락한 43.40달러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6. 러·사우디, 美 셰일오일 겨냥했나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감산 결정을 포기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정이 추가 감산 제의를 거부한 러시아에 보복을 가하는 한편, 미국 셰일오일 산업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OPEC+의 감산 정책이 꾸준히 유가를 올리면서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도왔다고 보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배럴당 40달러 안팎을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는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은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고 결국 도산하게 된다. AP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석유를 공급하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의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자 미국 셰일오일 산업에 타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실제 유가가 급락하며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의 주가는 9일 하루에만 53% 급락했다.

7. 이란 등 다른 산유국 영향은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은 자국 수출 등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다. 이란의 경우 전체의 60∼70%, 베네수엘라의 경우 95%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가 하락이 이들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유가전쟁은 국가의 주요 수입원에 대한 ‘잔인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이들 국가가 미국의 제재로 석유 수출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실질적으로 국가체제를 흔들 만큼의 큰 파장은 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란은 수출 수치를 발표하지 않지만, 석유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원유 수송량이 수십만 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도 내리나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떨어지게 된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60달러대를 오갔던 올 초 고점에 비해 반 토막이 나자 국내 휘발유와 경유 전국 평균 판매 가격(ℓ당 )도 두 달째 하락해 각각 1400원대, 1200원대로 내렸다. 일반적으로 국제유가는 2∼3주가량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국내 휘발유 값이 연동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 휘발유 값은 3월 둘째 주 배럴당 41.13달러로 2월 첫째 주 62.50달러에 비해 34% 떨어졌다. 업계는 원유 가격이 하락한 2016년 초와 비교하면 휘발유 값 최대 하락 수준을 1300원대로 내다봤다. 다만 유류제품에 고정적으로 붙는 세금을 감안하면 추가 하락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휘발유에 부가되는 고정적인 세금(16일 기준)은 820.48원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0달러라고 해도 휘발유 값은 최소 820원 이상이 된다.

9.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이번 국제유가 하락 사태는 수요와 공급 문제가 함께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악재다. 코로나19 여파 탓에 전 세계 수요는 위축됐고 산유국의 ‘치킨게임’으로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할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수혜 업종이 거의 없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산유국 경기가 나빠져 한국의 조선, 철강, 건설, 플랜트 업종이 타격을 입게 된다. 유가가 내려가면 전통적인 수혜 업종인 항공과 해운도 지금 상황에서는 예외다. 코로나19로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여객과 화물 물동량이 바닥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하락 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정유·화학업계도 수요 감소로 인한 유가 하락은 대형 악재다. 보통 정유·화학업체들은 2∼3개월 전에 원유를 사는데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면 비싸게 산 원유의 가치도 떨어져 재고평가손실이 생긴다. 육로와 항공, 해운 등에서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 정유업체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가가 되살아나지 못한 채 전 세계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 고리로 빠져들면 결국 한국 경제도 동반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10. 유가 급락에 대한 대책은

정부는 큰 폭으로 하락한 국제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참여하는 ‘국제유가 대응반’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유가 동향과 함께 이번 사태가 단기에 마무리될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등을 주시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합의 가능성, 미국의 대응 방향과 움직임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아울러 유가 등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정유 부문을 비롯해 자동차, 항공 등 우리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도 살피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저유가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공급이 넘쳐나는 와중에 수요는 감소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우선 업계의 애로사항을 접수하는 한편,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김남석·박준우·권도경·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