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신춘호 >곁눈질 않고 수십년 한우물…겉치레엔 손사래 치는 ‘은둔형 리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춘호

■ 신춘호 농심 회장

- 스스로 ‘라면쟁이’라 부른다
소고기라면 개발해 업계 역전
제품이름·광고문구 직접 지어

- 도전하다보면 실패 있기 마련
“손해 아닌 성공 향한 지름길”
과감한 시도 박수치는 경영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목을 받는 업계가 있다. 바로, 식품업계와 제약업계다. 이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분야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다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식품업계 중에서도 라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농심과 제약업계 중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보면, ‘한 우물’만 파는 기업들이 위기의 순간에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라면 업계는 호황을 맞았지만, 모든 라면 회사가 다 호황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라면 수요는 폭증했지만, 외식업은 그야말로 ‘폭탄’을 맞은 상황이어서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한 회사들은 오히려 실적 전망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증권가에서는 농심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능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농심이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라면’과 ‘스낵’이라는 한 우물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 배경에는 1965년 9월 18일 농심을 창립한 이후 55년간 오로지 라면과 스낵에만 집중해 온 신춘호 농심 회장의 ‘뚝심’이 있다. 신 회장은 식품업계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한 우물’만 파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은 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 1월 작고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남동생이다. 그는 식품업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유명하다. 겉으로 드러나기를 꺼리지만, 경영에서는 강한 리더십을 지닌 뚝심 있는 리더로 통한다. 신 회장은 50년이 넘는 경영 인생을 오로지 ‘라면’과 ‘스낵’에만 매달려 왔다. ‘새우깡’을 출시하면서 국내에는 없던 스낵시장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도 신 회장이다.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라면을 만들어왔으니 라면쟁이요, 또 스낵도 만들어왔으니 스낵쟁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1965년 회사 설립 이후 신 회장이 줄곧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품질’과 ‘신제품’이다. 1970년대 초 닭고기 육수 중심의 국내 라면 시장에서 농심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경영위기를 맞았을 당시에도 신 회장은 닭고기 육수 대신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소고기라면’ 출시로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키기도 했다.

품질을 생명으로 여기는 신 회장이다 보니 그만큼 세심한 경영을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연구·개발(R&D)과 제품 개발에는 그 누구보다 깐깐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는 평가다. 심지어 제품명을 직접 작명하기도 한다. 농심을 라면 업계 1위로 만든 신라면과 안성탕면 등의 이름은 모두 신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 제품명이다. ‘사나이 울리는’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등의 광고문구도 신 회장이 직접 만들었다.

신 회장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경영철학은 ‘실패’에 대한 자유를 임직원들에게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다.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전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실패도 불가피하다는 것이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제품 아이디어를 확보해야 하고 직원들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이를 과감히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실패는 손실만 안겨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지혜와 또 다른 실패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그래서 성공에 더 가까운 지름길을 안내해준다”고 항상 임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농심의 경영철학은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다. “농심으로 행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서둘지 말고 모든 일을 순리에 맞게 이끌어 간다면 그 결실도 가장 바람직한 것이 될 것이라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겼다는 게 농심 측의 설명이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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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호 농심 회장 인맥

신춘호 회장은 롯데가(家)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재계 주요 유통사 1세대 창업자들과 형제, 친척 관계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넷째 남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신 회장은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사생활 공개도 극히 꺼린다. 가족 외 알려진 인맥이 거의 없다. 그러나 경영에 있어서는 ‘인간’‘신뢰’를 중시하는 철학으로 신중하면서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현진 기자

나이 : 1932년, 울산출생
학력 : 동아대 법학
이력 : 일본 롯데 이사, 롯데공업 사장, 농심 사장, 농심그룹 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비상임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아들같은 사위. 신 회장은 고 서성환 태평양그룹 창업주와 절친한 사이였다. 신 회장의 셋째 아들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과 고 서 회장의 장남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학 79학번 동기다. 막내딸 신윤경 씨가 고 서 회장의 둘째 아들 서경배 회장과 지난 1990년 결혼을 하며 사돈관계가 됐다. 특히 서경배 회장은 부친 별세 이후 신 회장을 더욱 각별하게 따르고 있다. 지난 2015년 농심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서경배 회장이 농심에 거대한 미술 작품 ‘컬러풀 스토리즈’를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인과 사위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이로 유명하다.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지난 2014년 92세를 일기로 작고한 이동찬 명예회장은 친한 인물이 거의 공개되지 않은 신 회장의 각별한 인연으로 손꼽힌다. 신 회장과 10살 차이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를 계기로 친분이 두터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 1974년부터 경총 부회장을, 1982년부터 회장을 지냈고, 신 회장은 1994년부터 부회장을 맡아 여러 조언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이 후대에도 이어져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과도 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부회장과 이웅열 전 회장은 신일고 동문이기도 하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38년간 삼성에서 일한 삼성맨 손욱 교수는 지난 2008년 신 회장의 요청으로 농심 회장 자리에 올랐다. GE코리아 전 회장인 강석진 CEO컨설팅 회장의 소개로 만나 농심의 연구·개발(R&D) 센터 건립 등에 대해 조언을 받으면서 가까워졌다.

손 교수 영입 당시 신 회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며 농심의 장기 성장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손 교수의 조언에 따라 농심의 R&D센터는 연구·경영개발센터로 확장돼 규모가 커지는 등 농심의 혁신에 속도가 더해졌다. 손 교수는 2009년 후학 양성을 위해 농심 회장 자리에서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