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숭현의 지구문답>지구가 작다 믿었던 콜럼버스, ‘동방行 지름길’로 서쪽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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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확고한 믿음
뛰어난 항해술과 뚜렷한 의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가능
‘인식·실천’ 과학에 교훈 남겨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답한다면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콜럼버스 당시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동서교역의 관문이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에 넘어가 동서의 육상 교역길이 거의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동방과의 교역 없이는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은 대안으로 동방으로 가는 바닷길 개척에 나서게 된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섰던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동쪽으로 항해한다는 합리적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 계획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희망봉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가마로 이어지는 항해자들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당시 유럽 지식인에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항해해도 언젠가 동방에 닿을 수 있다는 인식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의 크기였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별로 크지 않다고 추정했고, 서쪽 항로야말로 동방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콜럼버스 반대자들은 지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서쪽으로 항해해 동방으로 가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크기 문제에 관해 콜럼버스와 반대자들 중 누가 옳았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대자들의 견해가 콜럼버스보다 실제에 더 가까웠다. 콜럼버스가 추정했던 유럽 서편에서 일본까지의 거리는 실제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콜럼버스 반대자들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74∼196)라는 학자가 제시한 지구의 크기에 근거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으로서 학식이 매우 깊었던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짓날 이집트의 시에네(현재의 아스완 부근)라는 지역에 서 있는 막대는 그림자가 사라지지만, 같은 날 알렉산드리아에 서 있는 막대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차이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짓날 태양은 시에네 바로 위에 위치해 있고 알렉산드리아와는 두 지역의 위도 차만큼의 각도를 이루고 있기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막대와 그림자의 길이를 재어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 차가 7.2도라는 것을 확인했고, 이 각도가 위도 차와 일치하며 360도를 7.2도로 나누어 지구의 둘레가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 거리의 50배라고 추론했다. 이러한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법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가정에 세세한 오류가 있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 과학기술로 측정한 지구의 둘레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만으로 미뤄 본다면 포르투갈이나 콜럼버스 반대자들이 콜럼버스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무모한 계획은 포르투갈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스페인의 결단으로 실행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흔히들 알고 있듯이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역설적인 역사를 두고 필자는 몇 가지 과학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게 된다.

첫째, 인식의 중요성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인식이 없었다면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이나 콜럼버스의 발상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경우 그림자를 이용하는 해시계는 만들었지만 땅이 평평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구 둘레를 계산한다는 발상은 애초에 생겨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구’라는 인식을 하게 된 조선의 유학자 홍대용은 지구의 크기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둘째, 실천의 중요성이다. 이론은 실천적 검증 활동을 통해서만 그 구체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콜럼버스는 지구의 크기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뛰어난 항해술과 실천 의지를 갖고 있었고, 지구는 그의 항해를 기점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지구의 크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에라토스테네스 역시 서쪽으로 항해해 인도에 도달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모험에서 먼 거리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