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한복 입고 궁궐 위를 뛰는 ‘킹덤’ 좀비… 세계가 전염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기존 좀비물보다 빠르고 강력한 좀비를 내세운 ‘킹덤’은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갓과 도포 등의 의상, 궁궐과 기와지붕과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 덕분에 외국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 해외서 주목받는 ‘K-좀비’… 왜?

‘킹덤2’신선도지수 100% 기록
조선시대 배경 ‘이국적 미장센’
서양좀비보다 역동적인 움직임

왕좌 다투는 익숙한 스토리에
‘충·효’ 낯선 유교 가치관 더해
서양인들도 서사에 매력 느껴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 타고
1억6700만명 시청자에 전파
코로나 사태 맞물려 공감 확산

지난 13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서비스되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킹덤’(극본 김은희) 시즌2는 23일 기준으로 영화·드라마 평점 전문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다.(앞서 영화 ‘기생충’이 100%를 받은 바 있다) 시즌1의 93%보다 높은 수치다. ‘킹덤’에 등장하는 좀비는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사용돼온 소재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의 신선도 지수가 100%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기생충’ 열풍의 바통을 이어받은 ‘킹덤’, 이를 넘어 ‘K-좀비’의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K-좀비, 무엇이 다른가?

일단 배경이 다르다. 외국인들에게 다소 이국적인 공간인 ‘조선’ 신선한 미장센으로 다가간다. 한복이라는 복식뿐 아니라 궁궐과 기와지붕이라는 한국식 건축 양식이 모두 새롭다. 시즌1이 공개된 후에는 주연배우 주지훈의 인기와 함께 등장인물들이 쓴 갓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이런 배경과 접목된 좀비의 모습은 좀비물에 열광하는 외국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겼다.

‘킹덤’ 속 좀비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미국 매체 포브스가 정확히 짚었다. 포브스는 “‘워킹 데드’보다 훨씬 빠르고, ‘왕좌의 게임’처럼 정치적 음모와 드라마가 있다”고 소개했다. ‘워킹 데드’를 비롯해 대다수 작품 속 좀비는 느리다. 도무지 죽지 않고 다가오는 것은 무섭지만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재빨리 뛰면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킹덤’의 좀비는 전광석화처럼 달려온다. 속도가 빨라지니 물리법칙에 의해 부딪치는 강도도 세진다. 관객들의 쾌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즌2의 연출을 맡은 박인제 감독은 “(나 역시)시즌1의 팬으로서 질주하는 좀비에 대한 쾌감 같은 것이 있었다”며 “시즌2는 시즌1의 세계관을 이어가면서도 연출적으로 변화를 줬는데 그건 좀비의 후처리 과정들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야기가 촘촘하다. 생사초라는 식물을 왕에게 먹여 죽지도 살지도 않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데, 그 이유는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왕의 죽음을 늦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계략을 꾸미는 조 씨 가문과 그들 곁에 빌붙어 백성을 등한시하는 탐관오리들, 그리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의 고군분투를 ‘왕좌의 게임’이 펼친 대서사시에 빗댄 것이다.

곳곳에 밴 한국적 정서도 외국 관객들에게는 이채롭다. 첩자의 정체를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는 이창,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기개를 굽히지 않는 안현대감(허준호 분)의 충정, 아버지 왕에 대해 세자 창이 보이는 충과 효의 충돌로 드러난 유교적 가치관, 의리, 인간적 정(情) 등이 ‘킹덤’의 짜임새를 더한다. 2016년 개봉됐던 또 다른 좀비물인 영화 ‘부산행’이 좀비에 대항하는 부녀, 부부, 연인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며 호평받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킹덤’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는 “흥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서와 이야기를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소화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김 작가는 시즌2에 대해 “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붉은 피를 탐하는 생사역(좀비), 핏줄과 혈통을 탐하는 인간의 상반된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흡혈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좀비와 자신의 핏줄을 왕족으로 만들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세력가들이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이는 왕좌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혈투를 부르는 ‘왕좌의 게임’과도 겹치는 세계관이다. 국가와 인종, 배경은 다를지언정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라는 의미다.

김 작가는 K-좀비가 서양의 좀비와 다른 지점을 보다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킹덤’ 속 좀비는 좀 더 슬퍼 보이길 원했다. 왕실의 탐욕으로 인해 자기가 어떤 역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고픔에 시달리는 슬픈 존재”라며 “총과 마차도 없이, 동양적 의상을 입은 그 좀비들이 서양인들에게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과 넷플릭스, K-좀비의 세계를 넓히다

K-좀비의 세계화에는 외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계급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에 계급의 이야기를 다룬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시상식을 휩쓸었듯, K-좀비를 앞세운 ‘킹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과 맞물려 더욱 많은 이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공포를 줬다.

미국 매체 스릴리스트는 ‘킹덤’ 속 좀비가 권력을 가지려는 이들의 욕망에 의해 잉태되고, 몇몇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죽지 않는 좀비를 만드는 전염병을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단순한 좀비 쇼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킹덤’ 속에서 인간이 좀비가 되는 것을 ‘역병’으로 보는데, 이런 상황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현 상황과 겹친다는 것이다.

포브스가 “코로나19 공포가 고조되는 가운데 ‘킹덤’을 보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좀비 쇼를 보는 동안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한국, 이탈리아로,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 것은 초현실적”이라며 “‘킹덤’을 보면 코로나19가 단지 나쁜 바이러스일 뿐, 좀비 대재앙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에 기쁘게 될 것”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킹덤’을 선두로 세운 K-좀비의 인기는 넷플릭스라는 범국가적 플랫폼과 만났기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올해 기준 약 1억6700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킹덤’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신작 영화 개봉이 자취를 감추고 관객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 대신 넷플릭스를 켜는 사례가 늘었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의 선셋 블러바드·웨스턴 에비뉴·뉴욕 타임스스퀘어 등 미국 엔터계의 상징적인 장소에 ‘킹덤’의 대형 전광판 광고가 게재된 것도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