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기득권 키운 공천… 민주주의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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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野 비례 소동은 受權 신뢰 자해
문재인·조국 친위대 전락한 與
위성정당 꼼수로 다양성 끝장

팬덤정치 親文 확증편향 심각
온라인 결정 되레 민주성 저해
도둑 vs 강도 次惡 선택 딜레마

＃1: ‘공천 쿠데타’는 신속하게 제압되고 하루 만에 새로운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했다. 지주회사의 계열사 장악력은 전보다 강화됐지만, 제21대 총선 1라운드의 공천 게임은 망쳤다. ‘44%의 현역 교체율’도 가렸다. 파격적이고 참신한 콘셉트의 비례후보 공천으로 총선 첫 승부처의 결정타여야 했는데…. 적절한 모양새로 실익을 꾀하는 리더십의 정치력 부재가 아쉽다. 미래 비전의 제시가 아니라, 적나라한 권력정치의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안정감과 믿음의 준비된 수권(受權) 정당’은 멀어진다.

＃2: ‘연합’으로 포장하는 ‘고급 기술’을 통해 ‘조국수호 시민플랫폼’ 중심의 비례 위성정당이 등장했다. 이번 주 ‘자발적인 형식으로’ 정의당보다 딱 한 명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이적시키는 걸로 준비는 끝난다. 친문의 정치 세력 중심 강화다. 임기 말을 향해 가는 지금, 소수라도 언제나 동원할 수 있고 적극적인 핵심 지지층으로 본사와 지사를 운영하는 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출마자 중 절반 이상 공천을 받은 청와대 출신들까지 더해지는 ‘문재인 청와대당(黨)’은 권력의 최후 보루가 된다. ‘핵심 중 핵심’으로만 구성되는 열린민주당까지 합세하면 권력 옹위 친위대는 안전판이 된다. 협치(協治)와 책임정치의 집권당이자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국민 삶의 문제 해결을 선도하는 집권당은 멀어진다.

＃3: 비례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과잉 대표성 완화와 다양성 확대의 제도 개편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더불어그룹과 미래그룹’의 기득권과 독과점 구조가 강화된다. 물론 예견된 일이다. ‘225+75’가 깨지는 순간, ‘250+50’과 ‘253+47’을 거쳐 결국 47석 중 30석만을 준연동형의 대상으로 할 때 이미 준비된 일이다. 남은 건 ‘강도냐 도둑이냐’의 논쟁뿐이다. 결국, 이번에도 국민이 ‘스스로 알아서’ 정치권의 다양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대안 노릇을 했던 안철수당과 정의당의 향배가 중요하다. 만약 안철수당이 이번엔 미래통합당 또는 미래한국당의 대체재 역할을 한다면 어떤 진영이 국회 다수파를 차지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4: 민주당의 비례 연합정당 참여는 당원투표 형식으로 결정됐다. 투표자는 매월 1000원 이상 당비를 내는 80만 명 안팎의 권리당원인데, 이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젊고 당비 납부 비율도 높은 ‘온라인 당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2015년 안철수 탈당으로 위기에 몰린 당시 문재인 대표를 구하기 위해 입당한 사람들로, 10만 명 전후로 알려져 있다. 확실한 ‘친문(親文) 그룹’이다. 이들은 당내 공천 과정이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한다. 지역구 현역 의원이라도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단다. 금태섭 경선 탈락의 배경이다. 문제는 핵심 지지층의 확증편향과 배타성인데, 팬덤정치의 이면에는 외연 축소의 위험성과 대다수 국민과의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당’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탈리아의 ‘5성운동’과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보면 온라인 중심으로 당원들이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면서 당내 민주주의의 성격과 질이 바뀐다고 한다. 문제는, 당초 기대됐던 다양성의 포용적 당내 민주주의 실현보다는 소수의 핵심 지지층 중심의 정당 운용과 의사결정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당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당원 수가 많더라도) 특정 이슈 중심의 강력한 지지층이 당내 활동에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일수록 이 가능성은 커진다고 한다. 정당 내부의 다양성과 역동성도 당연히 멀어진다.

“정당이 생산하는 중요한 정책을 정부가 받아서 집행하고 인사에 관해서도 당으로부터 추천받거나 당과 협의해 결정하는, 그렇게 해서 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 이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후보의 5대 과제 중 하나가 ‘새로운 정치’인데 이는 “당이 청와대의 뜻을 입법화하는 통법부의 기능이 아니라, 실제로 대정부 관계에서 정책을 주도하고 정부를 끌고 가는 역할을 맡기겠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한다. 앞은 2017년 1월 7일 발언이고, 뒤는 2012년 9월 16일의 설명이다. 약속과 다짐은 지켜지고 있을까? 이런 정당들로 제21대 국회에서 ‘협치와 책임정치의 보루가 되는 정당과 정당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직은 요원하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