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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3월 25일(水)
고조선도 ‘독자적 문자’ 사용했다… 훈민정음에도 영향 끼쳤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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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시대의 토기·청동기·암벽 등 유적·유물에는 해독되지 않는 신석기 기호문자인 ‘신지문자’들이 남아 있다. 이것이 한문자(漢文字)나 훈민정음에도 영향을 미쳤을지는 학계의 연구과제이다. 사진은 요서지역 소하연문화(BC 3000∼BC 2000) 토기 그림문자의 탁본.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4) 고조선의 ‘神誌문자’

- 한민족 문명학

토기·청동기·암벽 등서 유사한 문자 발견… 삼국유사·용비어천가 등 고문헌에도 실재 흔적
세종실록엔 ‘훈민정음이 옛 전자 모방했다’고 기록… 남은 자료 적고 해독 어려워 연구 필요


고조선문명에서는 지배층 지식인만이 사용하던 고조선 말을 표기하는 ‘신지(神誌)문자’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러나 유물이 적게 발견되어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 황화 유역에서 이주민 밝족이 商(상=殷·은)을 건국한 후 고중국어를 표기하는 ‘한문자(漢文字)’를 발명하여 오늘날의 한문이 되었다. 고조선문명의 후예들은 민족별로 여러 가지 문자를 차용한 간이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15세기 전반기에 들어와서 드디어 조선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새로운 알파벳이 발명되어 모든 우랄·알타이어족 언어와 세계 모든 언어를 쉽고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세계 문자가 창조되었다. 고조선문명의 시작부터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고(古)한반도 초기 신석기인은 최초에는 노끈이나 ‘새끼에 매듭’(結繩·결승)을 만들어 의사소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호(太호)족이 고한반도에서 중국 산동반도로 건너가서 원주민에게 ‘새끼 매듭’(결승)에 의한 의사소통 방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기록은 태호족이 떠나기 전 고한반도에서는 ‘새끼 매듭’에 의한 의사소통 방법이 실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고한반도 신석기인은 ‘나무에 새김’(算木, 佃木)을 만들어 의사소통했다는 기록(續博物志(속박물지))도 있다. 이러한 새끼줄이나 나무는 모두 썩어버렸으므로 오늘날 그 기호나 부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위 또는 토기에 새긴 ‘그림문자’ ‘기호’ ‘부호’는 현재도 남아 있다.

▲  위의 그림문자가 새겨진 요서지역 소하연문화의 토기.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무엇을 기록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관련 학계의 연구과제라고 할 것이다. 고조선에는 신지(神誌)문자라는 문자가 창제되어 실재했다. 고중국에서는 고조선의 신지문자를 ‘창힐(蒼힐)문자’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고조선시대에 신지(神誌)가 창제한 문자가 사용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문헌에 ‘신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는 ‘신지비사(神誌秘詞)’라는 서책이 암자에 남아 있었음을 기록했다. 세종 때 편찬된 ‘용비어천가’에서는 ‘구변지국(九變之局)’의 ‘局’을 주석하면서 ‘구변도국(九變圖局)’을 신지(神誌)가 편찬한 도참서(예언 서적)의 이름으로 설명했다.

‘세조실록’에서는 신지비사를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라고 기록하면서,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고조선비사’ 등을 관에서 회수하여 다른 원하는 서적으로 교환해주도록 유시했다. ‘예종실록’(1472년 편찬)과 ‘성종실록’(1495년 편찬)에도 유사한 유시가 발령되고 있는 것은 신지의 ‘고조선비사’가 당시까지는 민간에 꽤 널리 보관되어 있었는데 조정에서 모두 몰수하여 소멸시킨 것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왕조 선조 시기의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는 “神誌는 단군시대 사람으로 호는 스스로 선인(仙人)이라 했다”고 기록했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선조 23년) 윤두수(尹斗壽)가 편찬 간행한 ‘평양지(平壤誌)’에는 “평양 법수교(法首橋)에 옛 비석이 있는데 언문도 아니고 범(梵)문자도 아니며 전(篆) 자도 아닌 글자로서 사람들이 능히 알 수가 없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계미년(선조 16년) 2월 법수교에 매장되었던 멱석비(石碑)를 파내어 본 즉 3단으로 나누어졌는데, 비문은 예(隷) 자도 아니고 범서(梵書) 모양과 같았으며, 어떤 이는 이것을 단군(檀君) 시기 신지(神誌)의 소서(所書)라고 말하였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유실된 것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와 ‘영변지(寧邊誌)’에는 신지문자 16자가 채록되어 있다.

이 밖에 고조선 시대의 토기·청동기·암벽 등 유적·유물에는 위의 문자와 유사한 문자들이 간혹 조각되어 있어서 고조선의 신지문자가 실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고중국에서는 신지(神誌)문자를 창힐문자(蒼힐文字)라고 부르면서 기록을 남겼다.

▲  창힐문자의 비석 탁본(사진 왼쪽). 해독되지 않는 고조선문명 지역의 신석기 기호문자가 새겨진 경남 남해군 양하리 바위와 경북 영일군 칠포리 바위.

중국 고문헌 ‘포박자(抱朴子)’에는 하(夏)나라를 건국한 황제(黃帝)가 靑丘(청구)에 도착하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紫膚) 선생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청구’는 조선의 옛 이름이며, 3황은 ‘환인·환웅·단군’으로서, 황제가 고조선의 풍산을 지내가다가 고조선의 ‘자부’라는 학자로부터 고조선의 문자(삼황내문)를 받아왔음을 기록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때 황제가 받아간 ‘삼황내문’이 고중국이 창힐문자라고 호칭했던 신지문자라는 것이다.

중국 송나라시대 서기 992년(송 순화 3년)에 간행된 옛 붓글씨 첩책 ‘순화각첩(淳化閣帖)’에는 한문자로 해독되지 않는 글자로 새겨진 비문 28자를 창힐문자라는 이름을 붙여 수록했다. 또한 청나라시대에 세운 중국 섬서성 백수현 사관향(白水縣 史官鄕)에 있는 ‘창성묘(倉聖廟)’라는 사당에 ‘창힐조적서비(蒼힐鳥迹書碑)’와 서안(西安)시 비림(碑林)에 있는 ‘창힐서비(蒼힐書碑)’는 역시 ‘순화각첩’의 창힐문자 28자를 모사하여 세운 것이었다.

신지문자와 창힐문자가 동일한 이유는 신지문자가 고중국에 전수된 것이 창힐문자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 근거는 우선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위에서 든 ‘포박자’에 고중국 황제가 조선에 간 적이 있을 때 고조선의 학자 ‘자부’ 선생으로부터 고조선 문자(신지문자)를 받아왔다고 풀이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蒼힐’은 ‘푸른나라 사람 힐’의 뜻으로 그 자체 ‘靑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중국에서는 ‘창힐’을 황제의 사관(史官)이라고 하면서 글자를 반포했다고 하여, ‘힐황(힐皇)’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힐’이 사관 이름이며 ‘蒼’은 ‘靑丘’(조선)를 의미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창힐문자란 ‘고조선 사관 힐’에서 받아온 문자의 뜻이 되는 것이다.

고조선의 신지문자는 BC 108년 고조선 국가가 한(漢) 무제(武帝)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한 4군이 설치된 이후 한문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옴에 따라 급속히 소멸하기 시작했으나, 고려시대까지는 일부 수공업자 계급 사이에서 잔존했던 흔적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사학자였던 권덕규(權悳奎)는 단군 고조선 시기부터 고려 시대까지 신지문자를 비롯하여 고유 문자가 존재했으며, 조선왕조에서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이를 토대로 크게 계승·발전시킨 것이라는 주장을 일찍부터 강력하게 주장했다. 고조선 신지문자는 초기 소박한 문자 체계의 상태에서 BC 1세기부터 한문자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고구려·백제·신라의 조정에서 AD 4세기∼AD 6세기경 한문자가 공식 문자로 채택됨에 따라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소멸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까지는 민간에서 구속용문자(舊俗用文字)로서 잔존했다가, 조선왕조 세조 때 마지막 잔존한 신지문자 관련 몇 종 서적까지 조정이 강제 수집하여 최종적으로 소멸시킴으로써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지문자는 현재 충분히 수집되어 있지 않고, 또한 해독되지도 않고 있다. 고조선문명 연구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수의 연구자에 의해 신지문자가 풍부하게 수집된 다음에 언젠가는 해독될 날이 있으리라고 예견할 수 있다. 신지문자는 앞으로 학계가 연구해야 할 과제다.


조선왕조 세종은 1443년(세종 25년) 마침내, 다음 표와 같은 훈민정음 28자를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했다. 초성(자음) 17자와 중성(모음) 11자로 구성된 알파벳인데, 조립하면 세계 어떠한 언어도 능히 표현할 수 있는, 세계 문자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과학적 문자이다.

주목할 것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제정한 ‘세종실록’ 기사에 훈민정음이 ‘옛 전자(古篆)’를 모방했다고 기록한 사실이다. 또한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에서도 “글자는 옛 전(篆)자를 모방했다”고 기록했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 고전(古篆, 옛 전자)을 반드시 한문자의 ‘옛 전자’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은 훈민정음 반대파에게는 한문자의 ‘옛 전자’로 해석되게 했지만, 동시에 신지문자의 ‘옛 전자’의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훈민정음의 글자 꼴이 한문자의 옛 전자와 동일한 것은 몇 개 없는 반면에, 그 정도의 닮은 수는 아직 50여 자밖에 수집하지 못한 신지문자에도 실재하기 때문이다.(표 참조)

물론 훈민정음은 완벽한 표음문자이고, 신지문자는 표의문자인지 표음문자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문자이기 때문에, 훈민정음이 신지문자를 계승 완성한 문자라고는 추정할 수 없다. 필자는 신지문자와 ‘훈민정음’은 별도의 문자체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역사·사회학도이고 언어·문자학자가 아니므로, 이것은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 도중에 모든 기존 문자를 참조했고, 요동에 와 있는 명의 언어학자 황찬(黃瓚)에게 성삼문(成三問) 등을 13차례나 파견하면서 서면 토론한 것을 고려할 때, 세종이 고려시대까지 민간의 일부에서 존속했고 세종의 후대 왕들 시대까지도 존속하여 그 수거를 명령했던 신지비사와 신지문자를 참작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지문자와 훈민정음의 관계 역시 학계의 앞으로의 연구과제 중 하나라고 할 것이다. 명백히 할 것은 고조선문명에서 지배층은 독자적 신지문자를 제정하여 사용했으며, 한문자가 들어와 그것을 대체한 AD 4세기까지는 신지문자가 지배층 사이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지문자를 계승했든지 또는 별도의 문자체계로 창작했든지 간에, 고조선문명 창조자의 직계 후예가 15세기에 세계의 모든 문자 가운데서 가장 과학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평민층까지 모든 백성이 세계에서 가장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과학적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문화일보 2월 26일자 17면 13 회 참조) 서울대 명예교수


■ 용어설명

신지문자(神誌文字) : 고조선문명 지역에서는 해독되지 않는 신석기 기호문자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를 고조선 지배층이 자신들의 말을 표기했던 ‘신지문자’라고 일부에서는 추정한다. 고중국에서는 ‘창힐(蒼힐)문자’라고 불렀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는 고조선의 문자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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