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저수지에 빠진 나를 구해준 형,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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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순(1954∼1998)

최근 경기 화성시 동탄면 중리 만의사를 찾아갔다. 22년 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형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다. 형이 생각날 때면 찾는 곳이다. 11남매(7남 4녀) 중에서 형이 10번째였고, 그 밑이 막내인 나다. 위의 누나와 형들은 건강한 편이었지만, 어머니가 30대 후반에 낳은 형과 나는 약한 체질로 태어났다.

충청도 산골에서 살던 1964년,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로 기억한다. 고향 동네에서 3㎞ 정도 산길을 걸어가면 구룡사 절 밑에 은천저수지가 있다. 그곳으로 날마다 더위를 날려 보내자며 형과 나, 동네 아이들 대여섯 명이 멱을 감으러 갔다. 어느 날 저수지에서 놀다가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수영도 못하던 내가 어쩌다 깊은 곳으로 떠밀려가 허우적댔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저수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다 지쳐서 물속에 잠길 무렵, 밖에서 앉아 땡볕을 쐬던 형이 나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저수지로 뛰어들어 한 손으로는 저수지 가장자리의 억새풀을 꽉 잡고 한 손은 길게 뻗어 내 손을 잡아당겼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형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난 나는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그 저수지로 멱을 감으러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결국 동네 초등학생 아이가 그 저수지에서 멱을 감다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일요일, 수원을 떠나 용인과 광주를 전전하며 철공소에서 일하던 형을 가끔 찾아갔다. 그때마다 형은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단칸방에서 기름때가 낀 가무잡잡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고는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 주고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수업료를 제날짜에 못내 교실에서 쫓겨 나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약간의 돈을 벌어 쓰던 학창시절이었기에 형이 준 만 원은 나에게 큰돈이었고, 학비나 용돈으로 정말 요긴하게 썼다.

결혼해 아들딸 남매를 낳고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형수와 맞벌이하면서 집도 장만하고 다복하게 사는 형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마흔을 넘기면서 약한 체질 때문인지 결핵을 앓고 전립선암이 온몸으로 전이돼 형은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남기고 45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오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형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형은 내가 저수지에 빠져 죽느냐 사느냐의 긴박한 상황일 때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야. 형이나 나나 가난한 농부 집안의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형의 고달픈 삶의 여정을 가장 가까이서 안타깝게 지켜봐 온 이 동생은 형이 떠난 지 22년이 흘렀어도 형을 잊지 못하고 있어. 형이 이 세상에 남긴 두 조카는 모두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손자가 둘인데 큰 손자는 벌써 초등학생이 됐어.

요즘도 가끔 꿈속에서 형을 만난 뒤 잠에서 깨면 형이 꼭 살아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어. 지금 만날 수만 있다면 형이 그토록 좋아하던 돼지고기 로스에 소주로 건배할 텐데…. 약한 몸으로 태어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다간 형을 본보기 삼아 나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세상 떠나 형한테 가면 예전처럼 반갑게 맞이해줘.

동생 박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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