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불 끌 물을 나눠 갖자는 ‘재난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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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어느 동네에 큰불이 났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별 필요도 없이 야금야금 퍼내 써서 저수 탱크의 물이 반밖에 없다. 그 물로 발화점에 조준해 부어도 진화엔 부족한 양이다. 옆에 강물이 흐르는 큰 마을과 큰 저수지가 있는 건넛마을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 와중에 당장 마시고 씻어야 한다고 저수 탱크의 물을 나눠 갖자는 동네 사람이 많다.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마을 지도자들도 있다.

이 어리석은 마을의 이야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경제에 예측하기 어려운 큰 충격이 닥칠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도민 1인당 10만 원씩 모두 1조 원이 넘는 재정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각종 재난소득과 재난수당의 이름으로 지급하겠다는 선언 등 지자체장들의 선심 공세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부적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 충격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될지를 예상하고 정부의 개입 여지가 있는지 파악해 이를 근거로 제대로 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경제 전체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할 경우 국민의 희생과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고려할 때 재난수당 또는 재난기본소득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이 방안들은 무엇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연쇄적인 진전을 막는 데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성(unknown unknowns)’에 의한 경제활동이 중단됨에 따라 경제의 순환 과정이 붕괴돼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의 선순환 고리에서 가장 파급효과가 큰 중요한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재정 투입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채시장과 회사채 시장의 신용 경색 조짐이 나타나 금융과 외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점이다. 이를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위한 비축은, 경제위기 대응에 훨씬 더 중요한 우선 과제다.

둘째, 재난수당 주창자들이 간과하는 것으로, 선진국들과 우리의 경제 조건이나 재정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무한정의 양적완화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재정 건전성 악화는 거시경제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훼손해 정말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셋째, 재난수당 또는 재난기본소득은 그 제도에만 초점을 맞추더라도 문제가 적지 않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전체 경기부양 패키지에서 극히 일부를 소비자에게 배분하는 것인데, 한국이 이를 따른다고 해도 가용자원의 크기를 고려할 때 매우 소규모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 선순환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재난관리기금의 전용 문제도 재정법의 책임성과 엄격성을 너무 경시하는 태도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야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는 것처럼, 재정도 가장 효과적인 대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는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기본공제나 세액감면을 없애면서 확보한 재원으로 재난수당을 주자는 아이디어를 봤다. 그게 그렇게 쉽다면 기본공제나 세액감면은 애초에 왜 있었겠는가. 쓸데없는 게 있었던 것인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