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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terview 게재 일자 : 2020년 03월 27일(金)
주철환 “마음에 희망·소망 그물 치면… 삶이 의욕으로 차오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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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 아주대 교수는 “이 시기가 지나고 난 후에 찾아오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코로나19 사태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현역 PD라면 ‘기적의 합창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 원조 ‘스타 PD’ 주철환 아주대 교수

반대로 원망·선망 깔아두면
비난·비교하는 삶밖에 안돼
굴곡진 삶 통해 성숙해져 감사

노래채집가로 이모작 준비중
가수들 만나 함께 노래하고
주례 선 200쌍 만나보려 해

사람 늙는 건 속이 상했기 때문
긍정의 힘 믿어… 미래 낙관해야
인생 최고의 복은 ‘전화위복’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감사’와 ‘존중’이 떠오릅니다.”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1980∼1990년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스타 PD로 명성을 떨친 주철환(65)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두 단어로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고려대 국문과 졸업 후 모교인 동북중·고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한 그는 뒤늦게 군에 다녀와 1983년 MBC PD로 입사했다. 2000년부터 7년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2007년에는 OBS 경인TV 사장으로 옮겨갔다. 이후 2011년 개국한 JTBC에서 일하다가 2014년 아주대에 자리 잡았고, 2016년부터 2년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오는 8월 아주대에서 정년퇴임을 앞둔 그에게 ‘감사’와 ‘존중’의 의미를 물었다.

“천국의 유행어는 ‘감사합니다’고 지옥의 유행어는 ‘억울합니다’예요.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억울한 일이 있었지만 그 순간조차도 저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성장 과정에서 굴곡진 삶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죠. 또 이렇게 살아온 제 삶을 존중하고, 저와 다르게 살아온 삶도 존중해요. 어린 시절에 ‘존중’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어요. ‘나는 이렇게 살다 죽을게, 너는 그렇게 살다 죽으렴’. 인간의 마음속에는 그물이 깔려 있어요. 원망과 선망의 그물을 깔면 비난하고 비교하는 삶이 돼요. 소망과 희망은 잠재력을 키우며 열정과 의욕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그물이죠.”

그가 말한 ‘굴곡진 삶’이 궁금해졌다. 누구나 부러워할 삶을 살아오며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에게 어떤 굴곡이 있었을까.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서울에 사는 고모님 집에 입양돼 왔어요. 이복 남매인 큰 누나는 그때 이미 결혼했고, 저를 제외한 4남매가 계모 슬하에서 자랐어요. 고모님도 가난하셨어요. 돈암동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죠. 저를 성장시킨 건 외로움과 그리움이에요. 어머니 장례 치르고 바로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본 고향 모습이 어머니 무덤이에요. 서울에 와서도 모래 장난만 쳤대요. 어머니 무덤을 만드는 거였죠. 고모님이 가엾어하셨어요. 고모님이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을 때 쭈그려 앉을 수도 없는 다락방에서 지냈어요. 하루 종일 엎드려 고모 가게 포장지로 쓰는 신문을 보며 꿈을 키웠어요. 당시 한국영화 전성기였고, 신문에는 온통 영화 광고였죠. ‘미워도 다시 한번’ ‘떠날 때는 말없이’ 등 영화 제목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국어 교사는 그의 인생 지도에 그려져 있었지만 PD가 된 건 우연이었다.

“동북중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셨던 신철수 선생님이 제 인생을 이끌어주셨어요. 백일장을 석권하던 국어 잘하는 아이가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자 선생님이 학교로 부르셨어요. 배우 최민수와 ‘신과 함께’ 시리즈 제작자인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가 제 제자예요. 교사 생활을 하며 석사를 마치고 스물여섯에 군대에 가게 됐어요. 체중 미달로 4년 동안 징병검사를 받았거든요. 원주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다가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와 정동길을 걷고 있는데 당시 MBC 정동 사옥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더라고요, 호기심에 가보니 신입사원 원서접수를 하고 있었어요. 얼떨결에 시험을 봐서 붙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방송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이 나왔는데 부대에서 AFKN만 틀어놔서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제대 후 학교에 자리가 없어서 고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MBC에서 면접을 다시 보라는 연락이 왔어요. 취미란에 ‘작곡’이라고 썼더니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작곡한 ‘초승달’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합격했어요. ‘달이 초승달인 것을 나는 근심하지 않아요/ 보다 완전한 달은 언제나 구름 속에 숨겨져 있어요’라는 가사예요. PD가 된 건 0.1%의 우연이었어요. 세상은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차지하죠.”

▲  ‘우정의 무대’ 연출 당시 진행자인 이상용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철환 PD(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몰래카메라’ 코너를 담당한 개그맨 이경규(왼쪽), 진행자인 배우 최수종(오른쪽)과 함께한 기념사진(아래).
PD 초년생 때부터 작곡 능력을 펼친 그는 신문에 기사가 나는 등 유명해졌다.

“MBC에 들어가서 ‘모여라 꿈동산’과 ‘장학퀴즈’ 조연출을 맡았어요. ‘모여라 꿈동산’ 선배 PD가 ‘자네가 국문과 출신이니 주제가 가사를 써보라’고 해서 ‘외람되지만 곡도 쓰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 후 1시간 만에 노래 한 곡을 만들었어요. ‘숲길을 돌아 구름을 타고 꿈동산에 왔어요/ 새들은 날아 꽃들은 피어 노래하는 꿈동산/ 하늘 아래 땅 위에 모두가 친구죠/ 아무라도 좋아요/ 꿈동산엔 담장이 없으니까요’. 교육철학을 담은 가사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우쭐했어요(웃음). ‘차인태의 출발 새 아침’으로 PD로 입봉(‘첫 연출작을 맡다’는 의미)한 후 ‘장학퀴즈’에 재미 요소를 추가해 ‘퀴즈 아카데미’를 만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모으며 제 이름 앞에 ‘스타 PD’라는 수식어가 붙었어요. 군 위문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바꾼 ‘우정의 무대’도 화제가 되며 두 프로그램 모두 방송대상 우수작품상을 받았어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예능 시대’가 열렸고요. 한 방송 잡지에서 PD 인기 조사를 했는데 어쩌다 제가 1위에 올랐어요.”

PD 시절 처음으로 ‘예능’에 ‘교양’을 유입시킨 그는 “공감과 교감을 통해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게 예능”이라고 설명했다.

“‘오락’은 소비적인 장르지만 ‘예능’은 시청자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걸 웃음으로 환기해주는 장르예요. 좋은 예능 프로그램은 볼 때 지루하지 않고, 보고 나면 뭔가 남는 것이 있어야 해요. 감동을 전해야죠. 감동의 사촌이 감사예요.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부모님께 전화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는 요즘 잘나가는 나영석, 김태호 등 후배 PD들 덕분에 자신이 부활했다고 말했다.

“20년 차이 나는 후배들이 저를 다시 살렸어요. 손흥민이 없으면 차범근은 잊히죠. 나영석, 김태호 관련 기사가 나올 때 가끔 ‘예전에 주철환이라는 스타 PD가 있었는데…’라는 얘기를 곁들여주는 덕분에 예능 PD 계보가 형성되고, 제가 되살아나요.”

문화일보에 ‘주철환의 음악동네’ 칼럼을 연재 중인 그는 노래채집가로 인생 이모작을 준비 중이다.

“노래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초등학생 때 제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가 라디오였어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흑산도 아가씨는 왜 육지를 바라보며 검게 타버렸을까’ ‘왜 동백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나’. 그때부터 방탄소년단의 노래까지 제 머릿속에 만여 곡이 담겨 있어요. 이제는 글로 소개하던 음악동네를 현실에서 펼치고 싶어요. 한국 가요사를 써온 유명 가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도 부르려고 해요. 또 제가 주례를 선 200쌍이 넘는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주주(주철환+주례)클럽’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에 대한 제 경험을 풀어놓으려고 해요. 이 두 아이템을 유튜브에서 풀어낼 수도 있고요. 제가 문화방송에서 시작해 지금은 문화일보에 글을 쓰고 있잖아요. 문화(culture)의 어원인 ‘컬티베이트(cultivate)’는 ‘경작’을 뜻해요.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인생을 새롭게 경작해야죠. 자신을 키우고, 누군가를 키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에요. 정년퇴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매듭이라고 생각해요.”

칠순을 바라보면서도 40∼50대로 보이는 그는 동안의 비결로 ‘동심’과 ‘긍정’을 꼽았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해요. 사람이 늙는 건 속이 상했기 때문이에요. 속이 상하면 겉도 상하죠. 저는 긍정의 힘을 믿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그럴 수 있지’예요. 탐탁지 않은 일이 생겨도 더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객관적으로 보고, 미래는 낙관적으로 봐야죠. 우울하고, 고민이 생기기도 하지만 최고의 복은 ‘전화위복’이에요.”

그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묻자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대학가요제(1979) 대상 곡인 ‘내가’가 생각나요. 노랫말처럼 ‘말 없는 방랑자’셨죠.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이 하나도 없어요. 가족 부양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를 엄청 미워했어요. 돌아가셔도 눈물이 안 날 것 같았어요. 근데 막상 돌아가시니까 슬프더라고요.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아버지가 있더라고요. 연민이죠. 아버지의 부재는 저를 독특한 사람으로 만들어줬지만 그럼에도 다정하게 대해드리지 못한 게 후회돼요. 아버지가 1906년에 태어나셨어요. 러닝머신에서 뛰며 19분 06초가 되면 혼잣말을 하게 돼요. ‘아버지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 최근 펴낸 에세이집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
인생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며 써… 나를 리모델링하는 기폭제 돼


주철환 교수는 최근 에세이집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마음서재)를 펴냈다. 책 제목은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주 교수는 “(공저는 빼고) 열여섯 번째 책으로, 인생 이모작 시나리오”라며 “마음 같아선 평생 30권을 내고 싶은데 특히 이번 책은 나 자신을 리모델링하는 기폭제가 될 것 같다”고 소개했다.

첵 서문에 ‘그동안 재미를 추구하며 즐겁게 살아왔다. 하지만 재미로 끝나서는 마지막이 허전하다. 재미의 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쓴 그는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잘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며 글을 쓰는 편이에요. 스스로 점검하려면 일기를 쓰면 되죠. 책은 독자들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느낌으로 펴냅니다. PD 시절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이런 느낌으로 재미와 의미를 적절하게 배합했어요. 우정이 의미라면 무대는 재미죠. 퀴즈가 재미있는 게임이라면 아카데미는 의미가 담긴 장소고요.”

책에는 방송과 학교에서 맺은 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녹아 있다.

“사람과 인연을 맺으려면 솔직하고 간절해야 해요. 간절함이 꾸준함으로 연결되고, 거기에 겸손함이 더해지면 인연이 확장되죠. 인생은 항해예요. 어떤 배를 타느냐가 중요하죠. 파트너십, 멤버십 등이 있지만 프렌드십이 가장 아름다운 배라고 생각해요. 제 삶 자체가 인연의 모자이크예요. 아직 비어 있는 모자이크 부분을 인생 이모작에서 채워 넣으려고 해요. ”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의 유익함”이라는 말을 전했다.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힘이 들면 보람과 성취를 얻을 수 있어요. 고난이 유해한 것만은 아니고 이 또한 지나가죠. 이 시기가 지나고 난 후에 찾아오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거예요.”

그에게 ‘지금 현역 PD라면 어떤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자 바로 “기적의 합창단”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아서 인생을 활짝 꽃피웠던 시기에 가장 좋아했던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특정 고등학교 동기동창 100명을 초대해 그들이 함께했던 시절에 좋아했던 10대 가수를 뽑고, 그중 몇 명을 불러 함께 추억담을 나누며 합창을 준비하는 거죠. 조용필도 나오고, 김추자도 나와서 스타와 팬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로 이야기를 풀어내겠죠.”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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