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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3월 30일(月)
연극대사 읊듯 國王 찬양 노래 …‘프랑스式 오페라’ 뿌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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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4년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세워진 ‘알세스트’ 초연의 임시 무대.

김학민의 오페라 문화사 - ⑦ 륄리 오페라와 佛 고전극

■ 예술 미학

국민 연극사랑 틈 비집고 ‘그리스 비극’ 닮은 오페라 소개 … 음절마다 佛 억양·뉘앙스 살리는 데 공들여
서막엔 루이 14세 칭송으로 노골적 아부 … 고전극 법칙 깨고 스펙터클 무대로 관객엔 즐거움 선사


역사적으로 오페라 발전은 연극의 전통과 기묘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이탈리아는 노래를 너무 사랑해 연극보다 오페라가 더 발전했으나, 다른 유럽 나라들은 좋은 연극이 있는데 굳이 오페라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영국 못지않게 연극 전통이 강했던 프랑스도 그중 하나였다. 영국이 연극을 너무 사랑해 오페라 발전의 기회를 놓쳤던 반면, 프랑스는 일찍이 바로크 시절부터 연극 사랑을 오페라 사랑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찾았다.

프랑스 오페라의 산파가 루이 14세였다면, 프랑스 오페라를 잉태시킨 사람은 작곡가 장 밥티스트 륄리(1632∼1687)였다.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그는 타고난 정략가이자 야심가로 루이 14세의 눈에 들어 수많은 공식 타이틀을 얻었다. ‘국왕 가족 음악선생’ ‘국왕 직속 실내음악 총감독’의 타이틀을 얻은 그가 궁중 발레극 ‘왕의 춤’(1653) 공연 무대에 루이 14세를 태양왕 아폴론 역으로 데뷔시킨 사연은 출세를 위한 그의 야심과 기지를 잘 말해준다. 왕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그는 ‘국왕 직속 작곡가’의 타이틀까지 얻어내 음악과 오페라의 전권을 휘두르게 됐다(Warrack & West, 1992, 422).

◇연극 대사를 닮은 노래

륄리의 관심은 연극을 너무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을 오페라로 돌리는 데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가 이끄는 신고전주의 연극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륄리의 해결책은 신고전주의 연극의 연장선에서 오페라를 연극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륄리는 당시 파리의 공인 연극단체였던 ‘코미디 프랑세즈’에서 공연되던 프랑스 고전 비극의 시 낭송법을 모델로, 오페라 노래를 새롭게 만들었다. 프랑스어로는 오페라를 만들 수 없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는 프랑스어 가사의 음절 하나하나에 프랑스어의 억양과 뉘앙스를 살리는 식으로 공들여 음을 붙였다. 관심의 초점이 된 레치타티보는 연극 대사처럼 충분한 길이로 극의 사연을 전개했고, 레치타티보의 앞뒤에 나오는 정식 노래, 에어는 이탈리아식 아리아의 과장된 어조와 현란한 장식음을 절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프랑스풍 레치타티보와 에어는 연극 대사의 자연스러움을 닮게 됐다.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규칙적으로 교대하는 식이 아니라(번호 오페라), 극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순서와 길이를 조절한 결과, 륄리 오페라는 “프랑스 고전 비극의 연장선에 놓일 수 있었다. ‘음악 비극’의 명칭이 말해주듯, 프랑스 오페라는 어디까지나 연극”이었다(Girould, 2010, 23).

▲  륄리 음악 비극 ‘아티스’의 원작인 오비디우스 서사시 ‘파스티: 달력’에 대한 묘사(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그림).

◇고전 비극의 원칙들

륄리 오페라는 당시 프랑스 고전극처럼 그리스·로마 신화를 소재로 했다. ‘카드뮈스와 에르미온’(1673)과 ‘아티스’(1676), ‘페르세’(1682)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모음 ‘변신 이야기’(8세기경)를 원전으로 하고, ‘알세스트’(1674)는 그리스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희비극 ‘알케스티스’(기원전 438)가 원전이었다. 타소의 중세 기사문학 ‘해방된 예루살렘’을 원전으로 한 세 개의 륄리 오페라(1684 ‘아마디스’, 1685 ‘롤랑’, 1686 ‘아르미드’)는 그리스·로마 고전에서 벗어난 말기 륄리 시절의 예외적 현상이었으나, 이것들 역시 신화 세계의 연장이었다.

륄리와 그의 대본작가 필리프 퀴노(1635∼1688)는 고전 비극의 ‘삼일치의 법칙’ 중 행위의 일치만큼은 지키려 애썼다. 프랑스 고전 비극에서 행위의 통일성이란 서브플롯(부수적인 이야기)의 개입 없이 주인공의 일관된 행위로만 이뤄짐을 뜻했다. 퀴노는 초기 음악 비극 ‘알세스트’에 부수 인물들의 코믹 릴리프 장면을 넣었다가 “발레·문학 아카데미 회원들로부터 극의 통일성을 해친다는 경고장을 받고는, 두 번 다시 코믹 요소를 넣지 않은 ‘정통’ 비극을 썼다.”(Girould, 21).

이 밖에도 ‘시간의 통일’과 ‘장소의 통일’이라는 엄격한 프랑스 고전 비극의 원칙은 륄리와 퀴노에게 언제나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프랑스 고전 비극은 “연극의 시간이 청중이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과 같아야 한다는 이상한 근거에서 연극의 시간을 24시간으로 국한”했다. 공간도, “한 공간에 있는 청중 앞에 연극 속 장소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니” 한 막에 2∼3개 이상의 공간은 허용하지 않았다. (Brockett, 1979, 4판, 205-206)

인물 간 관계의 질서도 존중해야 했다. “신화 속 인물들은 위계 구조에 따라 관계가 설정됐다. 가령 급이 높은 최고 신들은 인간과 직접 소통하면 안 되고 낮은 급의 신을 통해야 했다. 급이 낮은 신이 높은 신에 도전장을 내밀어도 안 됐다.” 인물 간 관계에 대한 이러한 규범은 륄리 시절을 지나 라모, 글루크, 19세기 그랑 오페라를 거쳐, “오펜바흐의 신화 패러디인 ‘지옥의 오르페오’(1858) 직전까지” 계속됐다(Girould, 22).

▲  륄리 음악 비극 ‘이시스’ 중 바다괴물에게 잡아먹힐 운명에 처한 안드로메다와 그녀를 구출하는 페르세우스(카를 반 루 그림).

◇그리스 비극을 닮은 프랑스 오페라

륄리 오페라는 동시대 프랑스 고전극보다 그리스 비극을 더 닮았다. 그리스 비극에서 노래와 춤의 기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주인공 장면(에피소드)의 앞뒤에 나왔던 집단의 노래·춤 장면(코러스)은 이상적 관객인 ‘코러스’가 주인공에 대한 간섭과 조언, 대화 등의 형태로 표출한 정서적 반응이자 사건 전개의 필수 요소였다(Brockett, 1979, 4판, 92-93). 이처럼 노래와 춤이 중요했던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오페라로 재현한 건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아니라, 프랑스의 륄리였다.

륄리는 누구보다 코러스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독창 및 이중창 노래(레치타티보와 에어)의 앞뒤에 중창, 합창, 춤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섞었는데, 이 단체 장면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왔던 코러스의 기능과 다를 바 없었다. 오케스트라 반주도 코러스 기능을 했다. 코러스 효과에 준하는 중창, 합창, 춤, 오케스트라를 통해 륄리는 그리스 비극의 감동을 재현한 프랑스제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그리스 비극과의 연관성은 구성에서도 드러났다. 륄리 오페라 중 가장 정통적인 ‘서정 비극’은 그리스 비극처럼 서막-5막으로 구성됐다. 프랑스 고전 비극도 5막 구성이었으나 서막은 없었다. 륄리는 3막의 ‘비정통적’ 구성이면 ‘전원극’ ‘희극 발레’ ‘비극 발레’ 등 다른 명칭을 붙였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프랑스 오페라의 서막-5막의 전통은 이후 륄리의 계승자가 된 18세기 라모의 오페라와 19세기 그랑 오페라의 규범으로 계속됐다.

◇스펙터클을 위한 장치들

전체적으로 볼 때 륄리 오페라는 고전극의 실제보다는 분위기를 더 많이 닮았다. 소재와 형식의 측면과는 별도로 내용적으로 고전극의 원칙에서 비켜나간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륄리와 퀴노가 고전극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 가능한 한 많은 스펙터클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륄리는 한 막에 여러 장소와 시간을 배치해 많은 무대 세트를 동원했다. ‘알세스트’의 4막은 아케론 강둑에서 시작해 플루토의 궁전으로 끝났고, 2막은 낙원 같은 신들의 정원에서 시작해 지옥 같은 사막으로 바뀌었다. 마법사 장면과 변신 장면도 스펙터클을 위해 마련한 장치였다. 굳이 메데(‘테세’), 로지스티으(‘롤랑’)와 같은 마법사가 아니라도, 아테네 신(‘카드뮈스와 에르미온’), 주노 신(‘이시스’), 프로테우스 신(‘파에톤’) 등이 변신의 마법을 통해 관객에게 스펙터클을 제공했다(Girould, 21).

해피엔딩의 결말도 스펙터클로 오페라 무대의 말미를 화려하게 끝내기 위함이었다. 륄리가 퀴노와 함께 한 13개의 음악 비극은 대부분 결혼식, 해방, 승리 등의 사연을 통한 대대적인 축복의 대합창과 춤의 향연으로 끝을 맺었다.

◇왕 찬양을 위한 노골적 아부 코드

륄리 오페라의 서막에 어김없이 나오는 신화 속 인물 혹은 비유적 인물들(사랑, 시간, 영광, 지혜의 신…)의 노골적인 국왕 찬양도 스펙터클을 제공해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오페라 장르의 사회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티스’ 초연 당시는 프랑스가 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이던 시기로, 루이 14세를 위시해 프랑스 전 국민은 한겨울철 앙리 드 라 투르의 비극적 죽음으로 비탄에 빠져 있었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춤과 합창의 연회를 통한 위로와 희망이었다. 그래서 이 오페라 서막에서 시간의 신은 비탄에 빠진 관객 앞에서 루이 14세의 용감한 행동과 덕성을 칭송했고, 봄의 여신은 “그분(루이 14세)은 전쟁의 여신 벨로나까지도 용서하신다”며 춤과 합창의 연회를 거행했다.

작곡가 륄리와 작가 퀴노가 써내려간 초기 프랑스 오페라의 역사는 유럽 최고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부르봉 왕가의 후원 아래 이뤄진 묘한 문화 사회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오페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자리 잡게 된 프랑스 오페라의 섬세성과 연극성의 뿌리가 돼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륄리 오페라에 내재한 자연스러움과 형식미, 그리고 역설적 의미에서의 건강함은 고음 배틀과 기교주의, 여주인공의 마조히즘적인 절규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왜곡된 발전의 역사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프랑스 오페라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해준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용어설명

에어 ayre : 프랑스 오페라에 나오는 정식 노래.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리아’에 해당하지만, 길이가 더 짧고 형식도 단순하며, 장식음 등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음악인 경우가 많음.

음악 비극 : 륄리가 개발한 프랑스 정통 오페라로, 후대 사람들은 ‘노래 비극’이라는 뜻의 ‘서정 비극’이라 부르기도 했다.

삼일치의 법칙 : 행위, 장소, 시간의 일치에 대한 프랑스 고전 비극의 엄격한 법칙.

신고전주의 연극 : 17∼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라신, 코르네유, 몰리에르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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