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스마트폰, ‘萬病의 근원’이 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편리를 위해 스마트폰을 만들었으나 그것에 결박당해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 ‘노모포비아’ 저자의 지적이다. 더난콘텐츠 제공

- 노모포비아 /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박종대 옮김 / 더난출판

‘디지털 치매’쓴 獨 뇌과학자
우울증·지능 하락 등 부작용
스마트폰 전염병으로 규정해

“스마트폰 가장많이 생산하는
韓청소년 95% 근시”꼬집으며
‘세계 근시급증=팬데믹’ 강조

초국적 기업들‘혁신’포장해
자극·선정적 정보제공 지속
이용자를 극단주의 빠지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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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기록을 네 차례 반복해서 소개한다. 20세 이하 아이들의 근시 비율이 90%가 넘는다는 것.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것을 지적하고, 2장 ‘새로운 팬데믹, 근시’에서 또다시 세 번을 언급한다. 한국의 세계 기록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날로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근시의 주된 원인이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독일 뇌과학자로, 하이델베르크의 정신과 클리닉에서 선임 의사로 일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두 번에 걸쳐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줄곧 디지털 미디어의 폐해에 대해 경고해왔다. 2012년에 펴낸 책 ‘디지털 치매’는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2015년 독일에서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라는 용어가 청년층이 선정한 올해의 말이 됐을 때 반가웠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의 폐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스마트폰 사용은 더 늘어났고, 그에 따라 그 해악도 커졌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전문 잡지에 공개된 많은 과학자의 인식을 요약하고, 스마트폰이 우리 모두에게 끼치는 해악을 이해하기 쉽게 핵심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저자는 냉소적 유머를 즐기는 학자인 듯,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심오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는 독일 지성계에서 이례적으로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 ‘노모포비아(Nomophobia)’는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로,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뜻한다.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현대인 대부분이 겪는 증상일 것이다.

책의 원제(‘Die Smartphone-Epidemie’)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전염병(Epidemic)으로 규정한다. 이 전염병은 운동 부족, 잘못된 자세, 근시, 수면 장애, 지능 지수 하락, 사고(事故) 증가, 불안, 주의력 장애, 우울증, 디지털 치매, 고립공포감, 노모포비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특별히 근시의 경우엔 전염병이라기보다 대유행병(Pandemic)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근시일 것으로 의학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사물만 볼 수 있는 근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주요 원인은 물론 스마트폰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거의 모든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며 디지털 인프라가 지상 어느 나라보다 더 훌륭하게 구축된 한국에서 청소년 근시 비율이 95%에 달한다”고 꼬집었다. 우리로선 썩 유쾌하진 않지만, 차분히 성찰해야 할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갖은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은 이름 그대로 똑똑하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영리해지기는커녕 멍청이가 돼 간다는 게 저자 시각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의문을 던지는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은 각종 실험 결과가 증명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 중의 하나는, 부모들이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악순환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오남용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들은 스트레스로부터 회피하고자 스마트폰을 더 찾게 된다. 그럼 아이들은 부모에게 관심을 받지 못해 스마트폰에 더욱 의존한다. 어른들이나 친구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공동체 규범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인간답게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산업을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들이 상업적 이윤을 얻기 위해 혁신을 내세운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소비자 기호 알고리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극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것을 디지털 혁신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공에 동의한 개인 신상 정보는 맞춤형 광고에 적극 활용된다. 이를 통해 디지털 유저들은 끊임없이 선정적, 자극적 정보에 노출되고, 결과적으로 극단주의 성향에 빠져든다. 극단적 자극에 집착하게 되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이른바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성 착취 동영상을 공유하며 태연히 즐기는 괴물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이다.

이 책은 스마트폰 선용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모시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독자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불편을 감수하고서 읽어볼 가치는 있다. 폰에만 의존하는 ‘포노 사피엔스’의 세상이 끝까지 가기 전에 어디쯤에선가 멈출 필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340쪽, 1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