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기본소득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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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기본소득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상으로 주는 돈이다. 토머스 모어의 공상 소설 ‘유토피아’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제목처럼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도 기술 혁신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탓에 논의는 증폭되고 있다.

2016년 스위스 정부는 매달 19세 이상에게 2500프랑(한화 약 300만 원), 18세 이하에게 625프랑의 기본소득 지급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76.9%가 반대해 무산됐다. 재정이 감당할 수 없음을 스위스 국민은 알았다. 기존 복지의 통폐합과 세금 급증, 그리고 루치 스탬 의원 주장처럼 “가결됐다면 수억 명이 스위스로 몰려왔을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다. 핀란드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실업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지만 2년 만에 중단했다. 사회보장국 분석 결과, 빈곤 감소나 노동 의욕 고취 등의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고, 재정 부담만 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전체 가구 70%에 최고 100만 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어느 신문이 “사실상 기본소득의 첫발”이라는 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앞서 문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달 8일 모든 국민에게 100만 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비슷한 개념의 소득, 수당, 지원금 등 아이디어가 속출했으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실행되고 있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바로 알면 함부로 주장할 수 없다. 첫째, 일시적이 아니라 정기적 개념이다. 김 지사는 5100만 명에게 100만 원씩 주면 51조 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기본소득으로 하면, 한 달에 51조 원씩 매년 612조 원이 필요하다. 올해 예산이 512조 원인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둘째,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의 폐지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급식·보육·교육·의료 등 개별적 복지는 사라지게 된다. 이 때문에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도 수준만 적절하면 행정비용도 아낄 겸 해볼 만하다고 본다. 현금 복지 수혜 대상 국민은 현재 1200만∼1800만 명에 이른다. 2000만∼2500만 명이 되면 베네수엘라행(行) 열차를 타게 될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여당의 위성정당 일각에서 매달 60만 원 기본소득 공약이 나왔다. 벌써 그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