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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심리학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⑧ ‘주의’의 종류와 작동방식
① 외부 자극에 의한 ‘상향적’ ② 의도적인 ‘하향적’ ③ 무의식적인 ‘습관적 주의’로 분류
뇌 정보처리는 한계 있어 선택하고 걸러내는 ‘주의’필요… ‘주의’받지못한 정보는 의식할 수 없어
지난 연재에서 몇 차례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마음은 정보처리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 기관이 외부의 다양한 정보(시각 정보, 청각 정보, 촉각 정보 등)를 선택하고, 변형하고, 저장하고,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우리 마음이 작동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마음을 담당하는 신체기관이 바로 뇌(brain)다. 우리의 감각 기관에는 지금도 매 순간 수많은 정보가 입력되는데, 우리의 뇌가 그 모든 정보를 다 받아들여 인식하고 저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즉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각종 소음, 눈으로 들어오는 각종 빛의 변화나 무의미한 패턴들, 우리 신체 구석구석에서 들어오는 모든 감각을 뇌가 모두 처리해 저장(기억)하는 것은 뇌에 엄청난 처리부담을 갖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 중에 중요하거나 필요한 정보들은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걸러내는 ‘주의(attention)’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서로 대화하는 회식 자리에서 옆 사람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바로 앞자리의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는 전혀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강의실에서 옆 사람과 소곤거리며 대화하는 동안에는 앞에서 크게 말하고 있는 교수의 강의 내용 역시 전혀 인식할 수 없다. 귀는 늘 열려 있고, 소리 정보는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지만 오직 주의를 기울인 정보만이 의미 있게 해석·인식되는 것이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적인 정보의 선택 기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어떤 시각적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주의를 받지 못한 주변의 시각적 정보들은 우리의 의식에서 사라질 수 있다.
여러분 앞에 컴퓨터가 있다면 인터넷 창에 이 주소(viscog.beckman.illinois.edu/flashmovie/15.php)를 쳐 비디오를 보면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농구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주의를 집중해서 세어보기 바란다. 그러고 나서 이후의 글을 읽길 바란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 번 농구공을 패스했는가? 혹시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을 봤는가? 여러분이 이 동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이고, 주의를 집중해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의 패스 횟수를 정확하게 세었다면 아마도 많은 독자는 큰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눈앞에 일어나는 시각적 정보들도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인데, 이러한 현상을 인지심리학자들은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부른다. 마치 앞을 못 보는 것처럼 아무리 눈을 뜨고 보고 있어도 주의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정보들은 우리의 의식 수준까지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의’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정보를 우리가 의식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있고, 보고 있다고 해도 주의하지 않으면 놓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술사의 손이 눈보다 빨라서 우리는 마술사의 트릭을 의식할 수 없고, 주의가 다른 곳에 있는 틈을 노려 소매치기가 당신의 지갑을 가져가는 일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감추고 싶은 비리나 실정을 국민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주의’
통상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고 의식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주의와 의식이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정보의 선택은 일어날 수 있다. 많은 인지심리학 연구는 의식하기 위해서 주의가 필수적이지만, 주의에 의해 정보의 선택이 일어난다고 모두 의식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뇌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경로 중에 후두엽에서 두정엽으로 가는 경로가 손상되면 이 영역이 담당하는 시야가 의식에서 사라지는 시각적 무시증(visual neglect)이 나타나는데, 2000년대 초반 필자와 캘리포니아대 로버트슨 교수는 이러한 환자에게도 의식에서 사라진 시야에서 시각적인 주의가 작동함을 실험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필자의 연구실에서 수행한 다양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전혀 의식할 수 없는 다양한 규칙을 학습해 그 규칙에 따라 시각적 주의가 이동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즉, 우리의 주의는 의식적인 요인들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이동하고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의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첫 번째는 외부의 감각 자극이 두드러져서 순전히 그 자극의 특성으로 인해 주의가 그쪽으로 향하는 경우인데, 가령 주변에 큰 소리가 나거나 혹은 갑자기 어떤 물체가 나타나면 우리의 주의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자극에 주의를 뺏기게 된다. 이러한 주의를 상향적(bottom-up) 주의, 혹은 비자발적 주의, 또는 외인성 주의라고 부른다.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주의를 포획해가는 방식이다.
갑작스러운 소리나 물체의 출현은 우리의 주의를 포획해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구 표시가 번쩍거린다면 사람들의 주의를 자동으로 끌어 비상구를 향해 대피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도로에 번쩍번쩍 현란한 전광판 광고는 비록 광고주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가 크겠지만, 운전자의 주의를 빼앗아 운전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법적 제한이 필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주의 작동 방식은 우리가 어떤 목적이나 의도, 동기, 계획 등을 가지고 특정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인데, 이를 하향적(top-down), 혹은 자발적, 또는 내인성 주의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대화하는 소란한 공간에서도 우리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복잡한 거리에서 누군가를 찾거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 틈으로 이동하는 것을 따라 주의를 이동할 수도 있다. 어떤 장소에 누군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곳을 유심히 볼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의도에 의해 하향적 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생각의 내용과 부합하는 대상들로 주의가 이동되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여러분이 붉은색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으면 주변의 붉은색 물체들이 더 쉽게 주의를 끌게 되고 파란색을 생각하고 있으면 주변의 파란 물체들이 여러분의 주의를 끌게 된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다른 사물들보다 음식이나 음식 사진들이 주의를 끌게 되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나 그 사람과 유사한 사람이 더 쉽게 주의를 받게 된다.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느냐는 그 생각과 관련된 정보들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그 정보들이 다른 정보들보다 더 많이 선택되고 저장(기억)돼 결국 사람들 간의 다양한 개성과 견해차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생각의 순환 구조며,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주로 하고 어떤 정보에 많이 노출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주의가 작동하는 세 번째 방식은 우리가 그동안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학습한 규칙이나 확률에 근거해 자동적으로 주의가 향하는 경우인데, 이러한 종류의 주의를 습관적(habitual) 주의라고 부른다. 특히 이 주의는 무의식적으로 발현되고, 한번 학습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습관적 주의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가령 모니터 화면 어딘가에(가령 우측 상단) 찾으려고 하는 대상이 자주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대상이 얼마나 자주 그 위치에 나타났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해도 그 위치로 시각적인 주의가 향하게 된다. 일단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더 이상 그 대상이 그 위치에 자주 나타나지 않아도 우리의 주의가 그 특정 위치로 쉽게 향하는 일이 지속된다. 이러한 발견은 비단 시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하는 우리의 많은 행동이나 판단 중에는 과거에 반복된 경험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우선 선택하는 정보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습관적 주의는 고정된 환경에서 우리의 행동에 효율성을 제공하고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생 변하지 않는 좋은 정보라면 우리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습관적 주의가 형성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정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의 가치가 현시점에서 유지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비일비재하다. 환경이 변화하면 낡은 유물로 남아 ‘나 때는 말이야’를 남용할 수도 있다. 변화된 환경에서 이미 굳어져서 변화에 저항하는 우리의 습관적 주의는 무엇인가? 비록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각하기 힘들다고 해도 만일 어떤 행동이 지속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나타내고 예전 같지 않다면 우리는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서서히 자신의 행동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고, 상황을 바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주의 향상법 : 보통 주의에 문제가 있을 때(예를 들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그 원인은 원하는 대상만을 처리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방해 자극들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주의 향상 방법은 방해가 되는 주변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거나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뇌는 선택하려는 대상에 방해가 되는 정보들만을 억제해 선택적 주의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주의는 필요 없는 정보들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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