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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4월 09일(木)
얽히고설킨 초연결 사회가 바이러스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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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염의 시대’의 원인은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이며,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개체의 증가 속도와 접촉 빈도가 가장 높고 많은 인간이 ‘최적의 숙주’라고 저자는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편리한 교통은 병원체 수송망
인간이 스스로에 주는 형벌돼

팬데믹, 보편의 고독 불렀지만
‘인류전체 운명’ 연대 필요성도
각자가 하나의 방역선 책임감
伊서 코로나 비극 겪으며 글 써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

입자 물리학자이자 한국에서도 번역된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의 양대 문학상인 스트레가상과 캄피엘로상을 수상한 소설가인 파올로 조르다노(38)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르나19) 확진자가 자국에서 1700명에 육박해 최악의 상황이 예고되던 지난 2월 29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지평선에 모여 있는 짙은 비구름을 쳐다보듯이, 중국은 멀리 떨어져 있고, 저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문을 연다. 글은 이탈리아의 사망자가 중국을 넘어선 3월 20일쯤까지 이어졌다.

로마에서 예기치 못한 칩거에 들어간 작가는 그 공허감 속에서 현재를 ‘전염의 시대’로 규정하고, 역시 지구촌 어느 곳에든 격리돼 있을 사람들과 미래를 사유한다. 과학자인 그는 엄정한 과학적 사고와 냉정도 잃지 않는다.

먼저 과학적 시선. 바이러스에 있어 전체 인류는 오직 세 종류일 뿐이다. 감염 가능자, 감염자, 회복자. 바이러스에 우리의 나이, 성별, 지역, 국적, 인종은 무의미하다. 우리를 75억 개의 구슬로 가정하자. 감염된 구슬이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달려와 두 개와 부딪히고, 두 구슬은 튕겨 나와 다른 두 개와 거듭 부딪힌다. 수학자들이 기하급수적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전염병의 전파가 얼마나 빠른지는 모든 전염병이 숨기고 있는 ‘RO’(한 명의 감염자가 몇 사람을 전염시킬 수 있는지 수치화한 것) 값에 달렸다. 구슬의 예시에서 RO값은 정확히 2이다. 코로나19는 2.5(당시 이탈리아의 경우)였다. RO값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구슬과 구슬 사이를 충분히 떼어놓아 연쇄충돌을 막아서 RO값을 1 이하로 낮추려는 것이다.

저자는 전염병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같은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책임을 가진다고 말한다. “펜으로 선을 그어 인간들의 상호교류를 표시한다면, 세상은 단 하나의 거대한 잉크 얼룩일 것”이며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경로가 매우 복잡하게 얽힌 연결 그래프 속에 산다. 바이러스는 이 경로를 타고 어디든지 달려간다”는 것이다. 전염의 시대에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영국의 시인 존 던의 묵상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은 ‘구슬’이 아니다. “욕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차”있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격리와 고독을 견디지 못하며, 할 일이 너무 많다. 인간이 개발한 항공과 기차, 자동차 등 교통수단은 우리가 딱 좋아하는 그대로 모두 빠르고 편안하고 효율적인 바이러스의 수송망이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의 능력은 자신에게 가하는 형벌”이기도 한 것이다. 거짓 정보가 늘어나고 시민과 기관, 전문가들 사이의 불협화음이 이어진다. 분노, 공포, 불안, 냉소, 불신, 체념의 민낯을 드러내며 서로 할퀴고 있다.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는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신’의 고리에서 나온다. 이전에도 바이러스는 이러한 악순환을 드러내 주곤 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그러나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이 자신들의 소굴에 잠잠히 머물러 있던 새로운 병원체들을 외부로 끄집어냈고 접촉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 ‘전염의 시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환경파괴로 생겨난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며 “사실 우리 인간보다 더 나은 번식지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수효가 많은 데다 더욱더 증가할 것이고, 사방팔방 움직이며 수많은 관계를 맺는 미생물 입장에서는 최적의 숙주 아닌가?”라고 저자는 묻는다.

하지만 ‘전염의 시대’에서 감염 가능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호해야 하는, 각자가 하나의 방역선이기도 하다. 우리의 행위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으며 ‘우리 사회’는 ‘인류 전체 사회’라는 연대에 대한 필요가 절실해진다. 전염의 시대가 보편의 고독을 불러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이러스 앞에 인류는 모두 공평하며 각자의 운명은 모두와 연결돼 있음을 일깨웠다.

저자는 “고통은 가려져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직시하게 하고, 현재에 부피를 다시 부여한다. 대유행은 엑스선으로 우리 문명을 비추고 하나둘 진실을 드러낸다”면서도 “바로 마음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전염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릴 진실들”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시편 90장을 인용하며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공백으로만 여겨지는 이 날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기원한다. 96쪽, 85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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