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렇게 타락한 권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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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코로나 핑계 ‘돈 선거’ 재등장
관권과 금권 결합으로 더 악화
文대통령 선거중립 의지 의심

정의 法治 뭉개고 친북 역사관
과거 과실 따먹으며 과거 매도
惡政의 ‘그레셤 법칙’도 조장

군수 3명이 연달아 선거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된 사건이 10여 년 전 경북 청도군에서 발생,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다. 현금 살포가 적발돼 수사 대상이 1000명을 넘었고, 두 사람이 자살했다. 최근 ‘신천지 성지’로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렀지만, 청도는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의 아름다운 고장이다. 고향이 그곳인 필자는 친척들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도 받았습니까?” “나 말고도 다 받았다. 안 찍어줘도 된다는데 누가 안 받겠나” “돈 준 후보에게 투표했습니까?” “기표소 들어가니 많이 준 사람 찍게 되더라.”

이런 매표(買票)효과 때문에 고무신·막걸리부터 돈 봉투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5억 원 쓰면 낙선하고 7억 원 쓰면 당선된다는 ‘7당5락’이 횡행했고, 여러 대선 후보의 측근들도 줄줄이 감옥에 갔다. 그 뒤 선거법이 엄격해지고, 국민도 각성하면서 금품 선거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악성 진화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과거엔 사비(私費)로 돈을 뿌리고 적발되면 처벌까지 받았지만, 이젠 국비(國費)를 걱정 없이 쓴다. 금권(재정)과 관권(정책)의 공식 결합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고되고 있음에도 매일 같이 현장 방문 행사를 계속한다. 정부를 필두로 정당과 지자체들이 긴급지원금을 놓고 도박판 ‘베팅’식 웃돈 얹기 경쟁을 벌인다. 선거 직전에 우선 지급하고 나중에 정산하는 가불(假拂) 시스템까지 나왔다. 재정 효율성도 납세자 부담도 안중에 없다. 포퓰리즘에 맞서던 일부 단체장은 결국 굴복했다. 악정(惡政)의 ‘그레셤 법칙’이 작동한다.

대통령은 최고위 공무원이면서 여당 최고위 당원이지만, 헌법의 정치 중립 의무가 당연히 앞선다. 5년 단임제도 초당적으로 국정에 임하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선거 시기엔 정치적 오해 소지가 있는 행사를 자제했다. 아예 중립 내각을 구성한 경우도 있다. 문 정권은 정반대다. 선거를 앞두고 혈세를 쌈짓돈처럼 펑펑 쓰면서 나랏빚은 나 몰라라 한다. 공무원을 마구 늘리면서 공공개혁이나 연금개혁 같은 궂은일엔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면서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 헌법적 재정적 타락에 세대 착취까지 겹쳤다.

문 대통령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4·3은 대한민국 건국 저지를 위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로 촉발돼 진압 과정에서 엄청난 무력 충돌과 인명 살상이 빚어진 비극이다. 이번 추념사는 북한 입장에 치우쳐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래선 안 된다. 국가관과 역사인식의 타락이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온 날 문 대통령 내외는 ‘기생충’ 제작진을 만나 파안대소했다. 대통령 주재의 아카데미상 축하 자리라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결단한 김대중 대통령, 스크린쿼터 폐지를 이끈 노무현 대통령의 공(功)부터 기렸어야 했다. 코로나 방역도 마찬가지다. 의료진 헌신, 국민의 절제, 일류 의료장비를 개발한 바이오벤처 덕분임에도 자신의 업적인 양 자랑한다. 문 정부가 오늘의 부강(富强)에 어떤 기여를 했나. 과거에 이룩한 과실을 누리면서 과거를 매도한다. 정직과 양심의 타락이다.

조국을 옹호하는 권력범죄 피의자들이 검찰총장을 향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 등으로 협박한다. 이들이 별도의 당을 만들어 ‘진짜 여당’ 행세를 하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 훨씬 쉽게 국회의원이 되게 생겼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마음의 빚’을 되뇌지만, 정경심 씨 재판에선 온갖 위선의 증거와 증언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 정의와 법치의 타락이고, 공인 의식의 죽음이다.

닷새 앞 총선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재정렬 선거(realigning election)’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바뀌는 것 이상으로 국가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재인 시즌Ⅱ냐, 국정의 광정(匡正)이냐. ‘투표할 때만 자유인이고, 끝나면 노예’라고 장 자크 루소는 말했다. 순간의 선택이 그만큼 중요하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결코 매수에 넘어가선 안 된다. 이번 투표가 잘못되면 짧아도 2022년 3월 대선까지, 어쩌면 훨씬 오래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