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프리즘>신문지·셀로판으로 ‘봉쇄 패션’ 만들고… 바구니에 음식 넣어 ‘언택트 나눔’

- 지구촌 눈길끄는 ‘격리생활’

직접 머리 자르고 온라인 공유
마라톤 취소되자 ‘거실 달리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의 일상 구석구석을 뒤바꾸고 있다. 코로나19의 안전지대가 사실상 실종되자 지구촌 전체가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쇼핑과 외식, 운동, 미용과 같은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기발한 방법으로 새로운 격리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봉쇄 요리·봉쇄 패션… 해시태그(#) ‘lockdown’ 유행=온라인상엔 다양한 종류의 ‘봉쇄 요리(lockdown cooking)’ 레시피가 넘쳐난다. 유명 셰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자신만의 봉쇄 요리를 만들어 공유한다.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로페즈의 개인 요리사인 켈빈 페르난데즈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연어 스테이크를 비롯한 레시피를 올리기 시작했다. 유명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는 냉동식품이나 통조림을 활용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식품업체 제너럴밀스 관계자는 “햄버거 조리 세트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제품 판매가 늘었다”며 “소비자들이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하거나 베이킹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2년간 실적악화에 허덕이던 캠벨수프는 지난달 판매량이 전년 대비 59% 가까이 증가했다.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의 시급을 일시적으로 인상할 정도다. 토마토케첩으로 유명한 크래프트 하인즈는 마카로니와 치즈 판매량이 늘어나 공장을 3교대로 돌리는 중이다. 사람들이 최대한 오래 비축할 수 있는 식량을 사서 요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신선한 채소를 구입할 수 없을 땐 직접 재배에 나선다.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화원 ‘피가로의 가든’을 운영하는 코너 프레스턴은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위한 ‘승리의 정원(victory-gardens)’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승리의 정원’이란 2차 세계대전 당시 북미와 유럽 전역의 민간 주택과 공원에서 채소와 과일, 허브 재배가 유행했던 일을 가리킨다. 조경 전문업체 가든워커스 관계자는 “씨앗과 작물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용실이 문을 닫아 집에서 머리를 자르는 일명 ‘봉쇄 헤어컷(lockdown haircut)’도 늘고 있다. 영국의 더선지는 사람들이 집에서 혼자 머리를 자르고 그 결과를 온라인에 공유하는 사진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인 톰 케리지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직접 잘라 사진을 공유했는데, “본업에 충실하는 게 좋겠다” 등의 유머 섞인 댓글을 받았다. 미국 보그지는 영국의 패션 저널리스트인 조지 세르겐티의 ‘홈 쿠튀르’ 작품을 소개했다. 센트럴세인트마틴스대 졸업생들과 함께 작업한 이 가상 패션쇼는 집에서 은박지와 신문지, 셀로판 등을 활용해 유명 패션 브랜드를 기발하게 패러디했다. 발렌시아가의 2020년 봄 컬렉션은 장롱 속 점퍼와 낡은 청바지로, 2009년 알렉산더 매퀸의 가을 컬렉션은 빈 깡통과 주방용 랩으로 재탄생했다.

◇‘언택트 사회’ 기발한 나눔=이웃과 교류가 끊긴 자가 격리 와중에도 나눔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 마라톤이 코로나19로 취소되자 참가자들은 도로 대신 자택 거실이나 뒤뜰에서 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자신의 ‘거실 마라톤’을 생중계해 코로나19 의료 지원을 위한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볼트원더러스 축구팀에서 일하는 폴 홀리데이는 거실을 2000번 넘게 돌아 2000파운드(약 301만 원)의 자선기금을 모았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오전 9시에 시작했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시 거리에선 줄에 매달린 바구니를 종종 볼 수 있다. 시민들이 발코니에서 끈으로 매달아 내린 이 바구니에는 빵과 바나나, 통조림, 견과류 등이 들어있다. 한 청년이 이 바구니 근처에 다가와 노래를 부른 후 멋쩍은 듯 음식을 꺼내갔다. 얼굴을 가린 채 조심스레 음식을 집어 드는 여성도 있다. 도시 봉쇄령에 처한 시민들이 빈민들과 음식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일명 ‘연대의 바구니’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나폴리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커피 값을 미리 지불하듯 식량이 부족한 이웃에게 여분을 미리 남겨두는 것이다. 이 운동을 주최한 안젤로 피콘은 “나폴리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휴스턴의 대형식당에서는 지난달 22일 한 부부가 9400달러(1147만 원)의 팁을 남겼다. 영수증엔 “앞으로 몇 주간 직원들에게 지불해 달라”고 적었다. 이 식당이 경영난 속에서도 30명의 직원을 모두 고용한 채 정상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