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역사 된 ‘현대화랑 50년’… 이름 바꾼 갤러리 현대서 기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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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인사동 거리서 첫선
이중섭·박수근·천경자 등
이름난 국민화가 거쳐간 곳

홍콩 경매서 132억에 낙찰된
김환기‘우주’도 전시회 등장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1916∼1956)은 사후에도 그리 대중에 친숙하지 않은 화가였다. 화단과 일부 문인들이 그 이름만 들어봤을 정도였다. 이중섭이 처음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72년 현대화랑 전시였다. 이후로도 현대화랑은 1999·2015년 등 모두 3회에 걸쳐 이중섭 전시를 개최, ‘불운했던 천재화가’ 이중섭을 ‘국민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중섭뿐만이 아니다. 소정 변관식(1899∼1976)부터 청전 이상범(1897∼1972),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김기창(1913∼2001), 유영국(1916∼2002), 장욱진(1917∼1990), 천경자(1924∼2015), 김창열(1929∼), 백남준(1932∼2006), 이우환(1936∼)….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현대화랑 전시를 통해 국내외적으로 성가를 높이고 미술사에도 깊이 이름을 새겨넣었다는 것이다.

현대화랑은 1970년 4월 골동과 화방, 표구상이 즐비했던 인사동거리에 관훈치과 건물을 개조해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50년. 당시 반도화랑(1956년 창업)에서 일을 배운 박명자(78) 회장이 현대화랑 간판을 내걸 때만 해도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현대화랑’이 차지할 위상을 예견한 이는 없었다.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는 “처음으로 갤러리다운 갤러리를 선보이며 미술시장을 개척한 현대화랑의 50년 역사는 곧 한국 현대미술사와도 같다”며 “특히 박명자 회장의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현대화랑이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현대 HYUNDAI 50’전을 연다. 물론 50년 전의 인사동 화랑이 아니고 1975년 옮겨 간 사간동의 ‘갤러리 현대’(대표 도형태) 건물에서다. 전시에는 ‘현대화랑’과 함께한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총출동한다. 김기창, 변관식, 성재휴, 이상범, 장우성, 천경자 등 동양화의 거장은 물론 ‘국민화가’ 박수근과 이중섭, 권옥연, 김상유, 도상봉, 문학진, 박고석, 변종하, 오지호, 윤중식, 이대원, 임직순, 장욱진, 최영림 등의 작품이 내걸린다. 또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사상 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Universe 5-Ⅳ-71 #200)가 처음으로 미술애호가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화랑이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일개 ‘갤러리’ 이상이다. 인사동에 현대화랑 창업 후 조선화랑(1971), 명동화랑(1972), 표화랑(1972), 동산방(1976), 선화랑(1977) 등이 문을 열며 인사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랑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또 당시 동양화 일색인 화단에서 현대화랑은 서양화를 주목했다. 창업 때부터 서양화와 동양화 전시실을 나누고 당시 잘 안 팔리던 서양화 전시비율을 70%까지 높였다. 근현대미술 흐름을 서양화 방향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미술전문지 ‘화랑’도 창간해 운영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50년 전 현대화랑의 등장은 미술시장이 시장경제의 한 축으로 근대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당시 척박했던 문화예술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도록 기능했고 공적인 미술관 기능이 작동하지 않던 개발도상기에 시민들에게 문화적 양식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현대화랑은 작가 지원에도 공을 들였다. ‘금강산의 화가’ 변관식은 생전 마지막 개인전을 1974년 현대화랑에서 개최했다. 천경자는 1973년 첫 개인전을 포함해 총 다섯 차례의 전시를 선보였다. 1972년 남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창열의 ‘물방울’, 박서보의 ‘묘법’, 이응노의 ‘문자 추상’ 등 한국 추상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수많은 추상 작품이 현대화랑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백남준의 국내외 활동도 전폭 지원했다. 1990년 7월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벌인 굿 형식의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는 아직도 화단에서 회자되고 있다.

갤러리현대의 50주년 기념 출판프로젝트 ‘HYUNDAI’에서 박명자 회장은 “화상으로서의 내 신념은 좋은 화랑은 그 시대의 좋은 작품들을 얼마나 전시, 판매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로 가름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50년 동안 한국의 주요 작가분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에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시는 갤러리현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현장 관람은 5월 12일부터.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