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코노미>세계 곳곳서 ‘생활고 시위’… 폭동·소요사태로 번지나

남아공 주민들 상점 약탈 시작
인도 뭄바이선 노동자들 모여
“감염 대신 굶어 죽을듯” 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식량 위기가 발생할 경우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은 사회·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동제한조치로 경제난이 심화한 국가에선 이미 민생고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경대(LSE) 국제관계학 교수는 “이 같은 사태는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극도로 절망적인 빈곤과 기아에 대한 것”이라며 “그러한 사회적 분출이 동시다발로 일어날까 두렵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봉쇄령에 들어간 세계 곳곳에서 생활고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폭력 사태로 비화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선 식량 부족에 빠진 이들이 상점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식량 꾸러미가 제대로 배달되지 않아 수백 명의 성난 시민이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케이프타운 미첼스 플레인 타운십의 지역사회 지도자 조아니 프레데릭스는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우린 식량 위기 한가운데에 있다. 여긴 전쟁터”라고 호소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일감을 잃은 이주 노동자 수만 명이 사회적 거리두기 명령을 어기고 모여 당국에 항의했다. 필리핀에선 빈민들이 거리로 나와 “코로나19에 감염돼 죽는 것보다 굶어 죽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봉쇄령에 항의하고 구호품을 달라고 요구했다. 레바논에선 수백 명의 시위대가 베이루트에 차를 끌고 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민생고 시위를 벌였다. 소셜미디어에는 레바논의 한 택시기사가 영업제한 위반으로 단속된 후 분노해 택시에 불을 지른 영상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시리아 난민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자 분신하는 영상도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지 못할 경우 폭력적 양상이 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남아공 싱크탱크 남아프리카식량연구소의 스콧 드리미는 “매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남아공은 이미 물과 주택 위기 등으로 시위가 잦은데 배고픔까지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빈곤토지농업연구소(PLAAS)는 사람들이 식량을 못 구하면 대규모 약탈 같은 폭력적 갈등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생고로 시작된 각국의 시위가 정치·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봉기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포린폴리시는 “코로나19는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정치적 불안을 일으키고 정권 교체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빈곤이 만연하고 보건체계가 취약하며 식량이 비싼 국가에선 이미 시민들이 극심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알리 파톨라네자드 연구원은 “시위의 근본 원인은 경제와 빈곤, 부패”라고 지적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선 급격한 식량 가격 상승에 따른 사회불만 현상이 혁명과 봉기로까지 발전한 바 있다. 2010년 러시아가 극심한 가뭄으로 밀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자 국제 밀 가격은 한 달 동안 60%나 폭등했다. 이로 시작한 민생고·반정부 집회는 2011년 튀니지 재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