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집콕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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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중국이 개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일본에서 연수 중이던 필자는 중국인 관비(官費) 유학생 몇 명과 같은 세미나에 출석하게 됐다. 그중 한 여학생이 덩샤오핑(鄧小平)의 일본어 통역 담당이었다는 소식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가까이 지내면 혹시 중국 지도부 내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호기심은 금방 식어버렸다. 그 여학생의 바로 뒷좌석에 앉은 날, 등에 비듬이 하얗게 앉은 것을 보고 기겁했기 때문이다. 예부터 중국인이 잘 씻지 않는 관습을 갖고 있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인류의 일상생활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토록 외면당하던 화장실 비데가 갑자기 인기 품목이 됐다고 한다.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면서 화장실 휴지가 품귀 현상을 빚자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 마트를 헤매고 다니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다. 그런 마당에 비데를 이용하면 휴지 소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요즘 선진국들에서는 코로나의 전염·확산을 막기 위해 직장 출근 대신 재택근무를 권하거나, 사실상의 가택 연금 조치를 내리자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노동자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몸 가꾸기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감지 않고 지내거나, 면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출퇴근길에서의 액취 방지를 위한 데오도란트조차 찾지 않는다는 것. 구강청정제나 스킨케어 관련 제품의 매출도 당연히 감소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변화는 관련 소비재 메이커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메이커인 유니레버는 ‘집콕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소비행태가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될까 예의주시하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 24일 자). 유니레버는 수년 전 10억 달러를 주고 인수한 면도기·면도날 배달 서비스 업체인 ‘달러 세이브 클럽’이 당장 타격을 받고 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면도날 카트리지 4∼5개와 옵션에 따라 셰이빙 크림 등 보조재도 함께 배송해주는데, 집콕 소비자들이 요즘 들어 면도 자체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의 ‘씻지 않는 증후군’이 이제 선진 각국으로 번져가고 있는 듯하다.